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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 서비스경영ㆍ30] 매출이 늘어도 경영난에 빠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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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 서비스경영ㆍ30] 매출이 늘어도 경영난에 빠지는 이유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1.09.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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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영업이 순조로워도 자금 막히면 디폴트에 빠질 수 밖에
철저한 자금관리로 체력 키운 기업은 코로나 위기도 기회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기업은 왜 파산하는가? 물론 수많은 원인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파산에 이르는 이유는 한 가지. 해결되지 못한 채무 때문이다. 영업이 최악이라도 사업주는 여력이 있는 한 사업을 접지 않는다. 경영자와 주주, 종업원은 모두 역경을 버티려 한다.

그러나 채권자의 입장은 다르다. 약속한 이자와 원금을 돌려받을 희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청구권을 행사하고, 그래서 부도가 난다. 영업이 순조로워도 자금이 막히면 디폴트에 빠진다. 장부상의 매출과 달리 실제 현금유입이 부족해 부도가 나는 흑자도산이다. 이를 ‘기술적 지급불능(technical insolvency)’이라고 부르는 건 자금을 다루는 기술의 부족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자금의 조달과 운용을 다루는 재무관리에서 재고나 부동산에 묶인 자산이 아니다. 자금은 잘 흘려야 비로소 ‘돈’이 된다. 조달한 자금은 구매와 생산, 유통의 곳곳에 운용되어 비용으로 나가고 매출로 수입이 되어 다시 흘러들어온다. 인체의 혈액처럼 현금의 흐름이 원활할 때 회사는 건강하고, 이게 어느 한쪽에서 막히면 이상이 온다. 혈압처럼 건강의 이상을 감지하려면 경영자는 수시로 현금흐름을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현금흐름이 복잡한 대기업엔 자금을 전담하는 CFO가 있고, 전문가가 없는 중소기업에선 사장이 이걸 직접 챙겨야 한다.

코로나19가 시작되자 예약(Booking),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이벤트(Event), 항공(Airline), 크루즈와 카지노(Cruise & Casino), 호텔(Hotel) 등 ‘BEACH’ 업종이 경영난에 빠진 건 서비스업종의 빠른 현금흐름 때문이다. 신용카드로 오늘 승인된 판매가 내달이면 결제되는 현금흐름은 호황일 땐 좋지만 불황에선 곧바로 위기가 된다. 급격한 매출 감소로 많은 자영업자, 중소기업이 문을 닫고 있지만 버티는 사업장도 있다. 강한 자가 남지 않고 남는 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자금력이다. 통 크게 투자하는 기업가라도 자금의 흐름을 판단하는 의사결정엔 고도의 신중함이 요구된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자본비용의 계산이 분명하고 이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돈을 사용하면 대가로 줘야 하는 자본코스트는 채권자에게 주는 이자보다 주주에게 보장해야 하는 투자수익이 더 높다. 받은 투자금만큼 자본금이 늘면 주주와 지분을 나눠 경영권이 불안해지고, 투자위험의 프리미엄을 얹어서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받는 점에선 부채를 쓰는 쪽이 유리하다. 부채는 지급이자가 영업외비용으로 처리되는 세금효과도 있다. 그만큼 단점도 분명하다.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신용도가 하락하고 사업이 어려울 땐 부도의 원인이 된다. 상장사들이 금융기관 차입과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의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건 자본코스트의 최소화와 경영권의 유지를 모두 달성하기 위함이다. 필요한 자금을 자본금으로 조달할 땐 경영권을 챙겨야 하고, 부채를 조달할 땐 채무불이행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둘째, 유동성 부족을 늘 경계해야 한다. 어려울 때 회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건 현금이다. 성장기에 부채비율이 평균 200%를 넘던 국내기업의 만성적인 재무구조의 취약성이 개선된 배경에는 IMF(1997)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의 학습효과와 저성장이 있다. 올 2분기에 30대 상장사의 평균 부채비율이 76%까지 낮아진 것도 불리해진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앞날이 불투명하면 투자보다 현금 쌓는 게 유리하고, 낙관적인 경우라도 크고 작은 충격을 견딜 ‘쿠션’이 필요하다. 우량기업일수록 내부에 많이 유보해 두는 이익잉여금은 미래의 투자에 쓰기 위해 마련한 실탄이지만 위기에선 현금으로 바뀐다. 유동성은 불황을 버티는 기초체력이다.

셋째, 자금관리에는 예측과 통제가 핵심이다. 판매예측에 기반한 자금의 계획→실행→통제의 관리과정이 전제되는 사업계획에는 재무적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재무적 상태를 나타내는 대차대조표와 경영의 성과를 보여주는 손익계산서에 목표를 미리 수치로 담아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게 좋다. 매년 추정 재무제표가 필요한 이유다. 계획한 대로 실제 현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땐 즉각 가동할 ‘플랜B’가 있어야 한다. 환율과 유가의 변동, 무역 갈등 등의 외생변수, 코로나 감염병처럼 빈번해지는 ‘블랙스완’은 기업이 피할 수 없는 위험이다. 대기업이 주력사업을 벗어나 새로운 사업을 부단히 모색하는 건 막무가내식 문어발 확장이 아니라 위험을 회피하고 성장을 도모하는 다각화전략이다.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영업만이 아니다. 다른 한쪽에 자금을 관리하는 재무가 있다. 회계에 충실한 기업이 탄탄한 이유다. 대차대조표를 보면 경영이 보인다. 차변에는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자금의 운용이 있고, 대변에는 자금을 어디에서 어떻게 조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원천이 있다. 사업을 키우면서 이 감각을 잃지 않는 게 경영자의 역량이다. 잘 나가던 기업이 경영난에 빠지고 종종 주인이 바뀌는 건 그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업의 유지·성장에는 자금조달과 운용의 균형이 전제다. 철저한 자금관리로 체력을 키운 기업에는 코로나의 위기도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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