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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 서비스경영ㆍ34] 경영 틀 바꾼다는 ESG, 새로운 변수인가 지나갈 조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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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 서비스경영ㆍ34] 경영 틀 바꾼다는 ESG, 새로운 변수인가 지나갈 조류인가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1.10.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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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사회적 책임 윤리경영 실천할 때 소비자와 우호적 관계 강화
프레임 수정 필요해 갈 길은 먼데, 속도 부추기는 정부도 문제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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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가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인가. 적재적소에 자본을 공급해 이윤을 창출하는 투자. 이 투자의 행태가 수익성에 매몰되어 지구환경과 인류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마침내 행동으로 나타났다. “지속가능한 투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에 참여해 달라.” 2004년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글로벌 금융회사들에 글로벌 콤팩트의 동참을 서신으로 요청했고, 금융의 역할을 촉구하는 보고서 ‘누가 이기는가(Who Cares Wins)’를 발간했다. ‘ESG’라는 신조어는 이렇게 세상에 등장했다. ESG 투자란 기업의 재무적 요소만이 아니라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등의 비재무적인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글로벌 연기금과 투자기업들이 속속 동참하면서 ESG로 기업을 평가하고 투자하는 새로운 룰이 만들어지고 있다. 자본이 움직이는 새로운 길.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자본의 의무’가 만들어지는 분위기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그렇다고 ESG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인류가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 가치다. 늘 제기되었던 환경과 사회,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훨씬 강화된 것이다. 산업계도 그걸 체감한다. 2006년 4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발표된 유엔의 책임투자원칙(PRI)에는 투자한 기업에서 책임투자를 실천하고, 활동과 성과를 보고토록 하는 투자자의 의무가 기본원칙으로 담겼다. 투자에서 ESG도 함께 평가하자는 게 골자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거대 담론이 탄력을 받으면서 재작년 EU는 ‘그린 딜’을 선언해 문제의 심각성을 재확인했고, 최근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정부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며 예산 확대와 함께 2050년 탄소배출 ‘넷 제로(Net Zero)’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에도 ESG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미 대기업들은 대부분 전담위원회를 설치했거나 관련 조직을 확대 개편 중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시각에는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ESG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시민·사회단체나 노동계의 시각이 많이 반영돼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우려와 함께 반(反)기업정서를 해소하고 신뢰받는 기업경영문화를 조성한다는 기대감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ESG의 공시의무를 밝혔고, 2030년 이후엔 전체 상장사로 확대할 것을 예고했다. 작년 11월에는 최대 투자자인 국민연금도 ESG를 고려한 투자 비율을 전체 포트폴리오의 50% 이상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대로라면, 투자를 받는 ‘착한 기업’의 기업가치는 오르고 투자에서 외면받는 기업의 가치는 하락하게 될 것이다. 출발은 비록 늦었지만, 미국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기업의 목적에서 ‘주주가치의 극대화’라는 표현을 삭제하기로 했다.” 2019년 8월 미국의 재계를 대표하는 200대 기업의 CEO 협의체인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BRT)의 깜짝 발표가 있었다. 주주자본주의 본산인 BRT가 ESG 경영에 나서면서 이해관계자 중시를 표방한 것이다. 경영목적을 고객과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주주 모두를 위하는 것으로 새롭게 제시하면서 주주가치를 맨 마지막에 언급했다. 일각에선 ‘주주자본주의의 종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시작’이라며 떠들썩했다. 미국이 주류인 경영학의 교재도 바뀔만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선언’이 발표된 지 1년. 산업계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미국에선 지금 그 실효성이 논란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쇼처럼 보인다(Shareholder Capitalism seems mostly for Show).” 하버드 법대의 루시안 벱척(Lucian Bebchuk) 교수팀은 최근 181개 서명기업을 조사한 결과, 확인된 48개 기업 중 단 한 곳만 이사회 승인을 받은 사실을 지적했다. 서명한 CEO들은 주주가치가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다른 이해관계자를 보호하려는 전략일 뿐, 진정성 있는 선언이라면 그 내용을 담은 사명이 발표되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진행은 순조로워 보인다. 세계적으로 많은 금융기관에서 ESG 평가 정보를 활용하면서 글로벌 서비스기업들도 참여하고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페이스북 등이 탄소중립을 발표했고, 삼성SDS, LG CNS, SK㈜ C&C 등 국내 IT 기업도 ESG 경영을 준비 중이며, 은행권에선 대출 심사요건에 ESG 수준을 고려하겠다는 계획까지 나왔다. 문제는 ‘지속가능한’ 글로벌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산업계에 정착시키는 일이다.

사업 전반의 프레임 수정이 필요한 ESG의 갈 길은 먼데, 정부는 속도를 부추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2030년 40% 감축,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은 제조업계에 큰 숙제를 던졌다. 이미 상장사들은 최대 투자자인 국민연금의 행보에 긴장하고, 온실가스 규제로 대기업의 공급망에 속한 중소기업도 ESG의 영향권에 들어섰다. ESG는 경영의 틀을 바꾸는 새로운 변수인가, 아니면 열풍처럼 지나갈 조류인가. 분명한 것은 기업이 더 나은 환경과 세상을 만드는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을 실천할 때 소비자와 우호적 관계가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ESG의 실천은 비용이 당장 부담이지만 지금은 대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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