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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 서비스경영ㆍ37] '한우물만 파면 도태된다' 폴리매스가 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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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 서비스경영ㆍ37] '한우물만 파면 도태된다' 폴리매스가 뜨는 이유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1.1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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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지식 반감기는 짧아지고 인간 대체 수단 빠르게 증가
불확실한 상황에 대응하는 멀티플레이어들로 조직 바꿔야
지오반니 자코모 카사노바 ⓒ네이버
지오반니 자코모 카사노바 ⓒ네이버

엽색과 모험의 삶을 살았던 카사노바. 문필가로 기록되는 그는 재능이 많았다. 25세에 변호사가 되었고 베네치아 군인, 바이올린 연주자를 거쳐 전문 도박꾼, 의사, 로마의 성직자까지 짧지만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연이은 추문과 탈옥, 파리 사교계의 유명한 인사였고 프랑스 정부의 스파이로 활동했으며, 유럽 정부를 상대로 복권 사업도 했다. 초라해진 말년 귀족의 사서로 일하면서 집필한 자서전 <내 생애의 역사> 12권은 18세기 유럽의 풍속과 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지만 이게 그를 호색한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짧고 화려한 직업과 삶에서 잠깐씩 몸을 담갔을 뿐 뚜렷한 성과는 없었지만, 다방면으로 재능 있던 인물임엔 틀림없다.

다재다능하고 박식한 폴리매스(polymath). 적어도 세 분야 이상에서 일(‘poly’)을 출중하게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출중하다는 건 상대적인 것으로 사업이나 일하는 능력처럼 다양해 객관적인 지표를 찾긴 어렵다. 대중적 인지도나 경제적 성공, 작품이나 자격증, 수상 경력, 직업이나 학위로도 그 실력을 평가할 수 없다. 잠재력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지 타고난 재능이 많은 사람과 진정한 폴리매스는 다르다. 분야를 넘나들며 학습된 재능을 발휘해 탁월한 성과를 내야 폴리매스다. 카사노바를 진정한 폴리매스라고 하기엔 그래서 주저할 수밖에 없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

누구나 다양한 잠재력을 타고난다. 그걸 몰라주는 세상이 문제다. 부모나 학교, 고용주들은 개인의 다양한 재능과 관심을 제한한다. 한 우물을 파야 전문가로 성공한다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이게 통할까. 전문가 시스템이 오히려 창의력을 억누르고 성공과 발전을 방해한다는 게 젊은 폴리매스로 불리는 와카스 아메드(Waqas Ahmed)의 주장이다. 그의 저서 <Polymath(2019)>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경제학과 국제관계학, 신경과학을 공부하고 기자로 활동한 그는 과도한 전문화에 제동을 걸고 역사의 재해석으로 미래를 제시한다. 폴리매스야말로 미래의 진정한 전문가라는 것이다.

현대적 기업의 등장은 분업과 전문화가 배경이었다. 사람 다루는 문제로 시작된 경영학에도 그 원칙은 여전히 견고하다. 20세기 들면서 전화기, 사진기, 전기, 비행기 등의 획기적인 신기술이 상품화되고 대량생산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과학적 관리법, 벨트컨베이어가 생산공정의 전문화 시대를 열었고, 교육제도가 이를 뒷받침해 오는 동안 환경은 달라졌다. 인공지능이 곳곳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신해 일의 프로세스를 바꾸고 있다.

타고난 재능이 무엇이든 현실에선 하나의 배역이 정해지게 되면 함정에 빠지고 만다. 회사는 구직자의 학위나 자격증, 경력만으로 그가 원하는 분야에 가장 근접한 요소를 확인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대학생들이 스펙 쌓기에 매달리는 이유다. 컨설팅그룹 엑센츄어(Accenture)가 최근 18개국 3만 6000명의 전문직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절반은 자신의 능력에 비해 현재의 직업이 맞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60% 이상은 처음 시작을 후회했고, 20%는 한 번도 적성에 맞는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다른 일을 하면 장점을 살릴 거라고 믿는 사람도 30%에 달했다. 직장인의 불안과 좌절은 업무 환경 못지않게 일의 단조로움에서 나온다. 마술사를 꿈꿨던 경리직원, 연주가가 되길 바랐던 웹디자이너, 스포츠 선수가 되고자 했던 세일즈맨. 이들의 삶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물결에 휩쓸려 별 의미 없이 대양으로 흘러들고 떠밀리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과 같다.

시대는 변했다. 넘쳐나는 지식의 반감기는 점점 짧아지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단은 빠르게 늘고 있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고, 연결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해야 생존하고 성공한다.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변화할 것인가 아니면 구시대의 유물을 붙잡다가 함께 무너질 것인가. 전문화 시스템에 맞서 사고의 전환을 시작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히딩크 감독의 2002 월드컵 4강팀처럼 각자의 포지션을 정해놓고 불확실한 상황에 전사적으로 대응하는 멀티플레어들로 기업은 조직을 바꿔나가야 한다. 뜨개질하면서 아기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주부처럼 본업에 충실하면서 회사를 위해 함께 뛸 때 모두가 발전한다. 한 우물을 파서 세계 최초, 세계 최고를 개발한 벤처기업, R&D 부서의 빛나는 성취가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전문화의 함정 때문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결과다. 새 식구가 들어올 때마다 우리 회사가 움직이는지 메커니즘, 수익모델을 알려주는 오리엔테이션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돈 버는 구조를 알아야 그들 스스로 동료를 돕고 ‘직장의 폴리매스’를 꿈꾼다. 선택과 집중이 필수인 기업도 팔려는 상품을 다양하게 해야 위험을 분산하고,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찾는다. 그래서 다른 업종에 진출하는 건 문어발 확장이 아니라 다각화가 맞는 말이다. 사업도 폴리매스가 되어야 그룹으로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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