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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건국전쟁'이 놓친 이승만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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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건국전쟁'이 놓친 이승만의 통찰력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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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미국식 민주주의가 우리의 ‘민국’이 지향해야 할 기반
‘공산 세력에 의해 자유가 공격받을 수 있음’을 경고한 점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포스터. 다큐스토리 제공 ⓒ연합뉴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포스터. 다큐스토리 제공 ⓒ연합뉴스

이승만 대통령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 전쟁’이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다큐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박스오피스 2위까지 오르며 13일 기준 누적 관객 38만명을 훌쩍 넘겼다.  대한민국 건국을 사실상 혼자 이끌었으며, 따라서 ‘건국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라 불러야 마땅할 지도자였음에도 온갖 왜곡과 그로 인한 부정적 인식으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워졌던 거인 이승만이 비로소 역사에서의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여간 다행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물론 그간의 많은 연구에서도 이승만의 진정한 가치는 언급된 바 없다. 솔직히 필자도 두 해 전 국민이 대한민국 건국사를 바로 알게 하기 위한 ‘국민 교과서’를 기치로 ‘이승만의 위대한 성취’라는 책을 쓴 바 있지만 그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공부가 부족해 그의 진가를 깨닫지 못했다.

이승만의 업적으로 꼽혀온 것은 한반도 전체가 소련 공산주의에 의해 적화되지 않도록 가장 강력한 우방인 미국과 싸워가면서까지 기어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야 말았다는 사실, 한미동맹으로 대한민국 부흥의 안전판을 만들었다는 점, 농지개혁으로 민주주의의 경제적 토대를 닦았다는 점, 교육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교육에 국가적 역량을 기울임으로써 이후 경제발전의 기틀을 잡았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그러한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눈에 보이지 않았던 가치가 있다.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은, 왕은 군림하되 정치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계속하여 유능한 신하들이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제도를 정착시키려 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분명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왕은 세습으로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도록 하고, 그 왕이 임명한 신하들이 오늘날로 치면 내각을 이루게 하여 성과를 낼 때는 계속 책임을 맡기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내각을 다시 구성하도록 한다면 백성을 위한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정도전의 정치적 구상은 현대의 관점에서 보아도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는 불행히도 너무 시대를 앞서가는 바람에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는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으며, 그의 이상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은 정도전보다 더 시대를 앞서가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해낸 인물이다. 그는 이 땅에 미국식 정치제도를 이식하려 했다.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이전 이미 미국의 역사를 공부했고,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는 물론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미국의 정치사회 제도 및 문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야말로 번영으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가 보기에 세계를 선도하는 선진국은 대개 영미 문화권 기독교 문명의 국가들이었으며, 미국은 서양문명 진화의 총아였다. 그러니 미국의 민주주의를 한반도에 이식하는 것이 그에게 시대적 소명으로 여겨졌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단순히 식민 지배 상태로부터의 해방과 독립만을 추구한 데서 그치지 않고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문명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꿈꾸었다.

미국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유럽과 다른 미국만의 민주주의가 따로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이승만은 그걸 본 것이다. 유럽과 다른 미국의 민주주의를 가장 정확하게 짚은 연구서는 프랑스 정치철학자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1, 2권이다. 19세기 중반인 1835년과 1840년에 나온 책이지만 이 저술은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그 성가를 인정받고 있다.

토크빌은 프랑스에서 대혁명 이후 인간의 자유와 인권이 지켜지는 제도의 안착이 아니라 혁명과 반혁명의 혼란이 거듭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국에서 해답을 찾을 필요를 느꼈다. 그가 보기에 영국도 정답이 아니었으며, 신대륙에서 새로운 문명을 세우고 발전시켜 가고 있던 미국에서 희망을 찾아야 했다.

토크빌이 유럽 민주주의에서 목격한 것은 ‘다수의 압제’였다.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본질적 한계인 다수의 횡포 또는 ‘다수의 전제’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풀 수 없는 난제다. 히틀러의 독일이 아니더라도 최근 한국에서 국회 다수당의 입법 폭주만 보아도 민주주의의 한계는 뚜렷하지 않은가. 토크빌은 왜 미국에서는 그런 본질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며(요즘의 미국 민주주의는 상당히 변질되어 있지만) 민주주의가 잘 정착했는지 주의 깊게 미국 사회를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미국 사회에서는 국가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책임 있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학교나 병원 등도 정부가 아니라 민간 주도로 세워지는 모습을 토크빌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의 양심과 책임하에서 판결이 이루어지는 미국의 재판 시스템도 다수의 압제라는 폐해가 나타나지 않으며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한 요인이었다.

토크빌이 본 것을 이승만 역시 똑같이 보았다. 이승만은 나아가 미국 사회에서 여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주목했다. 그의 독립운동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여론을 일깨우는 데 집중되었던 것은 그래서다. 이승만은 서양문명의 진화가 낳은 미국 민주주의와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미국의 정치‧사회적 문화(morale)가 미구에 태어날 신생 독립국으로서의 우리의 ‘민국’이 지향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제도이자 기반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토크빌은 유럽과 미국 모두에서 ‘모든 조건의 평등화’ 흐름은 필연이라고 보았다. 물론 평등화의 폐해는 유럽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토크빌은 그러나 평등화의 문제가 사회주의로 인하여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물론 19세기 중반을 살았던 토크빌이 장차 벌어질 상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이승만은 사회주의의 극단인 공산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보며 그것이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할 것이라는 점을 경계했다. 그가 해방 공간에서 소련과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 한 미국의 정책을 결사적으로 저지하려 했던 까닭이다.

이승만이 교육을 중시한 것도 민주주의가 미국에서와 같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국가 구성원인 시민의 지적 수준이 일정 선에 올라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한다. 나아가 그는 인재가 나라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외국의 원조에 의해 겨우 연명해 나가는 세계 최빈국의 처지에서도 국비로 인재들을 외국 유학에 보냈던 것이다. 그 혜택을 받은 인재들이 훗날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의 주역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승만이 돋보이는 또 한 가지는, 북한이 기습 남침을 해왔을 때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하며 ‘우리 좀 도와달라’고 한 게 아니라 ‘자유 진영이 공격받았으며, 이것이 방치될 때 세계 어디에서도 공산 세력에 의해 자유가 공격받을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이는 그의 자유에 대한 신념이 깊은 철학적 성찰 위에 있는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다큐 영화 ‘건국 전쟁’을 넘어 ‘시대를 앞선 통찰’이라는 이승만의 진정한 가치가 그가 이룬 성취, 곧 대한민국 건국 너머에 있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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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민 2024-02-26 14:42:20
건국전쟁을 보고 눈물흘리는 병신도 있남? 경상도인데다 보수이지만 누가봐도 사기짓이고 날조이던데 장난하냐? 헌법을 부정하는 사기꾼들이 이 틈에 쩐한번 만져보고자, 권력얻어보고자 날조한 내용들이라 보수라서 더 역겹던데 어떤 병신들이 그 내용을 찬동한다는 말인가? 건국전쟁 내내 다 사기이다. 독재가 아니고 장기집권이라며 용어만 바꿔 미화하고 이승만 공적을 얘기할려면 객관적어야할텐데 김일성 다루듯 다루더라. 북괴였으면 김일성 빨고 할 버러지들이 이승만 빨고 있는것일 뿐이다. 부끄럽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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