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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정부-의사 충돌과 의료대란 막는 '신의 한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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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정부-의사 충돌과 의료대란 막는 '신의 한수'는?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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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 붕괴 방치 안되지만 일방적 초강수로는 해결 난망
의사단체를 이익집단에서 정책의 주체로 만든다면
필수의료 핵심인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대란'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안과 진료실 앞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필수의료 핵심인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대란'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안과 진료실 앞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증원 계획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돌진하고 있어 의료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위태로운 건 정부도, 의료계도 멈출 수 없는 입장이라는 점 때문이다. 멈추는 순간 그건 항복으로 이해될 것이고, 따라서 정부는 정부대로, 의료계는 의료계대로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부와 의료계 간 충돌이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는 우선 정부의 일방적 의대 정원 증원 강행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 무리가 없다.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고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며 차근차근 추진해나가야 할 문제를 군사작전 하듯 전격적으로 밀어붙이니 의료계가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리 없다. 그러잖아도 의료계는 의대 정원 증원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던 터다. 국민 눈에는 그것이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지라도 그간 의료계는 아랑곳하지 않아 왔다. 하기야 누군들 자기 밥그릇을 건드리면 가만히 있을까. 더욱이 의사는 대체인력이 없다.

정부의 고민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역대 정부 모두 의대 정원 증원에 번번이 실패했다. 의사들의 반발로 의료대란이 벌어지면 난감한 건 정부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물러서면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이대로 간다면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를 감당키 어렵다고 보고 이번만은 뚝심으로 밀어붙여 그간 어느 정부도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를 풀어보리라 작정했을 법하다. 또 한 가지,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 붕괴가 더는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가부터 따져보지 않으면 이번 사태는 물론 앞으로 되풀이될 사태도 해결하기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건 국가의 계획에 의해 의료인력과 서비스를 공급해온 시스템이다. 국가 통제체제의 의료수급은 양날의 칼이다. 국가가 수요와 공급은 물론 가격까지 통제할 수 있으니 우선은 안정적인 수급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의사들의 필수 의료 기피와 지역의료 붕괴가 그것이다. 이는 단순히 의사 부족을 넘어서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의사들의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필수 의료일수록 어렵고 의료사고 위험이 높다. 따라서 더 큰 보상이 주어져야 지망하는 의사도 있을 텐데 정부의 가격통제로 보상이 제한되니 의사들이 기피하게 마련이다. 만일 시장의 원리가 작동했다면 수요가 공급을 크게 초과할 경우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지불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공급 부족이 해소된다. 하지만 국가 통제체제에서는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필수 의료에서 만성적인 의사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필수 의료에 대해 더 높은 보상을 해준다 하더라도 어느 선이 적정한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제한된 건강보험재정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과에 들어갈 재정을 끌어다 쓰는, ‘윗돌 빼다 아랫돌 괴는’ 방식일 수밖에 없어 문제 해결에 실패하게 된다.

지역의료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방에서 의료업을 한다는 것은 특별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가진 의사가 아니라면 정신 나간 짓이다. 인구가 감소하거나 심지어는 소멸하는 지방은 환자가 적은 데다가 그나마 얼마 안 되는 환자도 편리하고 빠른 대중교통수단으로 다들 서울 등 수도권 대형 병원을 찾으니 지방 병원들은 경영 수지를 맞출 수 없다. 비단 경영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환자들이 다 서울로 가버리니 진료, 특히 수술 건수가 낮아 의사들이 역량을 키우기는커녕 지니고 있던 술기(의사들은 기술자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해서인지 기술이라는 말을 싫어한다)마저 녹슬까 봐 지방 병원을 기피한다. 이러한 악순환이 거듭되어 온 게 저간의 사정이다. 이런 문제들을 단순히 의대 정원 확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 아무리 정원을 늘리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의사들이 필수 의료나 지방 의료기관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해법은 뜻밖에도 멀리 있지 않다. 기억이 아스라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 교과서에 나온 동화 한 편이 떠오른다. 이솝 우화인지 안데르센 동화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나라 어린 공주가 달님을 갖고 싶어 했다. 임금님은 아무리 고심해도 방법을 찾을 수 없다. 그때 광대가 해법을 찾아낸다. 달을 만들어 공주에게 하늘에서 따온 달님이라며 선사하자 공주는 그렇게 믿고 좋아했다. 그런데 저녁이 다가오자 임금님은 새로운 고민에 사로잡혔다. 밤이 되면 달이 뜰 것이고, 그러면 하늘에서 따왔다고 거짓말을 한 게 들통날 것이니 말이다. 이번에도 해결책은 광대가 찾아낸다. 광대는 공주에게 해명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공주에게 묻는다. 달을 따다 주었는데 왜 달이 또 뜨는지. 공주는 명쾌하게 답한다. 바보! 이가 빠지면 새 이가 나잖아. 그것도 몰라.

역대 그 어떤 정부도 의사 집단을 관리의 대상이라고 보았을 뿐 그들이 의료뿐만 아니라 의료 정책에서도 전문가라는 생각은 하지 못해 왔다. 그러기에 의사단체도 이익단체로서만 기능해왔을 뿐이어서 정부의 공세적 정책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의사단체, 곧 대한의사협회가 이익단체를 넘어서는 정책의 주체로 자리매김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 달이 또 떠오르는지를 해명하기 급급한 임금님이 아니라 직접 답을 제시하는 공주처럼 말이다. 따라서 정책적 과제를 의사단체의 역할로 바꿀 수 있다면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사단체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데 이익집단에 정책 추진의 주도권을 넘기면 안 된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의료업은 다른 직종과는 달리 아무나 원한다고 의료시장에 뛰어들 수 없다는 점에서 이해 당사자인 의사들에게 의료의 사회적 책무를 맡기는 게 국가가 주도하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의사단체가 의사 인력 공급의 당사자가 된다면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의사들의 형편 등 종합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필수 의료를 살리고 지역의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의 해법을 정부보다 더 잘 찾아낼 것이다.

의대 정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의대 정원은 철저히 정부가 관리해 왔다. 그런데 만일 의대 정원을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의대 설립의 조건(교수 인력 확보나 시설 등)만 통제하되 학생 정원은 각 학교가 알아서 하도록 해왔다면 정부와 의료계가 강 대 강으로 부딪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의사단체를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주체로 새롭게 자리매김한다면 산적한 의료 문제를 풀어나갈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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