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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담합을 합법화하자는 정치권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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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담합을 합법화하자는 정치권 속내는?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1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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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김용춘 한국경제인협회 팀장/법학박사

중기 협상력 높여 경쟁력 제고? 포장에 불과
헌법 119조 공정거래법 제1조, 제40조 위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격 인상, 생산량 조절 등 담합을 허용하자는 법안이 국회에서 나왔다. 정확하게는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들고 나왔다.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중소기업에 대해 2년 유예하는 정책 통과에 협조할테니, 중소기업들이 거래처를 상대로 담합하는 것을 허용해 달라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웬만하면 정당 이름은 안 쓰려고 했는데, 배경 설명을 위해 잠시 정당 실명을 썼다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

정치는 원래 협상, 즉 주고받는 것이 본질이니 정책 협상 자체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모든 정책에는 지켜야 될 선이 있다고 본다. 적어도 우리 헌법에서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정책이라면, 경쟁법의 기본원칙에 반하는 담합을 허용하는 것이라면 이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헌법은 119조에서 자유민주적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기본원칙을 설명하고 있으며, 공정거래법 제1조, 제40조는 담합을 경쟁을 제한하는 대표적인 행위로 보고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담합을 금지하는 제도는 미국을 포함한 모든 선진국들이 규정하고 있다.

김용춘 한경협 팀장/법학박사
김용춘 한경협 팀장/법학박사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담합을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할까. 도입하자는 측에서는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강화가 주된 이유다. 거래처를 상대로만 담합을 허용하는 것이니 소비자에게는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하나같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우선 중소기업의 담합이 소비자의 가격인상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예를 들어 레미콘 업체들이 담합하여 시멘트 업제를 상대로 담합을 하면 운송비가 증가할 것이고, 시멘트 업체들은 이를 빌미로 하청 건설업체에 가격을 전가하면 건설단가가 증가할 것이다. 하청 건설업체도 담합하여 최종 건설업체에 가격 인상을 하면 원가 상승 압력을 견디지 못한 건설업체는 당연히 분양가를 올릴 수밖에 없다. 만일 정부가 억지로 분양가를 낮추라고 하면,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되어 건설업체들이 기피하게 되고, 그럼 공급물량이 줄어 결국 전체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이것은 절대 논리 비약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저렴하게 먹는 우유를 우리나라만 비싸게 먹고 있지 않은가.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높여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경쟁을 제한하면서 경쟁력이 높아지는 사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경쟁력은 오직 경쟁을 통해서만 높아진다. 일정 가격과 물량이 보장되는데, 뭣하러 중소기업이 혁신을 통한 품질개선, 단가 인하 노력을 하겠는가. 물론 혹자는 아주 착한 기업인이 나타나 ‘난 담합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혁신해서 품질을 높이고 단가를 낮춰야지’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이는 이상일 뿐이다. 아마 이런 혁신적인 기업가는 처음부터 담합할 생각도 안 할 것이다. 학교에서 컨닝도 공부 열심히 안한 학생들이 주로 하지,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예 컨닝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책은 이상적인 사람을 모델로 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런 논리면 아예 법률자체가 필요 없게 된다.

중소기업 간의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 개정안은 최종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자는 담합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결국 중간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과 최종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간에 불필요한 생존경쟁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는 둘 다 붕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누가 비싼 값에 중소기업 제품을 사겠는가. 오히려 중소기업 생태계를 붕괴시킬 수 있는 위험한 법안이라고 본다.

물론 중소기업들이 영세하기에 협상력이 떨어지고, 기술개발 여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기술력을 높이거나 아니면 사업재편을 통해 적정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수단을 써야지, 담합을 허용한다는 발상은 방법 자체가 아주 고약하다. 부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든 정책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가장 최우선에 둬야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중심에 두어선 안 된다는 것을. 더욱이 경제에 대한 정책은 국민의 민생과 직결되는 것이니 이념이나 협상의 수단으로 남용하지 않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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