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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복수의결권 제도, 첫발 뗐지만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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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복수의결권 제도, 첫발 뗐지만 갈 길은 멀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11.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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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김용춘 한국경제인협회 팀장/법학박사

경영권 방어 위해 간신히 법 통과한 대신 덕지덕지 조건 투성이
구글이 탄생했던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누더기 조건 없어
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은 대통령실 홈페이지 캡처
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은 대통령실 홈페이지 캡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복수의결권 제도(dual class stock)가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7일부터 시행됐다. 이는 특정 주주들에게만 1주당 1개 이상의 의결권을 허용하는 제도로 경영권 방어장치의 일종이다. 우리 상법 제369조 제1항에서 1주당 1개의 의결권을 가진다는 원칙에 예외인 셈이다. 이 때문에 도입 당시부터 이래저래 반대가 많았다.

주요 반대 이유 중 하나는 법리적으로 ‘주주평등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점이다. 사람 머릿수를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민주주의와 달리 주식회사는 주식 수를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총선이나 대선에서 특정 사람에게 투표권을 더 준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미친놈 소리는 기본으로 들을 것이다. 막상 국회에서 제도를 시행한다고 하면 아마 국가적 폭동이 날 것이다. 그런데 주식회사에서 이 같은 차별 제도를 도입하겠다니 언 듯 납득이 되지 않는 점이 있을 것이다.

김용춘 전경련 팀장/법학박사
김용춘 한경협 팀장/법학박사

또 다른 반대 이유는 ‘경영자의 참호구축론(manager’s entrenchment)’이다. 즉 경영자가 막강한 의결권을 구축하여 다른 주주들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것이라는 의미다. 경영자는 안정적인 경영권이 확보되어 있기에 아무리 무능하다 하더라도 시장에서 퇴출되기 어렵다. 이는 시장기능의 정상적인 작동에도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복수의결권이 도입됐다. 위에서 언급한 우려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장점이 많다고 도입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맹주인 미국을 비롯해 일본,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이 도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에 약 17개국이 도입했으니 적지 않은 국가들이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입한 기업들의 실적도 좋다. 구글, 페이스북, 포드 등 복수의결권을 도입한 기업들은 고속 성장하거나 장기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우량기업으로 거듭났다. 불필요한 경영권 공격에 대한 부담이 적으니 오로지 기업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하려면 해당 벤처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해야 하는데, 경영자의 지분이 낮으면 기업공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경영자의 지분이 5%밖에 되지 않는 우량기업이 바로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때문에 성장동력이 떨어진 우리나라에도 이 같은 장점을 보유한 복수의결권이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이 많았던 탓일까. 우리나라 제도는 사실 이런저런 조건이 덕지덕지 붙은 탓에 얼마나 실효성있게 운영될지 의문이다. 우선 벤처기업법에 따른 비상장 벤처기업의 창업주에게만 허용된다. 창업주는 기업을 설립했을 때 발기인에 한정된다. 만일 중간에 인수합병(M&A)으로 인해 공동경영자의 자격으로 회사를 키운 사실상의 창업자는 이 제도를 이용하지 못한다.

경영자의 지분도 30% 이하로 하락해야 한다. 창업 이후 누적 투자 금액은 100억원 이상, 가장 나중에 받은 투자가 50억원 이상어어야 한다. 도입하려면 주주총회에서 발행주식총수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경영자 지분이 30% 이하니 사실상 나머지 주주 대부분이 동의를 해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도입하더라도 유지 기간은 최장 10년에 불과하다. 10년 내 경영권을 안정화하지 못하면 보통주로 전환된다. 경영자가 10년 내 회사 지분을 추가 매입할만한 자금을 알아서 벌라는 의미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적어도 해외의 복수의결권 제도는 시한부가 아니다.

첫 발을 뗐다는 의미는 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한국에서도 제2의 구글 같은 회사가 나와주길 바라는 마음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적어도 구글이 탄생했던 환경 정도는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구글이 탄생했던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누더기 조건은 없다. 계속 개선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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