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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제2의 엑스포 참패 막으려면...사실대로 말하고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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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제2의 엑스포 참패 막으려면...사실대로 말하고 들어라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12.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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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김용춘 한국경제인협회 팀장/법학박사

정보력 부재? 이미 현장서 뛴 기업 싫무자들은 상황 정확히 파악
직언하는 보고문화 정착 못하면 대형 참사 골든타임도 놓치게 돼
지난달 29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려 있던 엑스포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려 있던 엑스포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코 2030 부산엑스포 유치였다. 투표 직전까지 막판 대역전이 가능하다는 희망 섞인 분석들이 나오면서 많은 국민들이 뜬 눈으로 밤을 새기도 했다. 그러나 웬 걸! 결과는 참패였다. 전체 참가국 165개국 중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119표, 부산 29표, 이탈리아 로마는 17표를 얻었다. 요새 ‘졌잘싸’라는 말로 많이 위로도 하건만, 이번 건은 ‘졌잘싸’ 근처에도 못 갔다. 

사실 열심히 싸웠다. 손에 꼽을 정도로 민과 관이 원팀이 되어 정말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렇다면 적어도 ‘졌잘싸’ 정도는 됐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기대겠지만, 너무 막강한 상대를 만난 탓일까. 오일 머니에 국왕까지 뛴 사우디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충분히 위로 가능하다.

김용춘 전경련 팀장/법학박사
김용춘 한경협 팀장/법학박사

그러나 황당한 판세분석 실패에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혹자는 정보력의 부재라고 꼬집기도 하지만, 별로 동의하진 않는다. 사실 정보는 현장에 충분히 있었다. 엑스포 유치를 위해 열심히 뛰던 많은 기업 실무자들이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질 것 같다는 예상들을 계속 했었다. 우리 기업들이 한 나라를 접촉하면 사우디 측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포섭 작전에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자꾸 ‘박빙’이라는 말들이 나와서 참 의아해 했었다고 한다. 만일 이런 현장의 목소리들만이라도 충분히 보고가 됐다면 이번과 같은 오판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 소위 권위주의, 윗사람 눈치 보기로 인한 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온 나라의 수많은 리더들이 전력을 다해 뛰고 있는데 실무자가 어떻게 직언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약간 초치는 느낌도 있는데다, 말을 잘 못하면 오히려 무능한 사람이나 열심히 뛰지 않는 기업이라는 오해만 받을 테니 말이다. 혹 오해를 받지 않더라도 설득할 방안을 가져오라는 불가능한 숙제만 잔뜩 받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나하나 제대로 보고 안한다고 대세가 달라지겠어’라는 심리가 작동했고 이런 심리들 하나하나가 쌓여 판세 예측 대실패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실 이 같은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1997년 괌 공항 근처 항공기 추락 사건, 2013년 샌프란시스코 비행장 불시착 사고도 기장과 부기장간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였다. 존댓말과 서열 중시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보니 결정적인 순간 직언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 외에도 위기 징후가 있음에도 이를 바로 직언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친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불발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불발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서열문화, 물론 장점도 많지만 이제는 바꿀 필요가 있다. 혹자는 존대말 문화가 문제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하대말 혹은 반말이 문제다. 반말을 하면서 어떻게 상대방 말을 경청하며, 상대방은 또 어떻게 마음 편히 직언을 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업무 관계로 엮인 상대라면 상호 존중의 표현을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아랫사람 혹은 소위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비판적인 의견을 냈을 때 윗사람이 이를 ‘저 사람 예의가 없네’ 하는 식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평가를 하는 순간 상대방의 말에는 귀가 닫히고 상대방 표정만 바라보는 불통 관계가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리더들이 내려놔야 한다. 마음을 열고 아랫사람을 등등하게 대해 줘야 한다. 불통의 책임은 오로지 위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도 변화의 바람은 있다. 설립 이래 오직 반말로만 판결문을 썼던 법원에서 2020년 처음으로 존댓말 판결문이 나온 것. 물론 극히 일부 사례이긴 하지만 권위를 중시하는 법원에서 이런 변화가 시작됐다니 나름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본다. 이런 작은 변화가 씨앗이 되어 우리 사회의 큰 나무가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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