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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ESG 공시의무화, 급하게 추진하다 체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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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ESG 공시의무화, 급하게 추진하다 체할라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9.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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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김용춘 한국경제인협회 팀장/법학박사

명분만 있지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어 일단 시행부터 하자는건 무책임
불안정한 공시 제도는 부정확한 정보 공시로 이어져 결국 모두의 피해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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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ESG 공시의무화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ESG 공시제도 로드맵은 올해 3분기에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ESG는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관점에서 친환경(E), 사회적 책임(S), 지배구조 개선(G) 등의 요소를 고려한 기업의 성과지표를 말한다.

ESG 경영은 이미 글로벌 트렌드가 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피해갈 수 없는 과제다. 거부하면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못 받는 것은 물론, 해외 시장 진출에 있어 큰 장벽이 될 수 있다. 유럽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기후 변화를 중심으로 공시제도 의무화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지난 6월 ‘지속가능성 및 기후 공시의 글로벌 표준 최종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은 내년 3월 공시기준 로드맵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춘 전경련 팀장/법학박사
김용춘 한경협 팀장/법학박사

이처럼 국제 동향을 보면 우리도 빨리 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명분만 있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그 어디에도 없다. 세계 곳곳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온실가스 배출량 집계를 어떻게 산출하라는 것이냐’는 등의 질문만 쏟아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ESG 공시의무화를 추진하는 기관들도 일단 시행부터하고 추후 발생하는 문제들을 점진적으로 개선해가자는 무책임한 입장만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ESG 경영 공시 중 핵심 사항이 바로 온실가스 배출량 집계다. 일반적으로 공장굴뚝에 측정기 하나 설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온실가스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사무실에서 쓰는 전기, 수도, 가스, 원재료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량, 대형 전광판 이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등 기업 활동과 관련된 모든 탄소량을 집계해야 한다. 여기에 나아가 거래 공급망 내에 있는 모든 협력업체들이 발생시킨 온실가스량도 집계해야 한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ESG 공시는 바로 ‘연결’ 기준이라는 점이다. 즉 당해 회사뿐만 아니라 연결 자회사들 실적을 모두 집계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해외 사업장이 많은 제조업인 경우가 많다. 10대 기업 평균 자회사 수만 100개 가까이 된다. 당해 회사 실적을 집계하는 것도 어려운데 자회사들 배출 데이터도 함께 집계해야 한다.

다들 알겠지만 해외 사업장들은 각국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같은 전기를 써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다르다. 후진국에는 관련 인프라가 미흡하여 아예 집계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기업입장에서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려면 정확하고 획일적인 기준이 필요한데, 이를 마련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외 자회사 한 곳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전체 공시에 오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온실가스 하나만 예를 들어서 그렇지 100개 가까운 다른 공시 항목까지 고려한다면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ESG 의무공시 로드맵 발표 일정이 계속 연기되고 있다. 모호한 항목이 많다보니 기업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불완전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과 투자자,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불안정한 공시 제도는 부정확한 정보 공시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모두의 피해로 이어진다. 이처럼 리스크가 큰 제도에 굳이 스스로 앞장서서 실험대상이 될 필요가 있을까. 취지는 좋지만 때로는 다른 나라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안정화될 때까지 충분히 고민하고 논의하면서 오류를 미리 줄어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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