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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 칸의 낭보 이유는 시장에서의 경쟁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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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 칸의 낭보 이유는 시장에서의 경쟁 덕분이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6.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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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손흥민 우상혁 전웅태 등 스포츠 쾌거도 국력 신장 기반
정부 개입 아닌 자유로운 경쟁과 평등한 기회 보장의 결과
'2022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왼쪽)과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씨. ⓒCJ ENM

요즘 한국 영화가 이룬 놀라운 성취가 화제다. 제75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배우 송강호가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은 것.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남우주연상·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는 처음인데다 한·중·일 3국의 합작이라는 점에서 이번 수상이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다.

한국 영화가 최근 이룬 쾌거는 놀랍다. 2019년 봉준호 감독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미나리> 윤여정의 제93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오징어 게임> 오영수의 제79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 그야말로 한국 영화가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국내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스크린쿼터제 논란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런 삼류 국가적 시비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낭보가 비단 영화에서 뿐이랴. BTS는 월드 스타로서 레전드가 된 지 오래이고, 전 세계 젊은이들이 K-팝에 열광하고 있다. 스포츠에서의 성취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손흥민이 2021~202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르는가 하면 높이뛰기의 우상혁이 한국 육상선수 최초로 세계육상연맹(WA) 다이아몬드리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무엇보다도 값지다.

우상혁에 앞서 올림픽에서 한국 최초로 수영 금메달을 목에 건 박태환에 이어 박태환 키즈들이 금메달의 꿈을 키워가고 있고, 전웅태가 근대5종 2022년 시즌 첫 월드컵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도 한국 스포츠의 위상을 크게 높인 쾌거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한국 선수들이 수영, 높이뛰기, 근대5종 등 기초 종목에서의 괄목상대할 성취를 거둔 것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과거엔 신체적 조건에서의 열세로 육상경기에서 세계 톱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다 옛날이야기 됐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인들이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가 된 오늘의 기적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자유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기초 종목에서의 도약은 국력 신장의 결과로 이해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국력의 신장, 곧 경제성장이 국민 개개인의 신체적 변화를 가져왔다. 키가 커지고 몸무게도 불어났다. 이제 서양인들과 대등한 골격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젊은이들에서 그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기초 종목에서도 서양인들과의 경쟁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영화나 K-팝, 카툰,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공은 단순히 경제성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인간의 행동규칙이나 사고의 준거라는 측면에서의 문화를 배경으로 할 때 비로소 올바른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문화로서의 자유, 환경으로서의 자유야말로 지금까지의 모든 분야에서의 성취를 설명할 수 있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자유는 곧 시장에서의 경쟁을 의미한다. 공정한 경쟁은 자유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통제사회에서는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하지 않다. 통제는 곧 반칙과 특권에 의해 평등한 기회의 보장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일 스크린쿼터제가 계속 유지되어 왔다면 오늘날과 같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맞을 수 있었을까. 문을 안으로 걸어 잠가 놓고 우리 영화를 온실 속에서 키웠다면 한국 영화는 오히려 죽었을 것이다. 관객들은 할리우드 영화만 찾고 우리 영화를 외면했을 게 분명하다. 아무리 극장을 통제하여 일정 비율의 국내 영화를 상영하도록 강요한다 해도 재미가 없으면 관객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영화가 세계시장을 노크나 할 수 있었을까.

이미 오래전의 일이지만 한국 여자바둑이 지금보다 한참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을 때 세계적인 수준의 중국인 여류기사 루이나이웨이가 일본 바둑계의 문을 두드렸다. 일본은 거절했다. 하지만 한국 여자바둑계는 받아들였다. 당장은 한국 여자바둑이 루이나이웨이의 독무대였지만 이내 그의 경쟁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여자바둑은 한 단계 점프했다.

자유로운 경쟁과 평등한 기회의 보장이 가능한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국가 통제가 없는 시장이 가장 정의롭다. 모든 성취는 시장에서의 경쟁으로부터 나온다. 시장은 단순히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다. 도덕률과 그에 입각한 정의가 실현되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그리고 정부 개입은 정의의 실현을 방해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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