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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물가도 억제, 과대포장도 억제' 정부의 관리만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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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물가도 억제, 과대포장도 억제' 정부의 관리만능주의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1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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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쓸데없이 개입해 가격 통제하려는 데서 빚어진 현상
제발 시장을 이겨 먹으려는 헛된 시도는 그만해야
지난달 이마트 찾아 물가 점검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지난달 이마트 찾아 물가 점검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을 보며 황당함을 느낀다. 지금이 21세기 맞는지, 6~70년대로 되돌아간 건 아닌지 헷갈려서다. 6~70년대는 시장에 대한 이해가 낮았고, 뭐든 정부가 책임지고 해야 하는 줄 알던 시대였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직접 시장에 나가 물가를 단속하는 진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그런 일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6~70년대 정부의 물가 관리는 성공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듯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애당초 정부가 행정력으로 물가를 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였다. 관리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상인들이 ‘정상적인(?)’ 가격으로 거래하는지를 감시하고 단속했는데 그게 통할 리 없었다. 소비자가 물건을 사러 가면 상인들은 다 떨어졌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하지만 소비자도 안다. 진열대에 없다고 상품이 동난 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웃돈을 얹어주며 필요한 상품을 샀다. 이때 웃돈을 얹어준 값이 바로 시장가격인데 그걸 비정상이라고 보고 정부가 강요하는 가격을 정상 가격이라고 보는 데서 모든 문제가 생겨났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반드시 부작용을 초래한다.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을 줄임으로써 실질 가격 인상 효과를 누리는 행위를 뜻하는 슈링크플레이션도 쓸데없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가격을 통제하려는 데서 빚어진 현상이다. 정부는 식품업계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가격 인상 자제를 여러 차례 촉구한 바 있다. 말이 좋아 ‘촉구’지 실상은 압박이었다. 정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식품업체들은 가격 인상 요인이 있어도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하지만 손해를 보며 장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손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헛장사를 하려는 기업도 있을 리 없다. 그럴 거면 뭐 하러 위험을 감수하며 사업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 가격은 그냥 두고 용량을 줄이는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이것을 ‘꼼수’라며 비난하는 건 온당치 않다. 기업으로서는 꼼수가 아니라 비상구를 찾은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비상구를 찾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기업의 자구책을 부도덕한 행위로 몰아간다. 웃기는 것은 정부가 일을 저질러서 발생한 사태를 놓고 슈링크플레이션 근절 대책을 발표하는 등 부산을 떠는 것이다. 그건 정부가 국민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색내기 아니면 자기 최면용이거나, 아니면 둘 다를 위한 것일 뿐이다.

정부는 물가를 잡겠다며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농식품 28개를 지정해 매일같이 가격 동향을 살피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서 뭘 어쩌자는 건가. 아니 기업을 압박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한가. 그야말로 19세기적 관료주의의 전형을 21세기 대한민국, 그것도 자유를 강조한 윤석열 행정부에서 본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물론 기업이 소비자들을 속이는 행위 그 자체는 부도덕하다. 나아가 비록 정부가 촉발한 사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기만은 기업 스스로 그간 쌓아 온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손해다. 중요한 건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보다 슈링크플레이션이 자신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는 점을 인식하여 기업 스스로 교정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면 될 일도 안되며, 부작용만 생긴다는 건 경험으로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문제 해결은 정부의 몫이라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그럴만한 힘을 갖지 못한다. 정부의 크기를 아무리 키워도 그런 능력은 생겨나지 않는다. 설사 전 국민을 공무원으로 만들어 시장을 감시하라고 한다 해도 그 목적은 이룰 수 없다. 왜냐면 공무원이라고 하더라도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용량의 변경 사실을 상품에 표기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용량 변동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전담 조사팀도 구성하고 있으며, 과태료 부과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 또한 코미디다. 용량 표시도 아니고 용량의 변경을 표시하라니 그럴 때마다 발생하는 비용은 정부가 보전해줄 참인가. 사실 용량 표시도 강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이 스스로 소비자에게 정보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 기업도 그게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데 더 유리하다. 그런 것을 정부가 강제하면 불신만 키우게 된다. 한 가지 장점(?)은 있겠다. 모니터링을 위한 팀을 만들기 위해 공무원 수를 늘림으로써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것 말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과자 제조업체 바프(HBAF)가 웹사이트를 통해 ‘허니버터아몬드’ 등의 용량 변경 사실을 자사 몰을 통해 고지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강조했듯 바프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기업 스스로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시장은 정화 기능까지 갖고 있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기업이 사후 서비스(after service)를 하는 것은 자사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만족도와 신뢰를 높임으로써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는 노력인데, 이런 노력은 정부가 강제하지 않아도 기업 스스로 한다. 이것이 바로 시장의 힘이다. 제발 시장을 이겨 먹으려는 헛된 시도는 그만하고, 정부 역할의 한계를 바로 이해하길 바란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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