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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톺아보는 세상만사] 65 ...택배기사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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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톺아보는 세상만사] 65 ...택배기사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
  • 김혜림 기자
  • 승인 2021.05.0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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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주 71.3 시간...과로사 기준 64시간 웃돌아
'재벌 택배사들' 근무여건 개선비용 소비자들에게 떠안겨

65개

국토교통부의 연도별 택배물동량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체 18개 택배 사업자의 택배 물량은 총 33억 7818만 9000개입니다. 2020년 12월 31일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는 5182만 9023명입니다. 따라서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1명이 보낸 택배가 65개 이상인 셈입니다. 매주 적어도 1개 이상의 택배를 주고받았다고 보면 됩니다.

2016년 20억개를 넘어선 뒤 매년 10% 안팎 늘어나던 택배 물량이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21%나 늘어났습니다.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하면서 비대면 소비문화가 확산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전년보다 19.1% 증가한 161조 1000억원으로 200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CJ대한통운
ⓒCJ대한통운

코로나 19로 택배 물량만 늘어난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물건의 종류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CJ대한통운이 지난 한 해 동안 배송된 16억개 택배 상품의 운송장 데이터를 최근 분석한 결과 식품군 물량이 2019년보다 50%나 증가했습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식품(22%)-패션·의류(20%)-생활·건강(18%) 순이었으나 지난해에는 그 순위도 바뀌었습니다. 식품(29%)에 이어 생활·건강(20%) 제품군이 패션·의류(18%)를 뛰어넘어 2위가 됐습니다. 전염병이 유행하니 위생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서였겠지요.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홈오피스 가구 수요도 엄청 늘었습니다. 의자 택배 물량은 112%, 자세 교정을 위한 교정의(의자 보조용품 포함) 물량은 3042%나 증가했습니다.

김혜림 대기자
김혜림 대기자

택배는 이제 우리들의 생활과 뗄 수 없는 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택배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택배 기사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택배 물량은 늘었지만 배송 단가가 떨어진 탓입니다. 모든 물가가 오르는데 택배단가는 왜 저렴해지는 걸까요. 택배사업은 본사와 대리점 사이에서 계약이 이뤄지고 택배 기사는 개인사업자로 대리점에 소속 됩니다. 택배회사들이 과당경쟁을 하면서 제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택배 평균 배송단가는 2000년 3500원에서 해마다 낮아져 2019년 2269원으로 떨어졌습니다. 단순 계산을 해도 1.5배의 일을 해야 20여년 전인 2000년의 수입을 겨우 유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대리점의 과도한 중간 수수료 요구도 택배기사들의 호주머니를 가볍게 만드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택배기사들은 일 하는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입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과로사 인정 기준은 ‘직전 3개월 주 60시간 이상 노동’ 혹은 ‘직전 1개월 주 64시간 이상 노동’입니다. 택배기사는 과로사 기준을 훨씬 웃도는 시간을 일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과로로 목숨을 잃은 택배기사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전국에서 택배기사 16명이 과로로 숨졌습니다. 올 들어서도 벌써 5명이 과로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택배노조는 “재벌 택배사들이 택배노동자들에게 분류작업을 강요하는 탓”이라면서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택배기사들은 새벽에 출근해 배송할 물품을 직접 분류한 다음 배달에 나섭니다. 지난해부터 택배사들은 ‘택배 분류 전담 인력’을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인원이 충분치 않아 여전히 택배기사들이 분류 작업을 맡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주요 택배업체들이 기업 고객에 이어 개인 고객의 택배 가격도 올렸습니다. 업체들은 택배 기사 과로 방지를 위한 분류 업무 추가 인력 투입 비용과 자동화 설비 증설 비용 부담 때문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택배기사들이 현장에서 분류 업무를 하지 않게 돼 ‘택배 기사 과로사’란 뉴스를 보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 비용을 소비자가 떠맡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한번 톺아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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