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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봉황이 될뻔한’ 이재명이 놓친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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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봉황이 될뻔한’ 이재명이 놓친 세 가지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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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대통령감은 위기에 닥쳤을 때 보이는 품격으로 판가름
의료 공약 스스로 깨고 수일간 메시지 없이 침묵 일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서울대병원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입원 중인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인근에 경찰병력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망상이든 아니면 그 어떤 신념이든 테러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절대로 용납 못할 범죄행위다. 우리는 이미 해방정국에서 정치인에 대한 숱한 암살의 역사를, 그로 인한 씻어지지 않는 가슴속 얼룩을 갖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에 대한 테러는 그 깊은 흉터를 지우기 위해서라도 역사의 이름으로 단죄해야 한다. 문제는 이재명 본인이다. 이재명은 이번 사건을 통해 봉황이 될 기회를 놓쳤고 도리어 스스로 나락에 몸을 던진 꼴이 됐다.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야박해 보여도 누구 표현처럼 그는 의전 서열 8위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야당 대표이자 5천만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자리를 꿈꾸는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위기를 대처하느냐는 모습에 따라 그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달라진다.

그는 세가지 기회를 놓쳤다. 첫 번째 놓친 것은 위기에서의 의연함이다. 몹시 어려운 상황이나 위기에 봉착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대처하는 것을 ‘의연하다’라고 표현한다. ‘毅然’은 의지(意志)가 강(強)하여 사물(事物)에 동하지 않음을 뜻한다. 자신에게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굳세어서 끄떡없다는 뜻이다. 대낮에 그것도 지지자를 가장해서 곁을 허락했는데 불시에 당한 상황이라 황망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절체절명의 순간이 닥치면 지도자의 그릇이, 그 민낯이, 그 품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미국 대통령 46명 중 9명에게 암살 시도가 있었으며 그중 4명이 죽었다. 살아남은 5명 중 암살 시도 이후 지지율이 폭증한 대표적인 경우가 레이건 대통령이다. 그는 1981년 3월 30일 오후 2시 35분, 괴한이 쏜 총알을 가슴에 맞은 뒤 정확히 10분 만에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다. 응급실 도착 직후 잠시 의식을 잃기도 했던 레이건의 상태는 총상 부위 출혈 때문에 수축기 혈압이 80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위중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고난도의 수술을 시작하기 직전 마취과 의사가 레이건의 오른쪽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대통령을 안심시키자 레이건은 갑자기 자신의 입을 덮고 있던 산소 마스크를 힘겹게 끌어내렸다. 그 경각을 다투는 순간 그는 수술실의 의사들을 향해 “당신들이 공화당원이라고 말해달라”라는 농담을 건넸고 당시 수술을 집도한 조셉 조르다노 박사는 실제 민주당원이었는데 “오늘만은 우리 모두 공화당원입니다”라고 응수해 레이건과 의료진을 웃음지게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미국 국민들은 물론 심지어 민주당원마저 레이건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치학 책에는 ‘레이건 민주당원’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국민들이 정치 지도자에게 미래를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이 시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도 그 지도자가 보여준 의연함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대통령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여준, 총알 따위로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기개가 있지 않은 자에게 핵폭탄 발사 명령을 내리는 버튼을 누르기 직전 극도의 자제를 통한 최적의 판단을 맡길 수 없다.

이재명이 놓친 두 번째 기회는 말의 신뢰, 언행일치의 실천이다. 그는 2021년 12월 31일 중앙당사 브리핑룸에서 대통령 후보로서 지역·공공·필수 의료인력 양성과 전 국민 주치의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공공의료 확충’ 공약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공공의료원이 서민과 소외계층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현장에서 배우고 깨우쳤다"면서 "탁상공론의 벽에서 겪은 좌절감이 현실정치로 뛰어들게 만들었다"고 공공의료 대선공약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성남시장 당선 후 일부 기득권과 정치세력의 저항을 뚫고 시민을 위한 성남시의료원을 건립해냈다"면서 "경기도지사 당시 과감한 결단으로 도립의료원을 신축, 의료원의 현대화를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했다"고 자랑했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과 결단으로 전국적인 지역 의료 체계를 완성시키겠다던 그는 스스로 지역 의료 체계를 부정하며 우리나라 최고 권역외상센터를 신뢰하지 못하고 지역의료 붕괴의 상징인 ‘서울행’을 단행했다. 자신이 아무리 권역별 의료체계를 완성한다해도 결정적인 순간 스스로 서울의 5대 병원을 고집한다면 그 누가 지역의 공공 의료 체계를 따르겠는가. 부산대 병원에서 수술 받고 치료를 이어갔다면 부산시민들의 지지는 물론 그의 공약에 대한 믿음은 눈덩이마냥 커졌을 것이다.

세 번째는 말의 적기, 메시지의 '타이밍'과 화합의 메시지를 통한 통 큰 정치인의 모습이다. 리스크 관리의 초점은 그 리스크를 대응하기 위해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정치인은 말해야 할 순간에 해야할 말을 하지 않으면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총선을 90여일 앞둔 민주당은 피습 사건 이후 헬기 수송의 적절성 여부와 부산지역 민심, 의사회의 잇단 성명 등 심각한 위기 국면에 처해 있다. 민주당은 헬기 수송이 불법이었으면 고발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악의 하수 하책이다. 법대로 하자는 것은 대통령 후보였던 지금은 제1야당 대표인 이재명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그만큼 여론의 따가운 질책에 몰려있다는 상황만 드러낸 것인데 이 모든 것은 이재명의 길어지는 침묵 때문이다.

2003년 5월 20일 괴한의 흉기에 길이 11cm, 깊이 3cm의 자상을 입고 3시간 동안의 수술을 받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사건 다음날인 21일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당의 입장을 보고받고 “오버하지 말아달라”는 지시를 내렸고 피습 9일만인 29일 퇴원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짤막한 글을 통해 "저는 이번 일로 인해서 제 얼굴에 난 상처보다도 국민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을지 걱정"이라며 "이제 우리 모두가 서로의 아픔을 치료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저의 피와 상처로 모든 갈등과 상처가 봉합되고, 하나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화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남겼다.

의연함을 통한 기개, 언행일치를 통한 신뢰, 화합의 메시지를 통한 소통을 놓친 이재명이 길이 1.4cm 상처를 딛고 꺼낼 일성(一聲)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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