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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김예지가 한동훈에 한 말은 ‘패기’가 아니라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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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김예지가 한동훈에 한 말은 ‘패기’가 아니라 ‘투쟁’이었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1.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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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한 “참여만으로 도움된다”에 김 “그 이상 보여드리겠다”
존재만으로 상징시키는 것보다 활동 정당하게 평가해야
국민의힘 첫 비대위에서 한동훈 위원장과 김예지 비대위원의 발언을 담은 동영상. 시사포커스tv 섬네일 캡처.
국민의힘 첫 비대위에서 한동훈 위원장과 김예지 비대위원의 발언을 담은 동영상. 시사포커스tv 섬네일 캡처.

국민의힘이 새 출발을 하는 첫날인 지난 12월 29일 새로 임명된 비대위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동영상을 접하게 됐다. 이 영상의 제목은 ‘한동훈-김예지 오늘도 케미 뿜뿜?...김예지 깜짝 패기에 화기애애’였다. 그러나 영상 내용은 제목과 달랐다. 그것은 패기가 아니었다. 이 영상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비대위원들을 ‘우리 팀’이라고 부르며 한 명씩 소개를 마치고 난 뒤 각각 소감을 듣는 순간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순서가 되자 김예지는 비대위원직 제안을 받고 고사하려 했던 이유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운을 뗐다.

그는 자신이 전임 지도부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신임 비대위원 제안을 받고 망설였지만 “(한 비대위원장이) 구상하는 비대위의 구성과 운영 계획에 내 역할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유가 다 있을 것이라는 위원장에 대한 믿음으로 없는 길을 만들어가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회적 약자와 또 소외된 분들의 목소리를 당에 전달하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배려와 존중과 자제가 있는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드는 데 하나의 밀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예지의 소감이 끝나자 한동훈은 자신이 김예지를 위원으로 ‘모시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분을 위해서 일한다기보다는 그런 분들이 같이 참여해서 같이 정치를 해야 빛나는 정당이기 때문에 김예지 의원은 이렇게 참여해 주는 것 자체만으로 그리고 여기서 좋은 말씀 해 주시는 걸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다음 순서를 진행하려는 한동훈에게 김예지는 그 순간 끼어들어 “그 이상을 보여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영상은 한동훈이 김예지의 말에 “고맙습니다”라고 응답한 것에 대해 ‘미소’라는 자막을 달고 거기에 ‘윤재옥도 흐믓’이라고 옆에 앉은 윤재옥 원내대표의 반응까지 자막으로 설명했다. 이 장면을 두고 이 영상의 편집자는 ‘김예지의 깜짝 패기’라고 표현하며 당시 현장 분위기를 ‘화기애애’라고 설명한 것이다. 김예지의 ‘그 이상을 보여드리겠다’는 말은 그러나 ‘패기’가 아니라 ‘반박’으로 느껴졌다. 한동훈이 김예지의 말에 덧붙인 설명은 듣기에 따라 이 정당은 국회에 입성한 여성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기본적 태도가 아직 바뀌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17대 국회부터 비례대표 여성할당제가 도입되면서 각당의 비례대표 1번과 비례의 50%가 여성 몫이 됐다. 총선에서 각 당의 비례 1번은 ‘정당의 얼굴’이기에 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주요 정책 등을 유권자에게 알리고 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혹은 그 당에 대한 지지가 부족했던 계층이나 지역·세대, 나아가 정책을 보완할 인물들을 찾아 내세움으로써 지지층의 확장을 꾀하기도 한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 비해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비례대표에 당의 이미지를 쇄신해줄 인물들을 선정해서 이슈를 주도해왔다.

18대 강명순 빈민활동가가 대표적 사례다. 빈민활동의 대모라 불리며 사당동에서 본격적인 빈민 운동에 나선 강명순은 빈민가에 무료 유치원, 야간학교를 세웠고 가정 폭력 피해 어린이를 보듬는 ‘그룹홈’ 등을 만들었으며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업, 나아가 무담보 소액대출의 물꼬를 텄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헌신적으로 봉사 활동을 벌여 온 여성에게 주는 ‘모스트 다이나믹 우먼 어워드’를 비롯해 여러 무게 있는 상을 받기도 했다. 강명순이 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발표되면서 충격을 받은 민주당과 좌파진영에서는 “빈민의 대모에서 부자의 식모로 전락하나”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만큼 강명순은 제정구와 함께 사회 전복이 아닌 빈민 구제 활동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비례 1번은 아니지만 19대의 이자스민 다문화가정 활동가도 눈길을 끌었다. 당시 이자스민은 이주여성의 상징으로 또 다문화가정을 위한 헌신적인 활동을 인정받아 정치에 입문해 최초의 귀화인 출신 국회의원이 됐다. 남편이 재난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시부모 시할머니 시동생 등 3대에 걸친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살며 시집 살림을 책임졌고 이주 여성들의 봉사단체이자 문화네트워크인 물방울나눔회 사무총장을 맡는등 다문화가정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이자스민이 비례대표로 선정되자 민주당은 “다문화 가정과 이민자를 보호한다는 의제를 새누리당에 빼앗겼다“고 한탄했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페북을 통해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이 이주여성인 이자스민을 비례대표에 공천한 것은 혜안을 보여준 일”이라며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민주당이 먼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강명순과 이자스민 외에도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많은 분야의 인재들을 일회성으로 소비하기 급급했고, 비례로 선정만 하고 입성만 시켰을뿐 그들이 상징했던 의제를 자신들의 정당에 체화시키는 노력은 뒷전이었다. 이 정당에 있어 그들은 늘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그 결과 강명순은 임기를 마친 뒤 빈민활동 현장으로 되돌아갔고 이자스민은 21대 국회에서 정당을 바꿔 정의당 비례로 9번을 받아 낙선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이자스민의 탈당에 이은 정의당 합류를 "뼈아픈 실책이었다"며 “인재를 일회성으로 소비만 하는 우리를 반성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취임사’를 제대로 읽지 않고 폄하하는 정치인이 많다. 그저 한동훈이 싫고 밉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연설에는 그동안 쌓여왔던 대한민국 정치의, 그리고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 연설문이 진심이었다면 한동훈은 김예지의 발언에 ‘참여해 주는 자체만으로’ 도움이 된다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의원 입장에서 듣기에 따라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김예지는 의원으로서 입법 활동에도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이었다. 김예지가 대표 발의한 법안 건수는 총 161건으로 한 해 평균 50건이 넘고(21대 국회의원 1년 평균 발의 건수 22건) 그중 91건이 장애인과 관련된 법안이었으며 이 밖에 살인이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경우 촉법연령을 14살에서 12살로 낮추는 법안, 학교폭력 범위에 사이버 학교폭력을 명시하도록 하는 법안 등 주요 사회적 의제를 반영하는 법안이 대부분이었다.

김예지는 장애인으로서 참석만으로 존재하려는 의원이 아니라 비장애인 의원 못지 않게 활동으로서 평가받고 있는 의원이다. 뛰어난 인물들을 비례로 선정해서 반짝 이슈몰이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들의 활동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정당에 각인시켜야 한다. 김예지의 “그 이상을 하겠습니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다는 인정투쟁이었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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