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4-04-28 01:40 (일)
[이의경의 시콜세상]“베낀 건물을 철거하라”는 역사에 기록될 명판결
상태바
[이의경의 시콜세상]“베낀 건물을 철거하라”는 역사에 기록될 명판결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11.07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ㆍ이의경 대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공인회계사

웨이브온 짝퉁 카페 지재권 배상 넘어 철거 명령
4차 산업혁명 도래 맞춰 답답한 가슴 뻥 뚫어 주는 ‘사이다판결’
법원 로고 ⓒ연합뉴스
법원 로고 ⓒ연합뉴스

최근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판결이 꽤 많은 것 같다. 그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들이 과거에는 주로 법관의 예단과 선입견, 그리고 전관예우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의 판결을 보면 여기에 법관의 정치적 성향까지 더해진 것 같다. 이렇게 여러 가지 요소가 판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법 정의의 실현은 복불복(random choice) 게임과 비슷하게 된다. 배정된 법관에 따라서 판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 구제는 요원하고 범죄자들은 당당해지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법원에 대한 불신이 쌓이는 중 지난 9월에 눈에 띄는 훌륭한 판결이 있었다. 누군가가 부산에 있는 ‘웨이브온’이라는 카페의 건물을 거의 그대로 베껴서 울산에 짝퉁 건물을 지어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오리지널 건물인 웨이브온이 울산의 짝퉁 카페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서부지방법원 민사11부(재판장 박태일)는 짝퉁 카페의 건축사 사무소보고 웨이브온을 설계한 이뎀건축사 사무소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한 것이다. 판결내용이 여기까지라면 저작권 침해에 대한 처벌이 역시 이런 정도로 끝나는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법관은 이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베낀 건물을 철거하라”고 판결했다.

이의경 대진대학교 교수/공인회계사
이의경 대진대학교 교수/공인회계사

웨이브온은 곽희수라는 건축가가 설계하였는데 그는 서울의 고소영 빌딩, 강원도 정선에 있는 원빈 집 등을 설계했고, 2017년 세계건축상,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울산 짝퉁 건물이 얼마나 부산의 오리지널 건물과 똑같은 모습인지 문외한이라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심지어 인터넷 검색어에서는 ‘울산웨이브온’이 등장하고 있다. 곽희수 건축가는 웨이브온을 울산에도 지었냐는 지인의 질문에 짝퉁 건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됐다고 하여 학계에서는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논문과 저서는 물론 강의노트도 함부로 남의 것을 가져다쓰면 안된다고 강변하고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까지도 유사도검사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조계의 인식은 이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저작권의 중요성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 보호에도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올해 3월에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로 몰려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죽어야 이슈가 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저서나 음반의 경우에도 좀처럼 표절작의 폐기 판결이 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법조계 현실이다. 그러니 베낀 건물을 아예 철거하라는 판결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많은 판결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 주는 ‘사이다판결’이라고 하고 싶다. 남의 책 내용을 그대로 훔쳐서 자기 이름으로 표지갈이 한 책을 보면서 그 대담성에 놀랐지만 건물을 통째로 베끼는 대담성에는 더 놀랐다.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말이다.

범죄자들의 대담성은 처벌의 경미성을 먹고 자란다. 대담하게 저지르고 버티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벌금이나 약간의 배상으로 끝나면 범죄의 수익성은 높아진다. 그래서 사회 곳곳에서 범죄자들이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버티고 또 버티는 것이다. 웨이브온 소송의 이번 판결은 1심 판결이다. 표절자들은 베낀 건물을 철거하라는 판결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당연히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전관예우 변호사를 동원하는 상황이다. 전관예우 변호사 비용이 비싸다고 해도 건물을 철거하는 비용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2심을 거쳐 3심에 가서 건물을 존치하라는 판결로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 명판결이 법외적 요소로 훼손되지 말아야 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