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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첫걸음] 이윤의 70%를 암투병 소방관에 기부하는 기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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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첫걸음] 이윤의 70%를 암투병 소방관에 기부하는 기업은?
  • 김혜림 기자
  • 승인 2022.10.25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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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 실천>행동하는 사람들(57) 119 레오
소방관이 우릴 구하듯 우리도 소방관 구하는 세상 만들기
'119 레오' 이승우 대표가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매장에서 폐기처분될 방화복으로 만든 슬링백을 보여 주고 있다. 소방관이 불을 끌 때 묻은 그을음이 그대로 남아 있다. ⓒ 매일산업뉴스 김혜림 기자 

[매일산업뉴스] 영업이익의 50~70%를 기부하는 기업이 있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그런 기업이 있나요?” 이런 반문이 돌아올 만하지만 실제로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업사이클링 브랜드 ‘119 레오(REO)’다.

어디에, 왜 영업이익을 절반 넘게 나눠주고 있는 것일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스페이스 살림’ 119 레오 매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이승우(29) 119 레오 대표는 “암 투병 소방관의 권리 보장을 위해 쓰고 있다”면서 “그들을 돕기 위해 출범한 브랜드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브랜드의 119는 바로 화재신고 전화번호 아닌가! 이 대표는 ”레오는 ‘서로가 서로를 구한다’는 ‘Rescue Each Other’의 앞 글자를 딴 것“이라면서 ”화재, 재난상황 등 위험에 처하면 소방관이 우리를 구해 주듯이, 우리도 함께 소방관을 구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19 레오는 그동안 13명의 암투병 소방관에게 1억여원을 기부했다. 또 그들의 소식을 알리는 크고 작은 전시회 후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소방관을 위한 브랜드답게 119 레오는 내구연한이 지난 방화복 호스 등 소방장비를 활용해 가방 등 패션 소품을 만든다.

폐기처분 될 소방복과 호스 등으로 만든 119 레오의 가방들.  ⓒ 119 레오

매장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가방들이 있었다. 방화복으로선 생명이 다했지만 베이지색 원단은 튼실해보였고, 방화복에 있던 연두색 형광띠를 활용한 장식은 모던했다. 그을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방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이 대표는 “우리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들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후가공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익추구가 아니라 기부를 위해 창업했다니, 그 예사롭지 않은 탄생의 뒷이야기를 캐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 대표는 빙긋이 웃으면서 “대학생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암으로 목숨을 잃은 소방관을 알게 됐고, 비슷한 형편의 소방관들을 돕기 위해 아예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를 119 레오로 이끈 것은 고(故) 김광석 소방관이었다. 김 소방관은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으나 공무상 상해(공상)를 인정받지 못했다. 공상을 인정받으려고 소송에 나선 유족을 돕기 위해 이 대표는 2016년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카카오스토리에서 펀딩을 했다. '소방관을 위한 모금'임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을 화마로부터 지켜주는 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한 가방을 내걸었다. 200만원 목표로 시작한 펀딩은 4일째 4000만원을 넘을 만큼 대성공이었다.

이 대표는 “1년 뒤 고 김 소방관의 아버님께 700만원을 전했으나 받지 않으시고 ‘아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인사만 되레 받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 돈은  2명의 암투병 소방관들에게 기부했으나 그들은 소송도 시작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 대표는 “‘자네 덕분에 아들이 잊혀지지 않았다’는 말씀이 귀에 맴돌아 제 통장을 털어 고 김소방관의 일대기를 담은 전시회를 열었다”면서 “암투병 중인 소방관 한분한분을 기릴 수 있는 전시회를 열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고 했다.
고 김소방관 일대기 전시회는 2018년 5월 4일 국제소방관의 날에 오픈했다. 창업은 그해 8월에 했다. 이후 119 레오는 버려지는 방화복을 소방서에서 가져와 재활용하고 있다. 방화복은 보통 3년 정도 입으면 내열성이 떨어져 폐기처분된다.

이 대표는 “방화복의 세탁과 해체 작업을 지역자활센터에 맡기고 있다”면서 “지역을 지키는 소방대원의 방화복 재활용이 지역 취약계층의 일거리로 연결되니 이 또한 서로를 구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뿐만이 아니다. 방화복의 재활용은 탄소절감효과도 가져와 지구를 구하는 일에도 한몫한다. 1000~1200도의 열을 견뎌내는 방화복은 아라미드라는 화학섬유로 만든는데, 이를 폐기할 때 그 무게의 2.5배가 넘는 탄소가 발생된다. 올해 9월 현재 119 레오는 27톤의 방화복을 재활용했다. 줄잡나 67.5톤의 탄소발생을 줄인 셈이다.

이 대표는 앞으로 119 레오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 한편 소방관 돕기에 더 힘을 쏟을 생각이다. 해외진출 가능성은 이미 검증받은 바 있다. 2019년 일본에서 두 번의 펀딩을 진행했을 때 목표액의 2~3배를 달성했다.

“소방관을 영웅으로 보는 미국과 업사클링에 대해 호감이 높은 유럽을 타깃으로 열심히 뛰고 있다“는 이 대표는 내년 5월 4일 소방관의 몸을 주제로 한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소방관들 몸의 화상흉터를 통해 어디서,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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