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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미국 눈치보는 민주당, 친중주의·반미주의·자주외교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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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미국 눈치보는 민주당, 친중주의·반미주의·자주외교 맞아?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9.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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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2003년 노 대통령 방미 성과 높이 평가한 한나라당
민주당은 상대 진영 묻지마 반대하는 ‘비토크라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영국ㆍ미국ㆍ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24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영국ㆍ미국ㆍ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24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2003년 5월 15일 한나라당 대변인실의 공식 논평 기조다. 노 대통령은 당시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한미동맹 강화 ▲북한 핵 불용 및 평화적 해결 ▲경제∙통상협력 확대 ▲미2사단 후방배치 신중 추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이번 방미에서 자신에 관한 미국 조야의 '반미(反美) 이미지'를 고치는데 주력했다. 한국내 강한 반미감정이 접전이었던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한 요인이었다고 폭넓게 간주됨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미군의 한국 주둔에 큰 장애가 없다”면서 “미군의 영구주둔을 옹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방미외교에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전략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줏대있는 대북포용정책과 전통적인 한미동맹 복원을 추구하려 노력했다”라고 상찬했다. 당시 대변인실도 노무현-부시 정상회담 발표문을 보고 당황했다고 한다. 대미 자주외교를 표방하는 노 대통령이 주한미군 영구주둔을 옹호하고 이라크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며 미국의 한국내 반미주의 성향에 대한 우려를 누그러뜨리려 노력하다니….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후 몇 개월 안되는 시점에서 상대 대통령을 칭찬하기가 일견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성과를 지엽적인 해프닝들을 트집 잡아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평가했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당시 6박 7일을 지근에서 수행한 외교관은 노 대통령 일행을 만난 미국인들에게서 한국에 대한 공분을 느꼈다고 술회한다. 만나는 이들마다 “노 대통령이 반미주의자이지 않은가, 한국의 젊은 층들이 미국을 싫어한다는데 사실인가”라고 묻고는 “한미동맹 관계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 노구의 공화당 상원의원은 “젊은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한국전을 기억하고 있는 늙은이들은 한국의 반미운동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런 분위기를 되돌려놓고자 노력한 상대진영의 대통령에 대해, 또 자신들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외교 노선과 일치한 점에 대해 한나라당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의 민주당은 정당이라기보다 부족에 가깝다. 그들에게 강령이나 이념에 입각한 일관된 입장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낸시 팰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방한 때 대부분의 민주당 의원들은 휴가를 중지하고라도 팰로시 의장을 만났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의 초청을 받은 외교일정도 아니었고 출국 전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방문을 말렸다는 후문도 나오고 있어 외교적으로 민감한 상황이었다.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된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민주당 진영은 소속 김의겸 의원처럼 윤 대통령이 면담하지 않은 것을 환영해야 한다. 만약 윤 대통령이 짬을 내서 특별히 만났다면 민주당 의원들은 ‘사대외교’ ‘굴욕외교’라고 맹공을 퍼부으며 강력히 규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흠집내기에 혈안이 된 이 집단은 갑자기 친미주의자, 실용주의자로 돌변했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도 마찬가지다. 일단 대통령실에서 미국 의회와 바이든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의원들은 대정부 질문과 SNS 등을 통해 “미국과 미국 의회와 미국 국민들에 창피하다” “욕설이 영어로 번역돼 인터넷에 확산되고 있다” “대미 외교 어떻게 할거냐” “미국에 사과하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원래 보수진영이 이렇게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소위 말하는 반미주의자 친중주의자들은 통쾌했어야할 비속어였어야 하지 않은가? 비속어를 일상어로 쓰는 언행에 대한 문제는 다른 차원의 논란이다. 이동중 내뱉은 혼잣말에 가까운 문장을 갖고 외려 ‘미국의 눈치를 보며’ 즐기는 자들이 무슨 정치인인가.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가 2018년 언급한 ‘정치적 부족주의’는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보다 개인이나 지역, 단체에 대한 충성도가 정치를 지배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부족 본능'이 있는데, 여기서의 부족이란 개인에게 소속감과 애착 및 충성심을 갖게 하는 집단을 뜻한다. 부족 본능을 가능케 하는 것은 유대감과 안정감이다. 반면에, 이 집단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들은 무조건 징벌하려는 속성도 함께 갖는다. 타인, 타집단, 타당을 공격함으로써 부족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고 정치적 효능감을 증폭시키며 그를 위해 끊임없이 타인, 타집단, 타당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키운다. 추아 교수는 대립과 분열이 이념 때문이 아니라 특정 개인, 특정 집단, 특정 정파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집단의식에서 초래한다고 분석한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 “우리 명이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말하는 문파, 개딸 등의 종교적 집단주의는 결국 상대진영은 무엇을 해도 안된다는 ‘정언명령’을 내포하고 있다. 부족주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국익과 국민을 위한 것이요, 상대 집단이 하는 것은 모두 적폐이고 사욕과 불의를 기반으로 행한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2013년 처음 언급한 ‘비토크라시’는 민주주의(democracy)에서 대중을 뜻하는 데모(demo) 대신 거부를 뜻하는 비토(veto)를 넣어 만든 말로 상대 당의 정책과 주장이라면 일단 거부하고 보는 극단적 파당 정치를 뜻한다. 당시 ‘오바마케어’를 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다 결국 미 연방정부가 16일간이나 문을 닫은 ‘셧다운’ 사태가 발생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이를 개탄했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묻지마 반대, 묻지마 찬성'의 광기는 10년여전의 미국보다 더 참담하다. 비토크라시의 폐해 중 하나는 상대 진영의 증오와 분노에 맞서느라 자칫 자기 진영의 잘못을 바로 잡지 못한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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