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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이재명과 트럼프, 개소리와 헛소리의 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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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이재명과 트럼프, 개소리와 헛소리의 달인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4.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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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사실 여부는 무의미, 자신의 주장 앞세운 '개소리'만 난무
워싱턴포스트 분석 “트럼프는 하루 6회 거짓말” 이재명은?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개소리와 헛소리와 잡소리와 상소리 중 어느 것이 가장 해로울까. 실속이 없고 미덥지 않은 소리, 조리 없고 당치 않은 소리, 여러 가지 시끄러운 소리, 거칠고 상스러운 소리를 뜻하는 헛소리, 잡소리, 상소리보다 ‘개소리’가 가장 위험하다고 갈파한 사람은 해리 프랭크퍼트 프린스턴대 철학 교수다. 개소리는 ‘진실이나 거짓 어느 쪽으로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허구의 담론’이다.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라는 책을 통해 개소리와 거짓말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 말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보여주는 데 반해,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 즉 진실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개소리란 완전한 거짓말이라기엔 조금 부족하고 액면 그대로 받기엔 말도 안 되는, 하지만 단순한 헛소리와는 달리 화자의 교묘한 의도가 숨겨진 말이다. 거짓은 진실로 바로 잡을 수 있지만 아예 진실이 퇴색한 개소리는 바로 잡을 수 없기에 프랭크퍼트는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해롭다고 주장한다.

개소리를 밥 먹듯 하는 정치인은 단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2017년 플로리다에서 열린 정치 집회에서 테러에 관한 연설을 하는 중에 트럼프가 “독일에서 일어난 일을 보세요. 그리고 어젯밤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을요. 스웨덴이에요. 누가 이걸 믿을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고 이 말을 언론을 통해 접하고 화들짝 놀란 스웨덴 정부가 스웨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급히 공식 성명을 발표했음에도 수많은 미국 국민은 스웨덴 정부의 말보다 트럼프의 말을 믿었다. 물론 당시 독일에서도 스웨덴에서도 테러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워싱턴포스트’가 팩트 체크한 것을 프랭크퍼트의 구분대로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개소리’한 횟수는 3만 건이 넘는다. WP는 트럼프의 재임 기간 발언 내용을 분석해 그가 임기 4년간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3만 573번 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개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빈도가 높아져 취임 첫해에는 하루 평균 6건, 2년 차에는 하루 16건, 3년 차에는 하루 22건, 마지막 해에는 하루 39건이나 됐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속담을 전용하면 트럼프는 개소리를 숨쉬듯이 한 셈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다가오는 미국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 유력하다. 이유가 뭘까.

트럼프 지지자나 백인우월주의자, 복음주의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보다 만들어진 진실에 열광한다. 지금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객관적 증거가 사실로 인정되는게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유용할 때 사실이라고 인정되는 세상이다. 이 과정에서 객관성을 상실한 사실은 각자의 필요성에 의해 각색되고 윤색된다. 가짜뉴스로 대중을 선동하는 쪽에서는 끊임없이 악마화한 적(敵)을 만들어 내고(트럼프에겐 딥스테이트, 이재명에겐 검찰독재) 그렇게 우리 밖에 전복돼야 할 적들이 존재하는 한 있는 그대로의 진실보다 ‘대안적 진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거전문가로 불리는 칼 로브는 일찍이 “사실은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변호사를 통해 쏟아낸 ‘수원지검 연어 술판’ 관련 거짓말들로 인해 진실을 밝히고자 검찰이 들인 시간과 인력의 낭비야말로 개소리를 통한 프레임 전쟁이 정치판에서 왜 벌어지나를 알 수 있게 한다. 검찰이 아무리 진실의 증거들을 보여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그의 개인적인 정당인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진실에 입각해 정치적 입장을 정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입각해 진실을 바꾸려 한다. 일관성 없는 주장이 재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이화영의 변호인이 벌이는 어처구니 없는 진실 공방의 목적은 자신의 의뢰인인 이화영의 감형이나 일부 무죄 다툼이 아니라 곧 있을 이재명의 대북송금 사건 기소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술자리 회유’는 존재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존재해야만 하는’ 절대 명제다. 그것이 객관적 사실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이재명은 기자들에게 그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이화영의 진술은 100% 사실로 보인다” “검찰이 말을 바꾸고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예정돼 있는 자신의 대북송금 사건 기소를 탄핵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의도가 담긴 발언들은 앞서 말했듯 헛소리, 잡소리, 상소리가 아니라 ‘개소리’의 영역이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개소리다.

트럼프나 이재명처럼 거짓말이어도 계속 반복해서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믿게끔 하는 탈진실(post truth) 정치 전략은 공동체 사회에 회복 불가능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 범죄자들이 정치인으로 둔갑해 공직 선거에 나가 ‘비법률적 방법’으로 명예를 되찾으려 할 때 사법적 권위는 무너지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공통된 신념, 예를 들어 죄를 지은 사람은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상식’이 붕괴된다. 공동체는 사실에 대해 공통된 신념 공유를 기반으로 존립하는 것인데 구성원들이 사실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을 갖고 있다면 그 공동체는 존속이 불가능하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일찍이 이런 선전 선동의 가짜들이 판치는 세상을 우려했다. 그리하여 그는 “사색하지 않는 시민에게 정치적 자유는 없다”고 조언했다. 대한민국에는 사색이 아니라 검색을 하면서 특정 정치인의 개소리를 퍼나르는 사람들이 자유민 즉 시민임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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