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4-05-10 12:55 (금)
[김용춘의 Re:Think]일본 따르지 않으려면 재테크 단어 없애라
상태바
[김용춘의 Re:Think]일본 따르지 않으려면 재테크 단어 없애라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1.02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ㆍ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팀장/법학박사

‘일본 잃어버린 30년’의 참으로 기구한 단어
재테크에만 올인하는 사회는 역동성 창의성 상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재테크(財tech). ‘재무 테크놀로지’의 줄임말로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을 강타한 단어 중 하나였다. 재테크 광풍이 몰아친 우리나라에선 전통적인 부동산, 주식, 채권뿐만 아니라 코인, 대체 불가능 토큰(NFT), 미술품, 명품 등으로 투자 범위가 확대 되었다. 투자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영역이라 믿었던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광풍’이었다. 직장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회사걱정, 나라걱정이 아니라 재테크 정보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었다. 얼마나 재테크 투자 광풍이 불었는지 한국에서 거래되는 코인 가격이 더 비싸 ‘김치코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재테크라는 단어를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 이 재테크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것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출발점에 서 있는, 어찌 보면 참으로 기구한 단어다.

김용춘 전경련 팀장/법학박사
김용춘 전경련 팀장/법학박사

따지고 보면 이렇다. 모두 알다시피 1980년대까지 세계 최고의 호황기를 구가하던 일본은 1985년 미국과 플라자 합의를 맺으면서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기 시작했다. 플라자 합의로 일본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일본 제품의 수출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하자 일본 정부는 성장 동력 확충을 위해 내수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금리를 인하하고 대출을 크게 확대하면서 일본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수익성이 약화된, 그렇지만 금고에 돈은 많았던 일본 기업들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투자에 그 역량을 확대해 갔다. 이때 일본 기업 사이에서 재무 관리 기술, 즉 재테크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일반 국민들에게 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 후 일본 경제의 결과는 모두들 아는 바이다. 1990년대 버블이 꺼지면서 일본의 경제 시계는 30년간 멈춰버렸다. 일본 젊은이들은 너무도 높은 집값에 좌절하며 근로의욕을 상실하기 시작했고, 육아 부담에 아이를 갖는 것도 꺼리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돈을 풀던 정부는 빚더미에 앉았고, 재테크에만 관심을 갖던 기업들의 경쟁력은 크게 떨어졌다. 1980년대 전 세계무대를 주름잡던 소니, 파나소닉, 캐논, 도시바, 미쓰비시 등의 기업들이 조용이 뒤편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이 재테크라는 단어에서 출발한 일본의 잃어버린 시간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모습은 지난 수년간 한국의 모습과 꽤나 흡사하다. 서울에서 내 집은 이제 일해서 살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고, 2000포인트에서 횡보하던 주식시장은 불과 1년여만에 3000포인트 중반까지 급등했다. 기업들은 물을 만난 듯 IPO에 열을 올렸고, 또 어떤 기업들은 본업이 아니라 부동산, 골프장으로 돈을 긁어모았다. 국민들은 여기저기 재테크 강좌나 책을 찾아다니며 눈에 불을 켰다. 재테크 성공을 통한 조기은퇴, 즉 Fire족이 생기는가 하면, 젊은이 중에는 아예 취직을 포기하고 투자에만 몰입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부가 15년 동안 400조원에 가까운 저출산 예산을 썼음에도 출산율은 연일 최저치를 갱신 중이다.

어떤가. 과연 이런 사회가 역동적이고 지속 성장이 담보되는 사회가 되겠는가.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한국도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개인의 재테크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열풍이 불 정도로 모두가 재테크에만 올인하는 사회의 미래는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에는 자기 본업에만 충실해도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 출발점은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 내 일에 충실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 아니겠는가. 방법은 있다. 이 땅에 재테크라는 말이 사라지게 하면 된다. 2023년은 그 원년이 되길 기대해 본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