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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새 정부, 환갑 넘은 규제만이라도 풀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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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새 정부, 환갑 넘은 규제만이라도 풀어달라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4.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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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팀장/법학박사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먼저 외치고 잊혀지는 단골메뉴
50, 60년대 만들어진 낡은 규제만이라도 과감히 철폐해야
[매일산업뉴스]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우리의 오늘은, 어제는 상상도 못했던 기술과 제품들로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법과 제도는 수십년째 그대로인 것이 수두룩 하다. 또 우리들의 인식도 과거의 틀에 갇혀 낡은 제도들을 너무 당연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때다. 새 칼럼 <김용춘의 Re:Think>는 현재 우리 경제와 제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 경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민주노총 홈페이지 캡처
ⓒ민주노총 홈페이지 캡처

87위.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한국의 규제 성적표다. 79위 베트남, 84위 방글라데시보다도 못하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 자부하는 나라의 성적표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규제 성적표가 수십년간 이어온 만성질환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조사 방법이 정치(精緻)하지 못하다거나,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더러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계경제포럼 보고서는 국제적 공신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에서도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자주 인용하고 있는 것을. 더 이상 87위라는 부끄러운 성적표에 흠집을 내며 위안을 삼기보다, 이제는 과감하게 규제를 개혁하는데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규제개혁을 외쳐왔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가장 먼저 외치는 정례적인 단골메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늘 실패를 반복했다. 오랜 기간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젠 익숙하다 못해 현장에서는 규제개혁에 대한 기대감마저 사라졌다. 차라리 규제가 늘지만 않아도 다행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마저 나올 정도다.

분명 규제개혁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오늘날, 적어도 전쟁직후 아무것도 없었던 50년대, 60년대 만들어진 낡은 규제만이라도 과감하게 철폐해야 하지 않을까.

김용춘 전경련 팀장/법학박사
김용춘 전경련 팀장/법학박사

예를 들어 노동조합이 파업할 때 우리나라 기업은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 없는데, 이는 6ㆍ25 전쟁이 한창인 1953년 3월 노동조합법 및 노동쟁의 조정법이 제정되면서 도입된 것이다. 이 제도는 당시 다른 선진국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1964년에 독립한 아프리카의 말라위 정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 한국이 사실상 세계 최초로 도입한 제도라 할 수 있겠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산업도 없고, 노조도 없었으니 이런 독소 조항이 있어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노조가 우리 사회에서 강자로 군림하는 오늘날에는 이 조항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주식회사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은 최대 3%까지만 행사할 수 있다(소위 ‘3%룰’). 이 제도의 역사는 1962년 제정 상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입법 이유서를 찾아봐도 왜 3%로 제한했는지, 도대체 어떤 나라의 법률을 참조한 것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당시 상법안심의위원회 위원이었던 분 중 한 명이 대주주 견제를 위해 의결권을 3%로 제한하면 좋겠다는 말을 지나가는 식으로 한 것이 발단이 됐다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3%룰에 대해 당시에도 의결권은 주주권의 본질적 권한인데 이를 제한하는 것은 주주평등의 원칙 및 재산권 침해라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산업과 금융시장이 워낙 낙후되어 있다보니 어영부영 상법에 도입되었다. 그로부터 60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당시로써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3%룰을 악용해 우리 기업을 괴롭히기도 했으며, 자회사를 지배하는 것이 본래의 사업 목적인 지주회사들은 의결권 행사가 크게 제한되고 있다. 만일 3%룰이 장점이 많은 제도라면 다른 나라들이 도입할 법도 하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같은 3%룰을 도입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 외에도 최근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디지털치료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비대면 의료제한 규제, 건설사의 경쟁력 향상을 제한하는 건축설계업 진입제한 규제, 자율주행 로봇의 보도ㆍ횡단보도 통행을 제한하는 규제 등 낡은 규제가 산적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규제들이다.

새 정부도 규제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제다. 오래된 규제일수록 뿌리가 깊게 박힌 사마귀처럼 치료가 더욱 힘들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추진력, 국민들의 동의가 없다면 불가능에 가깝다. 많은 기업인들이 묻는다. 혹시 이번 정부는 다르지 않을까? 5년 뒤에는 기업인들이 이렇게 말을 했으면 좋겠다. 이번 정부는 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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