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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서비스경영ㆍ23]대기행렬은 문전성시가 아니라 회사자산의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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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서비스경영ㆍ23]대기행렬은 문전성시가 아니라 회사자산의 낭비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1.08.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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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인천공항, 업계 최초 승객예고제로 14년 연속 ACI 1위
시설 인력 효율적인 배치로 대기행렬 줄이고 수익 높여야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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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비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쓰는 건 돈의 낭비만큼이나 싫어한다. 서비스가 늦어질 때 고객이 갖는 불만은 종종 강한 감정, 심지어 분노를 자극한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와 시내버스의 기다림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심리적 차이 때문이다. 설레임과 불편함에 대한 지각의 차이로 고객은 같은 시간에 다른 경험을 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그냥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다. 동반자가 있을 때보다 혼자일 때 더 지루하고, 대기할 시설이 없을 때 피곤함은 가중된다. 앉아 있어도 주변이 쾌적하지 않으면 기다림은 더 지루하다. 서비스 전후의 기다림과 서비스 중의 기다림 역시 다르다. 테마공원 입장을 위한 기다림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한 기다림보다 더 지루하다. 불공정한 기다림은 불만이 되지만 공정한 기다림이면 부정적 효과가 줄어든다. 익숙하지 않은 기다림도 지루하다. 경험해 본 기다림에는 걱정이 적지만 생소한 경우엔 대기시간이 얼마인지 무슨 이유인지가 궁금하다. 설명이 없는 기다림도 지루하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더해지고, 낯선 위치에서 기다릴 땐 불안감이 가중돼 더 길게 느껴진다.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고 느끼면 스포츠 이벤트나 콘서트를 위해 불편한 위치에서 밤을 새울 만큼 기다림에 너그러울 수도 있다.

대기시간은 서비스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다. 대기행렬을 확률적으로 다루는 대기행렬이론(queueing theory)은 고객의 도착과 대기, 그리고 서비스 프로세스의 확률적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대기행렬의 길이와 평균 대기시간, 서비스 시간을 추정해 현재 시스템의 공급력을 최적화할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의 최소화를 위한 대기행렬모형은 본래 생산 현장에서 인력과 장비, 자재의 유휴시간을 최소화하는 공정관리에서 출발했다.

공항은 대기행렬이 불가피한 서비스 팩토리다. 2001년 개항 당시 인천공항은 최첨단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국제공항협회(ACI)의 서비스 평가에서 체크인 32위, 출국심사 16위, 보안검색 15위, 친절도 18위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긴 대기행렬이 문제였다. 줄을 서면서 시작되는 여객의 스트레스는 항공사의 체크인 카운터에서 여권과 항공권 등을 확인받는 수하물 계측과정에서 정점에 달한다. 중량 초과로 짐을 다시 싸야 한다면 스트레스는 배가 된다. 이어 보안검색과 출국심사를 받는 과정으로 진행될 때마다 고객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허희영 저자 '서비스경영' (북넷)
ⓒ허희영 저자 '서비스경영' (북넷)

대기행렬의 문제점을 절감한 인천공항은 2004년 업계 최초로 ‘승객예고제’를 도입했다. 항공사의 예약정보를 받아 이튿날 출국하는 여객의 수를 터미널의 접점별로 예측해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 등에 공지하는 방식이 피크타임마다 효력을 발휘했다. 혼잡도를 대폭 개선한 인천공항은 2006년부터 14년 연속으로 ACI의 평가에서 1위로 받아 최고의 평판을 쌓았고, 지금은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어 있다.

대기는 선착순이 기본이지만 모든 사업장에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고객마다 다른 대기시스템을 운영하는 게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유리할 수 있다. 병원의 응급실에선 긴급성을 따져 먼저 치료할 환자를 판단하고, 유통매장에선 서비스에 걸리는 시간에 따라 패스트트랙을 두는 게 효과적이다. 프리미엄 가격을 낸 일등석 승객에겐 직원이 탑승수속을 따로 챙겨주고 공항은 패스트트랙을 운영해 시간과 불편함을 줄여준다. 백화점이 VIP 라운지를 제공하는 것도 가치가 높은 고객의 지루함을 줄이려는 배려다. 길게 늘어선 고객들을 보고 문전성시로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대기하는 시간만큼 고객과 회사의 소중한 자산은 낭비된다. 시설과 인력의 효율적인 배치는 대기행렬을 줄이고, 서비스품질과 수익을 높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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