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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유쾌한 정숙씨’를 배출한 정당이 영부인 역할 축소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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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유쾌한 정숙씨’를 배출한 정당이 영부인 역할 축소법을?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5.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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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안주인에서 벗어나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 세계적 추세
선거과정부터 흑색선전으로 정쟁화하더니 법제화로 발목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가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이 끝난 뒤 발코니에 올라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가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이 끝난 뒤 발코니에 올라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의 부인을 놓고 정쟁의 대상으로 도마 위에 올려 최악의 소모전을 벌이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으뜸이다. 그런 대한민국에서도 선거 과정부터 상대당 후보 부인을 흑색선전의 중심에 두고 ‘악녀화’한 것은 지난 대선이 처음이었다. 이제 대통령에 당선되고 1주년을 맞이한 시점인데도 총선을 앞두고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대통령의 부인을 일거수 일투족 감시하면서 공격거리를 찾아내 확대재생산하는 ‘정치적 괴롭힘’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대통령 부인의 지위와 역할은 모호할 수 밖에 없다. 대통령 부인은 선출되거나 임명된 공직자가 아닌데도 국가적 예우를 받는다. 어떠한 법적 권능과 책임이 없으면서도 대통령에게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정치학자 함성득은 ‘영부인은 대통령과 이혼할 수는 있어도 절대로 해고되지 않는 대통령의 제1 참모이자 제1 심복‘이라고 규정했다.

2000년대 초부터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에 대해 “21세기의 퍼스트 레이디는 단순한 내조자가 아닌 ‘정치적 행위자’”라는 인식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치학자 이승희는 세계적으로 영부인의 역할이 전통적 내조형에서 정치적 내조형을 거쳐 전문적 참여형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직 여성이 증가하면서 또 국정운영의 과정에서 풀어야할 갈등의 요인이 다원화하면서 단순한 내조자, 운둔형 영부인의 역할과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있는 추세다.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해야 할 공식적이고 관례적인 역할이나 대통령의 일을 도와준다는 조력자 차원에서 벗어나 국정운영에 대해 공동책임의식을 가지고 대통령과 보조를 맞춰 나가는 정치적·정책적 동반자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대통령 부인들이 국민들에게 점점 더 지지를 받고 있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환경, 교육, 자원봉사, 여성 인권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대변인이나 친선대사 역할을 수행했고 실제로 각 부처를 순회하며 공무원들에게 오바마 정부의 변화된 정책 방향을 알리고 국민적 지지를 받도록 견인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 사르코지 여사도 정치적인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기금의 국제대사로 활동하면서 ‘에이즈 퇴치 기금’에 1억1000만 유로를 기부하기로 한 이탈리아가 예산에서 이를 책정하지 않았다고 직격해 양국의 외교적 갈등을 빚기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의 25세 연상 부인인 브리짓 트로뉴는 역대 최강 정책형 퍼스트레이디로 불린다.

미국 최초로 자신의 일과 영부인 역할을 병행해 ‘워킹 퍼스트레이디’로 불리는 질 바이든 여사는 헬기 착륙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제 갈 시간이 됐어요(We got to go)”라고 말하고 이후 서둘러 답변을 마무리한 남편을 데리고 헬기로 향하며 언론에 양해를 구했다. 미국 언론은 이날의 ‘상황’에 대해 “남편이 적당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제대로 내조했다”고 평가했다.

정치적 동반자 이상의 역할을 한 미국 대통령 부인은 많다. 그들은 우리나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예를 들어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운영과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단독으로 추진하는 사업을 법제화해 정책적 역할을 실연하기도 한다. 엘렌 루이스 윌슨의 ‘도시주거법’, 베티 포드의 평등권 수정, 로잘린 카터의 ‘정신건강관리법’, 낸시 레이건의 마약추방 캠페인, 힐러리 클린턴(영부인 시절)의 ‘의료보험개혁법’ 등이 그 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부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법률이 있어 예산확보를 통한 영부인용 사업(Pet Project)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두고 있기 때문에 영부인의 독자 사업을 위한 입법화가 가능하다. 이는 1978년 만들어진 미국연방법전 제3편 제105조에 규정된 조항으로 ‘대통령의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는데 있어 대통령의 배우자가 대통령을 지원하는 경우 그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지원 및 서비스가 대통령의 배우자에게도 부여된다’고 명시돼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공식행사에 관례적으로 참여하는 의전형 △대통령과 동반하는 활동만 하는 의존형 △기본 책무에만 충실한 안주인형으로 축소해 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국빈 방미중 넷플릭스의 한국 투자 계획과 관련해 중간중간 진행되는 과정을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던 대통령 부인에게도 보고 했다는 대통령실의 발표를 문제삼아 "국정개입이 드러났다"며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대통령 부인’이라는 역할 설정을 위해서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하고, 그 정치적 영향력 행사의 부정성을 막고 긍정적 역할을 확대할 수 있게 미국처럼 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시대가 변해 퍼스트 레이디들이 과거의 안주인으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나 대통령의 정치적 정책적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를 역행해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규정해 축소하려 하고 있다.

이 법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에 동행했을 때 독자 일정으로 현지 동포들을 격려하거나 기후변화·빈곤 퇴치 등의 글로벌 이슈에 동참해왔던 역대 영부인과는 달리 남편과 떨어져 개인 시간만 나면 미술관, 박물관에 가거나 유명 관광지만 찾아다녔던 영부인을 ‘유쾌한 정숙씨’라고 칭송한 정당이 만들 법안은 아니다.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4개월전 방문한 인도를 혼자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찾아간 그 영부인 얘기다.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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