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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윤 대통령의 ‘민생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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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윤 대통령의 ‘민생 행보’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9.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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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2012 박근혜의 승리는 ‘민생대통령 vs 정권심판론’
전문영역인 대통령 이미지 구축은 ‘일관성과 반복성’
윤석열 대통령이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9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 무료급식소인 명동밥집에서 백광진 명동밥집 센터장과 김치찌개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9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 무료급식소인 명동밥집에서 백광진 명동밥집 센터장과 김치찌개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추석 민생 행보가 화제다. 역대 대통령의 집권 첫해 추석 연휴 기간 행적을 보면 큰 줄기에서 ‘정국 구상’이라는, 바꿔말하면 한숨 돌려 쉬어가는 일정을 가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첫 추석에 라디오 출연과 대구·경북 방문을 제외하면 가족들과 휴식을 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휴 하루 전 전통 시장을 찾은 것을 빼면 청와대 경내에서 출범 후 첫 정부 예산안과 핵심 공약인 기초연금안 확정안 등을 점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첫 추석 기간 동안 러시아 방문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청와대에 머물며 정국 구상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반발과 관련 청와대에서 보고를 받았다.

왜 역대 대통령들은 첫 추석에 청와대에 머물며 ‘정국 구상’을 했을까. 1987년 현행 헌법 체제 이후 문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2월 하순 취임식을 하고 약 7~8개월 정도 지나서 첫 추석을 맞는다. 이 시기는 창업기의 어수선함이 어느 정도 정돈되고 청와대와 내각의 인사 진통도 정리된 시기이며 집권 후 펼쳐나갈 아젠다도 시스템에 의해 국정운영에 반영되기 시작한다. 더불어 국정 아젠다의 집행을 위해 첫 예산 국회와 국정감사라는 통과의례를 치러내야 한다. 숨가쁘게 달려온 7개월을 반추하고 남은 4년 5개월을 위해 신발끈을 동여매는 순간이다. 윤 대통령과 같이 5월초 취임식을 한 문재인 대통령의 첫 추석 연휴는 사실상 호강의 시기였다. 적폐청산이라는 주문을 외우면 언론은 깃발을 들고 지지율은 출렁이고 야당 반대도 사라지는 마법의 시기였으니...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윤 대통령은 달랐다. 지지율은 바닥을 확인한 후 게걸음을 계속하고 있고 추석 밥상 물가를 잡기 위해 650억 원을 투입했지만, 태풍이 과수농가 등을 덮쳤으며 야당은 자신들의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핑계로 전쟁 의지를 다지고 있다. 대통령실에 편히 앉아 정국 구상을 할 여유조차 없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윤 대통령은 추석 연휴 첫날부터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을 찾아 조리복을 입고 김치찌개를 만드는 등 봉사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을 맡고 나서 정부의 존재 이유를 더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며 “어려운 분들 곁에 늘 정부가 있고, 대통령이 있다는 약속을 임기 내내 지켜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역대 대통령들도 명절에 비슷한 행보를 한 적이 있는데 왜 윤 대통령의 행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윤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 이미지 구축’(President Identity, 이하 PI) 부재였다. 후보 시절 윤석열이라는 브랜드를 유지시켜준 이미지는 ‘소탈 정직 포용’이었다. 당시 이재명 후보와의 차별화를 고려한 전략적 포지셔닝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대통령의 이미지 세팅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들은 같은 인물인데도 후보로서의 이미지와 대통령으로서의 그것은 달라지길 원한다. 윤석열 대통령실은 이 점을 간과했다. 도어스테핑으로써 쌓아나가고 싶은 이미지는 또 다시 후보 시절의 ‘소탈 정직’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몇 차례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로 인해 소탈 정직마저 놓치고 오만 고집 등의 이미지만 덧붙여졌을 뿐이다.

PI의 핵심 요소인 브랜드 정체성은 브랜드 퍼스낼리티와 포지셔닝으로 이루어진다. 브랜드 퍼스낼리티는 한 브랜드를 인간으로 표현했을 때 그 브랜드와 관련된 인간적인 특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통령의 자질, 리더십, 가치관, 이념 등으로 완성된다. 브랜드 포지셔닝은 유권자들의 마음 속에 브랜드만이 가지는 고유한 위상을 구축함으로써 유권자가 브랜드에 대한 핵심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호의적이며 강력한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계획하는 것을 의미하며 국민들이 인식하는 대통령의 이미지에다 퍼스낼리티가 서로 섞여 원형질을 만들고 정치 행위로 표출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반응하며 이는 다시 대통령 이미지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상대 진영의 집요한 프레임전으로 후보 시절부터 덧씌워진 ‘무능’ 이미지에다 관련 연상어로 ‘음주 공처가 고집’ 등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반복해서 공격당함으로써 본인이 보여주고 싶은, 국민이 보고 싶은 대통령의 이미지는 구축되지 못했다. 민주당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국정철학을 기반으로 한 정체성을 도출하고 현장에서 몸소 실행하는 가운데 그것을 일관성 있게 밀어붙이면서 반복적으로 노출시키지 못했다. 한마디로 전문가의 영역인 PI의 부재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유는 바로 프레임전에서의 우위 점유였다. 당시 문재인 후보와의 대선 구도는 ‘민생대통령 vs 정권심판론’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민생을 외면한 정부, 이명박 정부는 민생에 실패한 정부이고 문재인 후보가 집권하게 되면 민생이 실종된 이념정부가 될 것이며 자신은 그들과 달리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으로 국민 한분 한분의 삶을 돌보는 민생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다. 반면 문재인 후보 측은 ‘이명박근혜’라는 조어를 통해 청와대 대통령인 이명박과 여의도 대통령인 박근혜의 공동책임론을 들고 나와 회고적 투표를 부추겼다. 결과는 전망적 투표를 이끌어낸 박근혜의 승리로 끝났다.

영국의 디즈레일리 총리는 “정치가란 시대의 피조물, 상황이 낳은 자식, 그 시기의 창조물”이라고 말했다. ‘그 시대, 그 상황, 그 시기’를 빨리 읽어내고 핵심을 추출하여 대중의 귀에 쏙 들어오는 표현으로 반복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실은 집권 초기 너무나 많은 의제를 귀에 들어오지 않는 언어로 잡다하게 펼쳐놓았다. “무얼 원하는지 몰라 다 갖고 나왔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윤 대통령은 이미 7월 초 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경제가 어려울수록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서민과 취약계층”이라며 “민생 안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현장 행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며 그 선언대로 매주 시장과 마트를 돌며 민생을 점검해왔다. 이렇듯 의제의 일관성을 보이면서 추석 연휴를 맞아 현장에 뛰어든 것이 현장 행보의 정점으로 받아들여져 ‘민생’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서서히 형성하고 있다. 아울러 대통령실 쇄신 이후 홍보수석실을 중심으로 메시지의 통일성 안정성이 이루어지고 돌발 이슈들이 줄어들면서 리스크 관리를 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선채소의 물가지수가 28% 올라 상추 배추 부추 등을 외면해야 하는 현실에서 현장에서 땀 흘리는 대통령을 사시로 바라볼 국민이 있을까.

맹자는 유항산자 유항심(有恒産者 有恒心) 무항산자 무항심(無恒産者 無恒心)이라 하여 생업이 있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바른 마음을 지닐 수 있다고 했다. 생업이 절실한 사람에게 합당한 일자리가 고루 주어질 수 있도록 민생을 살펴야 마음이 편안해서 나라가 잘 돌아가고 태평성대가 된다는 것이다. 사마천도 사기에서 “백성은 먹고 사는 문제를 근본으로 여긴다”(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윤 대통령의 PI가 제대로 구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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