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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를 부추기는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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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를 부추기는 세력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8.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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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입법·사법·행정의 갈등 해소 영역 침범
정치 무능과 분파 정치로 인한 기현상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갈등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엔진, 동력이라고 말한다. 현대사회가 비록 수많은 인구로 구성된 거대한 국민국가라고 할지라도 갈등을 통해 폭넓은 사회 구성원들이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정당은 갈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위계화해 가장 큰 규모의 대중을 동원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조직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갈등이 공적영역에서 논의될 때 갈등의 사회화가 이뤄진다.

정치학자 최장집도 갈등이라는 키워드로 정당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하나의 사회에서 이를 구성하는 집단들의 이해관계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갈등과 균열은 당연할뿐만 아니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이해관계가 다른 사회집단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대표되어 제도의 틀 안에서 타협하고, 일정한 내용의 잠정적인 합의를 이루어 결정에 도달하는 하나의 정치적 방법”을 의미한다.

계층·세대·지역·젠더·종교 그 어느 갈등이든 정치라는 영역 속에서 최대한 각 이해당사자의 이익을 수렴하여 풀어야한다. 우리가 보통 3권 3부라고 부르는 입법(정당의 개념까지 포함해서) 사법 행정의 3개 영역은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행정부는 ‘예산의 집행’으로 갈등을 푼다. 국가 예산이 무한하지 않는한 갈등의 모든 축(軸)이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이 풍족히 누릴 수 있는 자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정부의 영역에서 정치는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다. 그러므로 행정부는 예산 집행, 즉 돈을 쓰면서 갈등을 최소화한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사법부는 ‘법대로’가 갈등 해소의 방법이다. 시쳇말로 ‘법대로 합시다’에서의 ‘법대로’는 법 조문과 판례를 통한 재판부의 결정에 맡기자는 의미다. 최종심의 판결은 그 누구도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갈등 해소 방법은 물론 중재라는 민사소송에서의 제도도 있지만 대부분 피고와 원고 중 갈등 당사자 한쪽의 승리이자 다른 쪽의 패배로 귀결된다.

정당과 국회는 ‘타협과 협상’으로 갈등을 해결한다. 우리가 보통 ‘숙의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지리한 과정을 통해 ‘합의’라는 작동원리로 제 이익당사자들의 갈등을 수렴한다. 토론이라는 과정과 표결이라는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갈등의 축들은 그 즉시 총과 칼로써 이해관계의 충돌을 해결하려할 것이다. 사법과 달리 정치의 영역에서 갈등 해결은 완승과 완패의 결과를 지양한다.

3부의 갈등 해결 영역은 서로 침범해서도 안되고 침범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치는 지금 그 영역을 침범하게 하고 그를 방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다. 숱한 갈등을 사법부로 끌고 가면서 “법대로 합시다”를 외치고 있다. 정치 무능에 따른 중재와 협상, 타협이 사라지면서 갈등 해결을 사법부에 의존하는 ‘갈등의 사법화’다.

출발은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의 ‘적폐청산’ 깃발 아래 자행된 적폐수사다. 행정부의 영역인 예산 집행에 대해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라는 법조문을 조자룡 헌칼 쓰듯 휘둘러대며 단죄했다. 문 정부 이전에는 검사의 권한으로 재판 회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설령 재판을 하더라도 대한민국 법원이 강제성 여부를 엄격히 따졌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권리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법의 목적에 부합하게 해당 조문은 공무원의 재량권 남용이나 갑질을 원천봉쇄할 만큼 굉장히 포괄적이어서 자칫 걸면 걸리는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치의 사법화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가처분 신청과 해당 재판부의 인용 결정으로 이어졌다. 당대표라는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당의 공식 의결 기구들을 거친 결정을 정지시켜달라고 정당의 정치행위를 법정으로 끌어들였다. 해당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전국위원회가 의결한 안건 중 비대위원장 임명과 관련해 직무를 정지시켜버렸다. 물론 정치의 영역을 사법의 영역으로 끌고간 이준석과 그를 방치한 당지도부의 ‘정치의 사법화’ 잘못이 우선되겠지만 해당 재판부의 정치적 결정에 담긴 ‘사법의 정치화‘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비대위 설치와 관련 당대표와 최고위원 간 의견이 다른 경우 비대위 설치가 당원의 총의를 반영한다고 볼 수 없을뿐만 아니라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에 비례하여 구성된 당기구 사이의 민주적 내부질서를 해할 수 있어 허용될 수 없다”라고 적시했다. 비대위 설치와 관련해서 당헌 당규가 비상상황에 대해 구체성을 띠고 있지 않아 대단히 모호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데 ’당대표와 최고위원 간‘ 이견이 있으므로 재판부가 주어인 결정문에서 ’허용할 수 없다‘는 동사를 사용할 수 있을까.

재판부는 다음 구절에서 “당대표와 일부 최고위원들이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반대하고 있었음에도 전국위 의결로 그 지위와 권한을 상실해 당원의 총의를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주지하다시피 이준석은 해당 정당의 공식기구인 윤리위원회로부터 당대표로서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징계조치로 당원권이 정지돼 있는 상태다. 따라서 당대표의 반대라는 정치적 의사 행위의 권한도 정지돼 있는 상황이다. ’일부 최고위원들‘의 반대라함도 9명의 최고위원 중 김용태 최고위원 단 한명의 반대다. ’들‘이라는 복수형도 부적절한 사용이고 그 크기에 있어서도 재판부가 든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소결에서 주호영 비대위원장이 전대를 개최해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할 시 “당원권 정지 기간이 도과되더라도” 당대표로 복귀안돼 회복 못할 손해가 발생하므로 주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주 비대위원장이 전대를 올해 내로 개최할지 내년 2월 이후에 할지는 당원의 총의를 모아서 하면 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이준석의 복귀 여부는 달라지는 것인데도 이준석의 복귀를 재판부가 열어주기 위해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의 돌이킬 수 없는 손해에 대해서는 따지지 아니한 해괴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다원화되는 사회갈등의 구조화에 정치가 대응하지 못해 벌어지는 ’법대로‘도 문제지만 정당 내부의 문제까지 사법부로 끌고 들어가는 세태에 대해 사법부가 제동을 걸지는 못할망정 특정 정파 특정 진영에 편파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3권 분립 정신에도 위배된다. 웃음을 감추고 있는 민주당도 좋아만 할 상황은 아니다. 여차직하면 ’법대로‘ 따져야겠다는 열풍이 그 당만 비켜갈 수 있을까. 이렇게 친절한 재판부가 있는한. 물론 인용 결정에 대한 대응책도 세워놓지않고 하루종일 우왕좌왕한 국민의힘을 보니 재판부가 왜 정치적 결정을 그리 쉽게 내렸는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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