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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트럼프나 조국이나 ... 범죄자 추종하는 우중들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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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트럼프나 조국이나 ... 범죄자 추종하는 우중들의 잔치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3.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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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열성 지지자들의 맹목적 충성으로 더 뻔뻔해지는 위선자들
어리석은 대중 한사람 한사람은 자유인 외피 쓴 노예일 뿐
왼쪽부터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 연합뉴스
왼쪽부터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 연합뉴스

리카르도 마르티넬리 전 파나마 대통령이 유죄판결을 받아 대선후보 자격을 상실했다는 보도다. 그는 재임 시절 불법으로 국가 예산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가 공공 인프라 계약 눈속임으로 빼낸 돈이 자그마치 4391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문제는 그가 범죄 혐의를 받고 있었음에도 8명의 대선 후보 중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난 2020년 대선에서 맞붙었던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선거에서 재대결을 벌이게 됨에 따라 ‘미국 우선주의’ 재등장에 대한 우방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가 8년 전 내세웠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는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기치가 아니라 미국을 방관자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의 집권 4년은 20세기에 들어선 이래 세계질서 형성의 중심에 서서 자유 진영을 지키고 이끌어 온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무너뜨린 기간이었다.

미국이 자유의 수호자 역할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미국을 위대하게 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 다수의 유권자가 거기에 열광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국의 가치를 몰각했거나 맹목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미국의 상황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국 유권자들이 ‘고립’을 뜻하는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는 트럼프를 바이든보다 더 지지해서(현재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가 아니라 범죄 혐의자 트럼프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트럼프는 의사당 난입 선동에 탈세 및 횡령 등 91개 항목에 걸쳐 4개의 사건으로 기소된 상태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인들이 민주주의를 유지해갈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지난 6일 코리아타임스-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오는 4‧10 총선 비례대표 투표에서 ‘조국혁신당’을 찍겠다는 응답이 15%에 달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위성정당 지지율 21%에 견주어 크게 뒤지지 않는다. 15%의 지지율이라면 국회 의석 10석 이상을 얻을 수 있다. 법원에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유죄판결을 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어떻게 이처럼 높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 불가사의하다.

하기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조국혁신당 지지뿐이랴. 숱한 비리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받고 있는 데다가 수사 중인 사건도 한둘이 아닌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이재명을 국회의원에 당선시키고 민주당 대표로 만들어 그가 국회를 방탄조끼로 삼도록 만들지 않았나. 이 대표가 ‘비명횡사‧친명횡재’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거리낌 없이 비명계 현역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할 수 있었던 것도 열성 지지자들의 맹목적 충성을 믿기 때문 아니겠는가.

파나마와 미국,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보며 인간이 스스로 자신에게 붙인 사피엔스라는 이름이 부끄럽다 못해 참담하다. 호모사피엔스란 ‘지혜로운 인간’이란 뜻을 담고 있는데, 지혜와는 거리가 먼 몰이성적인 행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보통 이러한 인간 군상의 행태를 확증편향으로 설명하지만 왜 확증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맹목적이고 몰이성적인 행태를 계속하는지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현대 문명국가 시민들은 스스로 자유인을 자처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인이라면 확증편향을 극복해야 하고, 설혹 극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극복하려는 의지라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우리는 정치가 아닌 일상에서도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인간 행동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금 생뚱맞을지 모르겠지만,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대표적인 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정지한 상태에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른편에서는 서 있고, 왼편에서는 걷거나 심지어 뛰기까지 한다. 그래서 걷거나 뛰지 말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고 안내음까지 나오도록 했건만 사람들의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 왼편에 서 있으면 뒤에 따라오던 사람이 등을 두드리며 걷거나 비켜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왜 그럴까. 왜 잘못 형성된 질서가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단단하게 ‘질서’로 자리를 잡았을까. 여러 사람과 인터뷰와 심리분석을 통해 파악해보니 의외로 그 까닭은 간단하다.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 형성된 질서임을 다 알고 있다. 왼편에서도 오른편과 마찬가지로 걷거나 뛰면 안 되며 정지한 상태에서 이동해야 한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잘못 형성된 질서를 고수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함으로써 눈총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군중 속에 숨으려는 것이다.

자유인은 군중 속으로 도피하지 않는다. 자유인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군중 속에 묻혀 이성을 따르지 않은 채 맹목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은 노예의 근성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는 어리석은 대중, 곧 우중(愚衆) 속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유인의 외피를 쓴 노예일 뿐이다. 자유인으로 거듭나려면 이런 사실에 눈떠야 한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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