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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호모사피엔스는 왜 살육전을 벌이며 살아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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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호모사피엔스는 왜 살육전을 벌이며 살아남았을까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2.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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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인지혁명이 원인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는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최악의 발명품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주거용 건물이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에 맞아 크게 파괴됐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2년 가까이 '특별군사작전'을 지속하고 있다. ⓒ하르키우 로이터=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주거용 건물이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에 맞아 크게 파괴됐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2년 가까이 '특별군사작전'을 지속하고 있다. ⓒ하르키우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7개월이 되던 2022년 9월 병력 충원을 위해 러시아 전역에 동원령을 내린 지 500일. 이 동원령으로 소집된 예비군 아내 수십 명이 지난 3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근처에 모여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우리는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원한다. 위로금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아내들의 입장에서 볼 때 푸틴이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그들의 남편이 전장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일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약 3000명의 무장대원을 동원해 이스라엘 남부 키부츠 등을 기습, 1200여 명을 현장에서 살해하고 250여 명을 인질로 잡아 가자지구로 끌고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에 나섰고, 2024년 1월 말까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 10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냈다. 가자지구 인구 13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난민이 된 채 언제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 궤멸을 목표로 토끼몰이하듯 작전을 이어가고 있다. 1933년~ 1945년까지 유럽에서 벌어진 유태인 학살(홀로코스트)이 있은 뒤 100년이 안 되어 이번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유태인들에 의해 또 다른 대량 학살을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인간은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서슴지 않는 것일까? 인도주의를 외치며 생명의 가치를 강조하는 인간이 왜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것일까? 현생 인류에게 호모사피엔스라는 이름을 붙여준 식물학자이자 종의 분류로 유명한 칼 폰 린네(Carlvon Linné)도 19세기 이후를 살았다면 다른 이름을 붙여주었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란 ‘지혜로운 인류’라는 뜻인데, 그 지혜가 저주가 되어 같은 사피엔스끼리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벌이고 있으니 린네가 다시 이름을 짓는다면 아마 호모스툴투스라고 하지 않을까. 스툴투스(Stultus)는 라틴어로 어리석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에서 최상위 포식자로서의 위상을 넘어 자연 질서까지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은 언어 사용 덕분이라고 했다. 그건 하라리의 통찰이 아니라 인류학의 성과를 정리한 것이지만 하라리가 돋보이는 것은 인간의 뇌의 진화를 ‘인지 혁명’이라고 명명했다는 점이다.  

하라리에 따르면,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사피엔스가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할 수 있게 된 원인은 정확히 모른다. 암튼 가장 많이 지지받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라리는 왜 같은 호모속의 네안다르탈인이 아니라 하필 사피엔스의 DNA에 그런 돌연변이가 생겼을까를 물으며 우연이라고 답했다.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하기 어려운 것을 우리는 곧잘 우연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라리는 그러면서도 새로운 사피엔스의 언어에 어떤 특별한 점이 있었는지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우리의 언어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를 동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라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피엔스가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 곧 상상의 산물을 이야기하고 믿으며, 상상 속의 질서를 창출하고 그에 따라 가장 강력한 집단을 형성할 수 있었던 덕에 사피엔스가 지구 최강, 최상위 포식자로 등극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네안다르탈인도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이용했으며, 심지어 그들은 사피엔스보다 뇌의 용량이 컸음에도 멸종당했다. 하라리는 아마도 우리 사피엔스가 그들을 모두 죽였을 거라고 의심한다. 말하자면 우리 사피엔스는 우리 사촌을 죽인 살인자 족속이라는 얘기다.

바로 이 점, 지구의 최강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인 상상의 질서는 사실 사피엔스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요 재앙이다. 삼성전자라는 기업이 상상의 산물이듯 국가 또는 민족이라는 것도 상상의 질서다.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는 모두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을 ‘있는 것’을 넘어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왜 저주이자 재앙이라고 하느냐면 인간 역사에 있어서 대량 학살은 다 이 상상의 질서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의 칸 유니스 도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은 가자지구 남단 라파에서 촬영한 모습. ⓒ칸유니스 AFP=연합뉴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의 칸 유니스 도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은 가자지구 남단 라파에서 촬영한 모습. ⓒ칸유니스 AFP=연합뉴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쟁의 배경에는 상상의 질서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근대 이후 국민국가가 등장하며 전쟁이 빈발했으며, 오늘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도 유럽에서 국민국가의 등장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국민국가가 들어서자 유태인들은 설 자리를 잃었고, 그것이 시온주의를 불렀으며, 급기야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두 종족 간 70년 넘는 피의 역사가 계속되어왔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는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최악의 발명품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다 상상의 공동체로 인하여 빚어진 재앙이다. 그뿐인가. 중국이 노골적으로 대만을 위협하는 것이나. 북한 김씨 세습 정권이 도발을 그치지 않는 것 따위가 다 같은 맥락에 있다. 좌파 정치인들이 김씨 정권에 대해서는 감싸고 돌면서 우리와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부추기는 것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 이 어처구니없는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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