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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스탈린을 안믿은 이승만과 김정은을 믿은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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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스탈린을 안믿은 이승만과 김정은을 믿은 문재인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6.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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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소련과의 협상은 한반도를 위성국가로 내줄 것이란 혜안
공무원 피격 탈북어민 북송, 김일성 일가 신봉이 빚은 참극
국민의 힘이 지난 24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해수부공무원 피격사건 TF진상조사' 유족 초청 간담회를 하고 있다. ⓒ국민의 힘 홈페이지 캡처
국민의 힘이 지난 24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해수부공무원 피격사건 TF진상조사' 유족 초청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은 국민의 힘 홈페이지 캡처

해방정국 이승만은 미소공동위원회의 협의에 의한 한반도 통일 정부 구성을 극력 저지했다. 나아가 연합국의 일원인 소련과의 협의를 추진하고 있던 미 국무부와 미 군정을 공산주의자들을 돕는다는 비난을 마다하지 않으며 미소공동위원회를 파탄내려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승만은 왜 그랬을까. 이승만은 왜 그를 밀어줄 유일한 세력인 미국과의 협력을 거부했던 것일까. 심지어 이승만은 정치적으로 고립될 위험이 큼에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으로까지 자신의 주장을 확대해 나갔다. 당시 이승만의 시급한 목적은 어떻게 하든 소련이 남한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당시 소련, 즉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술책에 말려 들어가는 길이며, 그렇게 되면 미국은 ‘또’ 한반도를 포기하고 한반도에는 결국 소련의 위성국가가 들어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또’라고 한 것은 ‘1882년 5월 22일 조선과 미국이 맺은 조미통상수호조약을 미국이 지키지 않은 데 이어’라는 의미다. 조미통상수호조약에는 “제3국이 한쪽 정부에 부당하게 또는 억압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다른 한쪽 정부는 원만한 타결을 위해 주선을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려 할 때 미국이 중재에 나서 일본의 야욕을 저지해야 했는데 미국은 이를 외면했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이승만은 미국이 ‘또’ 소련과의 협상에서 쉽사리 한반도를 포기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그만큼 소련, 즉 공산주의자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고, 기어이는 남한만이라도 소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2002년 6월 필자는 금강산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주년 ‘남북 및 해외동포 기념대회’에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일원으로 참석한 바 있다. 행사 마지막 날 저녁 만찬이 열렸다. 필자는 주석단 테이블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았는데, 뜻밖에도 옆자리에 앉은 북한 인사가 그의 언행으로 미루어 북한 정보당국의 고위급 인사라 여겨지는 인물이었다.

필자는 짐짓 북한 측을 염려하는 척하며 “역대 한국 정부 중 김대중 정부만큼 북한에 우호적인 정부가 없었는데, 당신들은 왜 김대중 정부를 어렵게 만드느냐?”고 물었다. 김대중 정부를 어렵게 한다는 것은 북한이 서해에서 도발을 함으로써 김대중 정부를 난처하게 만든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북한 측 인물이 “임동원이하고 똑같은 말을 하네”라고 답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행사 직전 임동원 국정원장이 대북특사로 평양에 파견됐었는데, 그가 평양에서 무슨 발언을 했는지는 보도되지 않아 우리 국민은 알지 못하고 있었고, 북한에서도 상당한 고위급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봐도 그는 북한 정보당국의 상당한 직급에 있었던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필자가 놀란 건 ‘아, 북한은 김대중 정부를 믿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 북한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대한민국 정부를 믿지 않는다. 그저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이용하다가 단물만 빼먹고는 어느 날 갑자기 그간의 대화와 성과를 없던 것으로 되돌려 놓고 마는 게 북한 정권이다. 그건 지난 남북관계사가 웅변하고 있다. 김대중에서부터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정상회담과 각 정부가 내세운 성과라는 게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걸 우리는 숱하게 목격해오지 않았던가.

우리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진 씨 피살 및 사체소각 사건과 함께 2019년 11월 7일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청년 두 명을 강제 북송한 사건이 윤석열 정부에서 소환돼 문재인 정권,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송 청년들의 귀순 의사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고, 그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16명의 동료를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점도 강제 북송의 이유로 설명했다. 하지만 진정성 여부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살인범이라 할지라도 우리 관할권 안으로 들어 온 이상 우리 국민이고, 따라서 그들에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강제 복송한 것은 우리 헌법을 위반한 처사다.

헌법이나 법리적 해석 이전에 북송되면 참혹하게 처형될 게 뻔한 상황에서 강제 북송한 것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잔인한 일이라는 점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사람이 먼저’라고 떠들어 오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는 말인가.

그런데 북송한 그 날이 김정은에게 문 전 대통령의 초청장을 보낸 날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이를 보면 인권이고 국민의 생명이고 하는 것보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대화와 남북관계의 진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북관계에서의 성과에만 목말라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결국 김정은 정권에 대한 헛된 망상이 참극을 부른 셈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없다면 남북관계가 진전된들 무슨 소용인가. 그것도 외형상의 성과인 데다가 일순간에 도루묵이 되는 허상으로서의 성과 아닌가.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위해 국민의 헌법상의 권리마저 외면했지만, 남북관계 진전은커녕 북한의 핵 및 미사일의 고도화만 남았을 뿐이다.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은 해방정국에서나 지금이나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김 씨 세습왕조와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남북대화나 화해정책은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강경노선만을 고집하기도 어렵다. 다만, 김정은은 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의 술수를 부려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김정은과의 대화는 따라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성과’를 담보할 수단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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