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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강건너 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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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강건너 불이 아니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10.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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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9·19 합의 등 기만적인 평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맹목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반도 평화 성립
1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후 시작된 전쟁으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가자지구 로이터=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후 시작된 전쟁으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가자시티 로이터=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무력 침공이 발생했다는 사실, 그리고 TV로 참상의 생생한 현장을 접하면서 왜 인간은 폭력의 극단적인 형태인 전쟁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비극을 초래할 것인지 빤히 내다보면서도 전쟁을 감행하는 것인지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오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뜻 어느 편이 옳고 어느 편이 그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걸 고려하더라도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은 매우 무책임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어 갈지 너무나 뚜렷하게 예측되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수난과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은 너무도 명확하다. 당장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 가는 수도와 전기를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더 나아가면 식량과 에너지마저 차단할 것이다. 이런 조치는 탱크부대의 진격보다 훨씬 더 참혹한 비극을 낳을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로 불려왔다. 2000년 동안 세계를 떠돌다 돌아온 유대인들이 나라를 세우자 그 오랜 기간 그 땅에서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은 졸지에 이방인으로 전락했고, 그로 인하여 아랍 세계 전체와 이스라엘 간 네 차례에 걸친 전쟁이 벌어졌다. 대규모 전쟁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그리고 더 많은 희생자는 강자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약자인 팔레스타인인들의 몫일 수밖에 없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온 게 저간의 사정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난마처럼 얽혀서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러기에 그 많은 평화회담이 있었지만 늘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게 아닌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그래도 한동안 평화가 유지되어왔다. 세계인들은 중동 문제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대만 위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번 사태가 터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비로소 그간의 조용한 상태가 평화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마스는 그간 수면 아래에서 조용하고도 은밀하게 이번 습격을 준비해 왔다. 평화는 착시에 의한 허상이었다. 전쟁은 늘 곁에 있었음에도 미처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뼈아프게 주는 교훈은 우리 역시 전쟁이 곁에 있음에도 그걸 잊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우리는 분단의 현실 속에서도 전쟁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온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안보를 강조하면 오히려 냉전적 발상이라며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사를 볼 때 한국전쟁 외에 전쟁은 세계의 화약고라 불려온 중동 같은 곳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었다, 중동조차 점차 전쟁보다는 대화와 평화적 방법으로 안정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뜻밖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이번 하마스의 무차별적인 대규모 공격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것이다.

이번 사태는 또 다른 교훈을 준다. 기만적인 평화가 더욱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합의에 의한 기만전술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남북 간 맺었던 9·19 군사합의가 도마에 오른 까닭이다. 9·19 합의는 평화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우리의 손발만 일방적으로 묶어놓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음이 새삼 지적되고 있다. 북한의 도발 움직임을 감지해낼 수 있는 우리의 정찰 수단을 우리 스스로 없애버렸으니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문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은 북한이 김여정의 한 마디에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가운데서도 대북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평화를 위태롭게 한다고 볼멘소리나 하고 있다.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뒤 교환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뒤 교환하는 모습. ⓒ연합뉴스

하마스 기습 사태가 말해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평화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는 압도적 힘이라는 사실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라는 좁은 땅에 갇힌 채 이스라엘의 선의에 기대서만 살아갈 수 있는 처지로 몰린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이 자유롭게 활동하자 이스라엘은 아예 높은 담으로 에워싸 가자지구를 감옥으로 만들어버렸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현실은 힘없는 자의 비애를 여실히 보여준다. 힘이 없으면 상대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힘은 스스로 가진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동맹도 강력한 힘이다. 특히 세계 최강의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자산인지 하마스 사태를 보며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최신 핵항공모함 전단을 동지중해에 전진 배치하며 이란을 견제하고 나섬으로써 이스라엘에 힘을 보태주는 모습은 동맹의 중요성을 실감케 한다. 우리나라도 견고한 한미동맹이 있어 김정은의 북한이 함부로 도발을 감행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한미동맹은 생존의 문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것이다. 갈등의 고리를 풀 기미는 거의 없어 보인다. 유일한 길이 있기는 하다. 종족과 종교의 벽을 허무는 것이다. 하지만 기대를 걸기 어렵다. 쌍방 간 증오와 원한이 워낙 깊이 사무친 데다가 종족과 종교에 대한 그들의 감정이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또 얻어야 할 교훈은 맹목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자유의 가치를 함께 하는 일본에 대해 더욱 맹렬하게 발휘되는 민족주의가 오래전 부족주의의 확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현대에 부족적 민족주의는 빛을 잃은지 오래다. 민족주의가 바람직하지도 않다. 가치의 연대를 공고히 할수록 우리가 더욱 안전해지고 우리의 자유가 지켜질 수 있다.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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