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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절차적 민주주의, 문재인이 죽이고 헌재가 확인사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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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절차적 민주주의, 문재인이 죽이고 헌재가 확인사살했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3.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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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헌법상 원칙을 위반했다면서도 그 법은 유효하다는 헌재 결정
불법적으로 취득한 증거물로도 합법으로 판결 인정하는 결과
유남석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에 입장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남석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에 입장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수많은 악행 중 최악의 오점은 민주주의의 훼손과 파괴 행위다. 문재인은 대통령 시절인 2020년 4월 19일 제60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정치적·시민적 민주주의를 넘어 모든 국민의 삶을 보장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확장하는 것이 우리가 구현해야 할 4·19 혁명정신”이라며 ‘실질적 민주주의’ 실천을 역설했다. 주지하다시피 민주주의 논쟁 중 대표적인 것이 절차적 민주주의론자 대 실질적 민주주의론자 사이의 공방이다. 달(R. Dahl)로 대표되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코헌(J. Cohen)으로 대표되는 실질적 민주주의 이론의 대립은 둘중 한쪽만이 절대선이라는 논쟁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있어서 이 두 개념이 어떻게 지양(止揚)되느냐가 주된 논점이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실현되듯 문재인의 ‘실질적 민주주의’ 예찬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궤멸을 의미한 결과로 나타났다. ‘모든 국민의 삶을 보장한다’는 선동적 문구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살포라는 선심성 포퓰리즘으로 실현됐다. 문재인은 민주당으로 하여금 21대 국회의 출발이었던 2020년 7월 국회에서 소수의견 존중이라는 합의민주주의의 기본을 시작부터 무너뜨리면서 부동산 관련 법안들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여 국회를 통법부로 전락시켰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난 2022년 4월에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 명명된 검수완박법을 정당한 절차들을 무력화시키며 무리하게 통과시켰다. 토론과 숙의를 거치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안건조정위원회를 민형배 탈당이라는 꼼수로 우회시켜 최대 90일의 숙려기간을 증발시키더니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피하고자 부랴부랴 국무회의 소집 시간을 변경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두었다. 문재인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찰개혁은 역사적·시대적 소명에 부합하는 정책 방향"이라고 법안을 정당화하며 공포를 강행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대검찰청, 학계, 시민단체, 심지어 OECD도 반헌법성, 위헌성을 경고했다"며 헌법재판소에 소를 제기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3월 23일 헌법재판소는 권한쟁의 심판 결정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입법권(심의권, 표결권)을 침해당했다는 취지로 제기한 2022헌라2 사건에 대해 국회의장의 국회의원 심의표결권 침해 여부는 기각, 법제사법위원장의 국회의원 심의표결권 침해 여부는 일부 인용하였으나 법은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법사위원장은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조정위원회에 관해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 실질적인 조정 심사 없이 조정안이 의결되도록 했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면서 "국회법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헌법상 원칙을 위반했다면서도 그 법은 유효하다? 공정한 절차에 의해 나온 결과이기에 결과물이 공정한 것이다. 공정한 절차를 거쳐야만 그 결과물인 법과 정책이 정당성을 획득한다. 공정한 절차적 과정을 거치지 않은 법과 정책은 그러므로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적실(適實)해야한다는 것은 ‘정치의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는 것이고 법과 정책의 정당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정치적 정의와 공동선, 그리고 자율성이다.

코헌은 심의민주주의 3원칙으로 ①어떤 법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평등하게 고려하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해야 하고 ②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이 법이 실질적 공동선에 기반해야하며 ③이 법의 심의 과정에 있어서 공정한 기회가 균등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심의야말로 절차적 민주주의의 중심 요소“라고 주장하는 크리스티아노는 ”법과 정책을 제안하는 측에 이유를 대라고 요구하는 것은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합리적 토론의 대상이기 때문“이라면서 ”토론과 숙의를 부정하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이 임명한 다수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땅에 묻혔다. 앞으로 권한 남용으로 처리된 민원이나 판결, 그리고 불법적인 권한이나 그것으로 취득한 증거물 등도 합법으로 인정한 판결이 된 것이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명백하게 정치적인 결과로서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을 전부 뒤집어버린 셈이 되어 국가적인 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문재인 정권이 무너뜨리고 헌재가 확인사살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누가 바로 세울 것인가.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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