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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건국은 외면한 채 신화를 기념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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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건국은 외면한 채 신화를 기념하는 나라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10.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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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대한민국 탄생 배경과 건국이념이 무엇인지 무관심
홍익인간 달달 외우면서 ‘자유’에 대해서는 무지한 이유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개천절 경축식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이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개천절 경축식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이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매년 10월 3일이면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가 열린다.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의 개국을 기념하는 개천절 행사다(신화는 환웅으로까지 올라가지만). 그런데 단군조선은 신화의 나라다. 단군조선을 민족국가라고 한 것도 후대에 이야기일 뿐이다. 민족이라는 것이 근대의 개념 아닌가. 또 단군조선이 역사적 실재인지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고, 단지 신화 속에서만 존재한다.

신화의 나라 개국(開天)을 국가 경축일로 기념하면서 정작 대한민국 건국은 기념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이 나라다. 우리 국민은 왕조시대와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을 뿐 자유와 공화의 나라를 맞은 것은 대한민국이 민족사 중 처음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이 갖는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게 없다.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고 있으니, 되지 않느냐고 반론을 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만 해방이 곧 독립과 건국은 아니다. 잘 알고 있듯,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 해방을 맞은 것이다. 그로부터 3년, 대한민국이 탄생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우리 스스로 해방을 쟁취한 게 아니라 미·소 연합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주어졌기 때문이다.

미군과 소련군이 남북을 분할 점령했고, 그 결과 남과 북에는 각각의 정부가 수립됐다. 김구와 김규식이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에 갔지만 회담은커녕 고작해야 김일성을 따로 면담하고 왔을 뿐이었다. 통일조국 건설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고(김구 자신도 가능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미군과 소련군이 분할 점령하는 순간 분단은 사실상 굳혀진 것이라고 보아 무리가 없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협상에 의해 통일정부가 수립되었다면 그 체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닐 위험이 컸다. 한반도는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러나 이승만의 끈질긴 방해로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로 끝났고, 비로소 대한민국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탄생의 의미는 더할 수 없이 크다. 그래서 1948년 8월 15일을 기려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 본래 광복절은 독립을 기리기 위한 날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1948년의 독립과 건국의 의미는 사라진 채 1945년 해방의 의미만 남게 됐다. 그래서 오늘날 해방만 있고, 독립이나 건국의 의미는 국민 의식 속에 없다.

좌파 세력은 1948년 건국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건국은 상해임시정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들이 애써 상해임시정부 건국론을 주장하는 것은 1948년 건국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상해임시정부로서 건국이 이루어졌다면 8월 15일은 해방기념일로 하고, 4월 11일을 건국절로 하는 게 옳다. 상해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1일 성립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해임시정부를 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로 보나 합리적 이치로 보나 대한민국 건국일은 1948년 8월 15일이다. 따라서 8.15 광복절은 해방일이 아니라 건국절, 또는 독립기념일이라고 하거나 광복절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되 그 의미를 건국이나 독립으로 인식하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해 보자. 왜 우리는 식민지에서 독립했으면서 독립기념일이 없을까. 그건 광복이 곧 독립이라는 의미다. 광복절은 곧 독립기념일이라는 얘기다.

대한민국 건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부정하고자 하는 역사 인식의 소유자들, 곧 좌파 세력은 자유민주주의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2025년부터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울 ‘2022년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빠진 게 좋은 예다. 1차 시안 발표 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뺀 것이 논란이 되자 교육부가 연구진에 보완을 요청하겠다고 했는데, 2차 시안에서도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구성한 연구진이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 연구진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이토록 적대적인 것은 혹 인민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두고자 함인가. 문재인 정권을 주사파 정권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연구진이 주사파의 혁명론인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NLPDR)의 의식세계에 있는 사람들이라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80~90년대 김일성 주체사상을 맹종하는 세력이 이른바 운동권의 주류를 이룬 것이 반민주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 모색의 과정에서 나타난 이상 현상으로 이해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의 신정체제 하에서 북한 주민이 굶주림과 최악의 인권 상황에서 신음하고 있는 현실을 온 세상이 알고 있는 오늘날에도 주체사상의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력이 유의미한 규모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이 어떤 과정을 통해 태어났는지, 건국이념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특히 잘못된 현대사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특히 ‘자유’를 이해하고 있는 국민은 극히 소수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학생들에게 아예 자유민주주의 인식도 심어주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교과서 집필의 기준을 정하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기념사에서 “민권과 개인 자유를 보장할 것”임을 선언하며 “민주정체의 요소는 개인의 기본적인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그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임을 분명히 한 것이며, 인민민주주의와 같은 전체주의를 배격한 것이다.

학생들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나 재세이화(在世理化)에 대해서는 달달 외우면서 ‘자유’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에서 사회에 진출하는 현실, 아니 그보다 앞서 교육자들조차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은 참담하다. 국민이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사회를 이룰 수 없다. 자유의 가치를 모르면 대한민국의 가치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자유인으로 서기도 어렵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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