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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노예의 길이냐, 자유의 길이냐' ... 갈림길에 선 러시아 국민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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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노예의 길이냐, 자유의 길이냐' ... 갈림길에 선 러시아 국민의 선택은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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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스트롱 맨 푸틴에게 굴종하는 집단 구성원으로 살다가
국민이 국가를 통제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한 여성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TV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한 여성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TV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모든 악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은 모든 형태의 통제되지 않은 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칼 포퍼가 갈파한 말이다. 비단 포퍼가 지적해서가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힘이 어떤 재앙을 불러왔는지는 우리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실 통제되지 않는 힘이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은 애써 역사적 경험을 논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이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 초 러시아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유리 네바다 분석센터(YURI LEVADA ANALYCAL CENTER)’에 의하면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율은 전쟁 전 65%에서 전쟁 직후 85%로 무려 20%나 수직상승했다(유튜브 방송 ‘김정호의 경제TV’). 이 여론조사 기관이 어용이라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푸틴의 장기집권 과정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푸틴은 두 번의 대통령직을 마치고 3연임을 금지한 헌법 때문에 꼭두각시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에 앉혀놓고 자신은 총리로 내려앉았다가 메드베데프가 한 번의 임기를 마치자 또다시 대통령이 되어 두 번째 임기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었을때도 실권자는 푸틴이었고, 러시아 국민이 메드베데프를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도 푸틴이 후계자로 지목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러시아 국민도 푸틴이 메드베데프를 이어 대통령직에 복귀할 것을 알고 있었고, 당연시했다.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대개 독재자들은 장기집권을 하고자 할 때 헌법을 개정하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푸틴은 자신만만하게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맡겼다. 그가 얼마든지 러시아 국민을 요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푸틴의 뜻대로 되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러시아 국민은 푸틴에게 있어서 장기판의 말에 지나지 않음을 뜻한다. 이는 러시아 국민의 민주적 역량과 지력(知力)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바람에 푸틴은 사실상 현대판 ‘짜르’가 되었다. 통제되지 않는 힘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그 결과가 크림반도의 병합이었고, 지금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다.

왜 러시아 국민은 푸틴을 ‘짜르’의 지위에 오를 수 있게 하고, 우크라이나 침략을 지지했을까. 러시아 국민의 푸틴 지지를 노예근성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출신 언론인 두 사람이 각각 칼럼에서 그런 분석을 내놓았다. 이들의 칼럼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이 푸틴을 지지하는 이유는 푸틴이 강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푸틴이 약해 보이면 러시아인들은 지지를 철회할 것이라는 얘기다.

러시아인들의 이런 모습은 동물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동물들은 같은 종이어도 약해 보이면 집단으로 공격하곤 한다. 반대로 자기보다 강자에게는 꼬리를 내린다. 동물들에게 그건 본능이다. 러시아인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곧, 반문명적이라는 의미다.

러시아 국민이 독재자 푸틴의 침략행위를 지지한 것이 노예근성 때문이라는 분석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사실 러시아들은 지금까지 개인의 자유를 맛본 적이 없다. 근대 이전 러시아인들의 40% 가까이가 농노였고, 농노에서 해방되어 도시 노동자들로 탈바꿈한 사람들은 레닌의 볼세비키 혁명(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주력군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유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귀족들도 신분질서 속에서 온존하다가 공산 독재체제에 길들여진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이후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에서였을 뿐이다. 내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푸틴이 사실상 ‘짜르’로 군림하게 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러시아 국민이 자유인들이었다면 21세기에 ‘짜르’가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가 내용에 있어서도 민주주의 국가였다면 푸틴의 장기집권은 가능하지 않았다.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러시아 국민은 지금까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저 스트롱 맨 푸틴에게 굴종하는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국민만 넘쳐났다. 그래왔던 러시아 국민이 요즘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푸틴이 동원령을 내리자 이에 저항하는 러시아 국민들이 등장한 것이다. 러시아의 32개 도시에서 강제 동원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고, 심지어 총격 사건까지 벌어졌다는 사실은 뜻밖의 일이다.

러시아 국민이 저항하는 것은 푸틴이 약해졌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렇다면 여전히 그들은 노예근성의 포로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러시아 국민이 각성한 결과라면? 혹 러시아 국민이 자유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과정은 아닐까. 설사 러시아인들의 저항이 죽음의 전장(戰場)으로 끌려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라 해도 그 자체로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형식에서만의 민주주의라 해도 일단 형식이 만들어지면 시간이 가면서 차츰 내용 또한 갖추어지게 마련이다. 러시아 국민은 통제되지 않는 힘이 초래한 재앙을 체감해가면서,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만들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국민이 국가를 통제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 갈 것이다. 자유인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노예의 길로 갈 것인가. 지금 러시아 국민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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