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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나라가 거덜나도 쌀 시장 보호를 외치는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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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나라가 거덜나도 쌀 시장 보호를 외치는 민주당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10.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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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과잉 생산으로 쌀 매입 정부 예산 2030년까지 연평균 1조 443억 원
농민에게도, 싼값에 질 좋은 쌀을 사고 싶은 소비자에게도 모두 손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국민발언대 '쌀값정상화 편'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국민발언대 '쌀값정상화 편'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는 직원 서너 명을 둔 주물공장 대표다. 수십 년간 주물공장을 경영해온 A씨는 한때 사업을 접을까 생각도 했지만 특별한 노력 없이도 그동안 해오던 방식대로 제품을 생산하면 되기에 공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이고, 별 이익도 되지 않지만 정부가 대신 매입해주어 현상 유지는 되니 굳이 사업을 그만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A씨 등 주물공장 사업자들이 팔지 못하는 제품을 사들여 창고에 보관하다가 3년이 지나면 고철로 팔아 구매가의 10%쯤을 건진다. 그래도 국민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판이나 납세자들의 불만은 없다. 

지인 한 사람은 오래전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주물공장 문을 닫았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데다가 연구개발로 경쟁력 있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지 못한 탓이다. 대신 지인은 다른 사업으로 옮겨가 지금은 제법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하며 한 단계 위로 올라섰다. A씨의 경우는 가상의 얘기인데 만일 A씨의 경우와 같이 정부가 제품을 사주었다면 지인도 굳이 공장 문을 닫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새로운 사업을 개척할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국회 농립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수산해수위)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에서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의결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판단해 매입 여부를 결정하던 것을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보며 드는 근본적인 의문은 자영업자인 농민이 생산한 상품을 왜 정부가 매입해주어야 하는가이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농가나 쌀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배려는 유별나다. 정부가 가격 유지를 위해 정부 예산으로 쌀을 매입함으로써 농업 자영업자들에게 특혜를 베풀어도 시비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거 농가 부채 탕감은 정부와 정치권의 단골 선심 정책이었다. 왜 주물공장이나 다른 업종의 자영업자나 소기업의 상품은 사주지 않고 부채 탕감도 해주지 않으면서 유독 쌀은 예산을 들여 사주어야 하는 것인지 우리 국민은 애써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정부의 쌀 매입 정책은 애당초 들이지 않아도 될 엄청난 예산을 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일단 큰 문제다. 정부가 쌀을 매입하는 것은 시장의 유통 질서와 분리하는 것이어서 시장격리라고 한다. 시장격리에 들어간 예산은 공공비축제가 도입된 지난 2005년 이후 작년까지 4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뿐 아니다.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외국산 쌀의 수입과 보관에 들어가는 돈도 최근 5년간 2조5000억원이 넘는다. 국내 쌀이 남아돌아 시장격리를 하며 혈세를 퍼붓는 데다가 외국 쌀 수입까지 의무적으로 해야 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러한 기막힌 상황은 쌀 시장 개방을 막기 위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지난 1986년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다자간 무역협상)의 결실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 쌀 시장 개방을 막기 위해 외국산 쌀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수입을 막는) 대신 매년 의무적으로 일정량을 낮은 관세에 수입하는 것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그러다 보니 쌀이 남아도는데도 외국산 쌀을 수입해야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이 어려웠다. 그래서 식량안보라는 이상한 개념까지 등장해 언론을 통해 일반화되기도 했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제 쌀이 남아돈다. 쌀 소비량이 급감한 탓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식량안보를 들먹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우크라이나 생산 곡물이 수출되지 못해 세계가 식량난을 겪기도 했지만 그건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결국 문제가 해결됐다. 

식량안보를 논하자면 식량을 전혀 생산하지 못하면서도 고소득을 올리는 나라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미국이나 호주와 같이 광활한 농지에서 자국 소비량보다 훨씬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나라들과의 상호 연관성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식량안보는 허구의 개념이라는 말이다.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여주 통합 RPC에서 열린 '쌀 수매가 안정화 대책 마련 촉구 집회'에서 여주시 농업인단체협의회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여주 통합 RPC에서 열린 '쌀 수매가 안정화 대책 마련 촉구 집회'에서 여주시 농업인단체협의회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애당초 쌀 시장 개방을 막은 게 잘못이었다. 이런 얘기는 아무도 하지 못한다. 정권이나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이 이런 소리를 했다가는 정권 유지나 획득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농촌 지역의 표를 다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평론가라는 사람들도 돌팔매질을 당할 각오가 아니라면 입 밖에 꺼내기 어렵다. 이런 주장을 꺼내는 순간 자신의 사회적 생명은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농수산해수위 법안소위를 단독으로 통과시킨 양곡관리법 개정안대로라면, 쌀 과잉 생산이 늘면서 쌀 매입에 드는 정부 예산이 2030년까지 연평균 1조 443억 원에 이를 거라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 발표도 있었다. 

과잉 생산은 당연한 얘기다. 앞에서 얘기한 주물공장처럼 정부가 사주면 현상 유지만 돼도 생산을 멈추기는커녕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다른 업종으로의 전환이나 신제품 개발로 돌파구을 찾을 유인(incentive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런 세상의 이치를 무시한다. 마냥 정부 재정을 쌈짓돈 쓰듯 하려는 행태는 문재인 정권 시절 그대로다. 아니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고 난 후 그런 현상은 더하다. 나라가 망가지든 말든 대중을 홀려 정권만 잡을 수 있다면 상관치 않겠다는 속셈이다. 문제는 그런 포퓰리즘이 국민에게 통한다는 것이다. 국민이 우매하면 나라가 거덜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이른바 평론가들은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도 한다는 소리가 고작, 정부가 정책적으로 농작물의 작목을 바꾸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책적인 요소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농업에서의 혁신을 바란다면 모든 책임과 의무를 정부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 

정부는 만능이 아니다. 혁신은 정부 주도로 되는 게 아니다. 혁신은 이해 당사자가 절박하게 탈출로를 모색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은 농민이 혁신을 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성공하는 것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도록 하는 것일 뿐이다. 농민에게도, 싼값에 질 좋은 쌀을 사고 싶은 소비자에게도 모두 손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이제 과감하게 발상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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