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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8ㆍ15는 78년된 해방이 아니라 75년된 독립을 기념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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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8ㆍ15는 78년된 해방이 아니라 75년된 독립을 기념해야한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8.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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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1949년 정부는 독립기념일 제정했는데 국회가 광복절로 탈바꿈
이종찬의 건국론 부정은 대한민국 건국위해 피흘린 역사를 부정
8·15광복절 일러스트 ⓒ연합뉴스
8·15광복절 일러스트 ⓒ연합뉴스

매년 8‧15를 맞이하게 되면 이날을 기념하는 까닭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도대체 무얼 기념하자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왜곡되어 인식되기까지 하니 그렇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면 해방과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 광복절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국민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게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즉 1945년 8월 15일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을 통한 건국, 곧 독립에 대한 의식은 없거나 희박하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이 생각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미군정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물론 일제의 패망 이후 미군이 즉시 진주해온 건 아니어서 권력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조선총독부로부터 항복을 접수하고 정권을 인수한 주체는 미군이다. 결국 논리적으로 해방을 기념하는 것은 미군정을 기념하는 꼴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승리고 이끎으로써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은 고맙고 기쁜 일이지만, 그렇다고 미군정 실시를 경축할 건 아니지 않은가. 만일 미군정 실시를 경축한다면 해방정국에서 신탁통치 결사반대를 외쳤던 건 무엇 때문이었다는 말인가. 따라서 8‧15가 해방과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독립기념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최초 8‧15의 기념일 명칭도 독립기념일이었다.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5월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8‧15를 독립기념일로 제정했다. 그런데 국회로 법안이 넘어가서 다른 국경일이 3‧1절이나 제헌절, 개천절인데 8‧15만 ‘절’이 아니라 ‘기념일’이니 ‘절’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이게 받아들여져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광복절’이란 정체불명의 국경일이 생겨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광복절은 독립기념일의 의미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있다. 광복절 노래다. 정인보 선생이 작사한 광복절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이 가사 중 ‘이날이 사십 년’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광복절이 어떤 기념일인지 분명해진다. ‘사십 년’은 일제에 합방된 1910년부터 계산해서 햇수로 40년째 되는 1948년을 뜻한다. 1945년과는 계산이 맞지 않는다. 이는 곧 광복절을 독립을 기념하는 날로 의식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8‧15는 결코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의미가 독립에서 해방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다들 올해를 광복 78주년이라고 한다.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라면 78주년이 아니라 당연히 75주년이 맞다. 왜 이런 혼선이 빚어졌을까. 그 까닭은 우선 광복(光復)이라는 말의 의미 때문이 아닌가 한다. ‘광복’이란 사전을 찾아보면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건 의역이다. 직역하면 ‘빛을 회복한다’는 추상적인 뜻이다. 그러다 보니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배경은 1948년 8월 15일 건국의 의미를 희석하거나 지워버리려는 세력의 음모다. 대한민국 건국의 의의를 폄훼하려는 세력은 1948년 건국을 ‘분단’으로 왜곡해 왔다. 그들은 결코 1948년 독립이나 건국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1919년 건국설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1948년 건국설을 ‘반헌법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 그는 헌법 전문의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대목을 염두에 두고 그런 주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임시정부를 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건국은 1948년의 일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렇다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지 않았음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최근 이종찬 광복회장의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이라는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 한마디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기원을 1919년 건립된 상해 임시정부로 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그는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결과가 된다. 대한민국의 발전이 일본 식민 통치로 공짜로 얻어진 것처럼 해석하게 되는데 이런 식의 억지 역사는 항일 독립운동을 의도적으로 부정, 폄훼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뒤흔들려는 저의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엄청난 비약이다. 1948년 건국론을 역사의 단절론으로 파악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또 1948년 건국론이 독립운동을 의도적으로 부정, 폄훼하려는 의도는 물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뒤흔들려는 저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1948년 건국론이 어떻게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것일 수 있으며, 심지어 어떻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흔드는 것일 수 있는가. 이는 논리적 비약이 아니라 비논리적이다.

대한민국 건국은 이 회장의 말대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지난한 독립운동의 과정이 있었고,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최후의 독립운동이 있었다.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는 게 이 대목이다. 대개 1945년 해방으로 독립운동은 끝난 것으로 오인하는데 그게 아니다. 독립운동의 완성은 독립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비로소 독립운동이 끝났다는 말이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해방정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체제 선택을 놓고 좌우간 처절한 전쟁이 벌어졌다. 냉전의 최전선이 바로 한반도였고, 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를 놓고 민족 내부의 노선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건국을 주장하며 사실상 혼자 건국을 주도한 인물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그의 대중적 인기와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선도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못했을지 모른다. 모르긴 해도 미국의 좌우합작 노력이 성공했다면 한반도 전체가 소련의 수중에 떨어졌을 것이다. 이승만이 미국과 싸우면서까지 미소공동위원회를 방해한 것은 어떻게든 소련이 남한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대한민국의 건국이다.

이제 광복절의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독립을 기념한다는 명확한 의미를 담아 독립기념일로 명칭을 바꾸고 해방이나 미군정의 시작이 아니라 대한민국 독립과 건국을 기념하는 게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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