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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모두가 불만인 최저임금제도는 없애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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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모두가 불만인 최저임금제도는 없애는 게 낫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7.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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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모두가 승자가 되는 적절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
최소 수혜자에 최대 이익 가도록 하는 게 정의에 부합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 이날 오전 결정된 최저임금에 관한 의견을 묻는 팻말이 놓여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9천620원)보다 2.5% 인상된 9천860원으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 이날 오전 결정된 최저임금에 관한 의견을 묻는 팻말이 놓여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9620원)보다 2.5% 인상된 9860원으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 진통은 연례행사가 됐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최종 결과에 노사 모두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도 예나 다름없다. 내년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시간당 9860원으로 결정된 것은 여러 가지 경제적 어려움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었음을 짐작게 하는 것이다. 특히 소상공인들의 불만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싶다.

정부는 공익위원들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다. 아마 문재인 정부였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게 분명하다. 결국 노사 간 줄다리기는 형식에 그칠 뿐이다. 그런데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갖지 않아도 문제다. 노사 간 합의가 가능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마다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다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결렬될 것이 빤하다.

매년 되풀이되는 게 하나 또 있다.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각 이해당사자도, 언론도, 전문가 그룹도 결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을 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대체 무슨 방법이 있을까. 노사 모두 동의하고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그래서 모두가 승자가 되는 적절한 방법이 있기나 한 걸까.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결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말은 있지도 않은 걸 전제로 하는 주장이다. 그건 마치 주술사의 주문과 같은 것이다.

그럼 왜 다들 그런 주문을 외우는 걸까. 인디언 기우제는 그나마 비가 올 때까지 제사를 지내므로 결국엔 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결정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문은 아무리 오래 외워도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사람들은 그걸 몰라서 헛된 주문을 외우는 걸까. 아니다. 그들도 안다. 그러면 왜 그러는 걸까. 아마 직종별로 분류하여 정하자는 얘기인 듯하다. 그건 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현행법(최저임금법)에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하지만 직종별로 분류하여 정하려면 훨씬 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게 분명하다. 말이 쉬워 직종별 분류지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직종은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부터 논란이 될 것이다. 설혹 그 쟁점이 해결되었다 해도 분류 후 타 직종 간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도 더 골머리를 앓아야 할 게 틀림없다.

내 생각에 주문을 외우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지 않나 싶다. 그들은 최저임금제를 없애는 게 낫다는 말을 에둘러 한 게 아닐까 한다. 직설적으로 없애자고 하면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기에 노골적으로 말은 하지 못하고 주문만 외우는 게 아닐까. 말은 하지 못하지만 최저임금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여겨진다.

모두가 불만인 최저임금제도는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가장 적절한 최저임금이 어느 선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위원회를 구성하여 결정하는 손쉬운 방법을 찾아낸 것인데, 형식으로만 볼 때는 가장 쉬운 방법같이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보아왔듯 가장 어렵고 불합리한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우스꽝스러운 결정 방식이다. 그러니 없애는 게 낫다는 얘기다.

서구 선진국에서 먼저 시작했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제도인데 그걸 왜 우리만 없애냐고 따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진국에 있는 제도라면 다 좋은 것이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라는 게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 만들었지만 시대 상황이 바뀌었어도 그냥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저임금제도의 효시는 1894년 뉴질랜드의 ‘산업중재조정법’이다. 미국은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나서야 도입했다. 다 알다시피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근로자들의 삶은 곤궁했다. 노동 조건도 열악했고, 임금도 생계를 꾸려가기에 벅찬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국가가 노동시장에 개입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불하도록 사용자에게 강제한 것이다.

오늘의 상황은 19세기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인 착취는 가능하지 않다. 아무도 저임금을 강제할 수 없다. 기대치보다 낮은 임금을 감수할 사람이 있을까. 결국 임금은 시장에서 저절로 결정될 것이다. 그러면 애써 위원회를 구성하여 머리를 싸맬 이유는 하나도 없지 않은가. 또 최저임금이 강제되지 않는다면 보다 다양한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시간제 근로가 세분화할 수 있을 것이고, 형태도 여러 가지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미흡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사회안전망 구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으로 할 일이지 사용자에게 떠맡길 일이 아니다. 또 최저임금제가 사회안전망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다. 노동시장에 참여한 사람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히려 최저임금제를 없애는 것이 사회안전망 구축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냄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늘 하는 말이지만, 정부의 시장 개입은 적을수록 좋다. 불가피한 경우, 곧 시장 실패 영역에서의 개입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에 있어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은 부작용이 크다. 그런 사례는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최저임금제의 경우 아예 그 효용성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어왔는데 이제 공론에 부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을 돌아가도록 하는 게 정의에 부합한다는 존 롤스의 주장에 비추어 보아서도 최저임금제 폐지를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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