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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우린 아직 어려요" 안크려는 기업들의 네버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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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우린 아직 어려요" 안크려는 기업들의 네버랜드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9.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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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자산 총액 5000억 넘어서면 지원 끊기고 규제만 183개
상호출자 금지-금산분리 원칙 모두 철폐해야 경쟁력 회복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기업체 빌딩들 ⓒ연합뉴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기업체 빌딩들 ⓒ연합뉴스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 태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악당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인근 강가에 여인숙을 차려놓고 손님이 들어오면 쇠침대에 눕혔다, 쇠 침대는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가 있었는데, 키가 큰 사람이 들어오면 작은 침대에 눕히고 침대보다 큰 부분, 즉 머리나 발을 잘라 죽이고, 키가 작은 사람이 들어오면 큰 침대에 눕혀 몸을 늘여 죽였다, 테세우스는 똑같은 방식으로 프로크루스테스를 처단했다.

프로크루스테스 신화는 우리 경제 현실과 정부 정책의 ‘어처구니없음’을 상징한다. 기업이 성장하면 정부는 온갖 올가미를 씌워 기업의 숨통을 조인다. 반면 작은 기업은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크지 않으려 한다.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이다. 피터팬의 나라 네버랜드에서는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지 않는다. 우리 중소기업들은 네버랜드에서 사는 셈이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왜 기업의 규모가 작으면 많은 지원을 하면서 규모가 커지면 규제를 할까. 기업의 규모에 따라 지원과 규모가 갈리는 이 나라는 네버랜드이자 동시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여인숙이기도 하다. 참 이상한 나라다.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게 한두 해도 아니고 수십 년은 되었다. 하지만 좌파 정부는 물론 규제 혁파를 외쳤던 우파 정부도 근본적이면서도 아주 오래된 ‘규모의 역설’을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지금 한국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미국 등에서는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사), 심지어 데카콘(100억 달러 이상) 기업이 속속 등장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가 정신도 사실상 크게 위축되어 있다. 그 배경에 규제가 있다. 특히 규모의 역설은 매우 심각하다. 왜 규모의 역설이라고 하냐면, 경제는 규모가 클수록 유리한데 거꾸로 규모가 커지면 기업 경영 환경이 악화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올라서면 갑자기 지원이 없어지고 규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올라서면 이제 더 큰 규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피터팬처럼 계속 어린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유인(誘因)이 커진다. 기업들은 정책 자금 지원보다 규제 철폐를 더 원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6월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적용되는 ‘대기업차별규제’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성장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총 8단계의 규제장벽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련 규제는 규모에 따라 총 8단계에 걸쳐 갈수록 늘어나는 형태다. 자산 총액 500억원 이상~1000억원 미만 기업은 규제가 4개에 불과하지만 기업이 성장해 자산 총액 5000억 원을 넘어서면 183개로 대폭 증가한다. 기업이 더욱 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342개까지 늘어난다. 특히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기업규제 3법(공정거래법·상법 개정, 금융복합기업집단법 제정)’으로 79개의 규제가 새로 도입되면서 규제 덩치는 더욱 커졌다. 결국 정부가 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기업규모별 차별규제 증가 현황ⓒ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규모별 차별규제 증가 현황ⓒ전국경제인연합회

놀라운 것은 많은 규제, 특히 규모에 따른 규제는 만들어진 지 30년이 훨씬 넘는다는 사실이다. 80년대에 만들어진 규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규제가 한번 만들어지면 좀처럼 없애기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규제 관련 법은 신중에 신중을 더해 만들어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정치인들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경제원리에 어긋나는 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 왔다. 특히 대기업을 때려잡는 포퓰리즘적 법안은 더욱 그러하다. 약자를 위한다고 강자를 억압하면 약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약자를 위한다는 미명으로 대기업 규제를 만들어 왔다.

제정연도별 대기업차별 규제 분포 ⓒ전국경제인연합회
제정연도별 대기업차별 규제 분포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시되고 있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상호출자나 순환출자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상호출자든 순환출자든 새로운 기업을 일으켜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적은 지분으로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발상은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기업 지배구조를 문제 삼는 건 경제의 원리가 아니라 이념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라 여겨진다. 어찌 보면 적은 지분으로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꼴을 눈 뜨고 보아주기 어렵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게 아닌가 한다.

금산분리 원칙이라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돈에 용도가 씌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도록 강제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경우 계열사가 부실해도 계속 해당 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인데, 물론 그럴 위험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금융사업도 이익을 내자고 하는 것인데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에 무턱대고 대출해줄 바보가 있을까. 오히려 민간금융기업이 아니라 산업은행과 같은 국영금윰기업이 훨씬 더 많은 부실 대출을 해 온 게 현실이다. 진작 문을 닫아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부실 대기업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출을 해 온 것은 대량 해고를 막기 위한 정치적 판단의 산물이다. 민영금융기업이었다면 경영상 손익 계산으로 대출을 결정하였을 게 아닌가. 그런 점에서 금산분리 원칙이라는 것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금융과 제조업의 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우리 경제가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우물 속 개구리는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우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자신이 믿고 알아왔던 세계가 얼마나 하찮은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동굴 속에서 그림자만 보고 그것이 세상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을 바라보는 순간 과거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게 된다.

사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수많은 규제는 시장을 국내로 한정시킨 사고에 의한 것이다. 특히 규모에 따른 규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건 우물 속이나 동굴 안에서 바라본 것을 세상의 진짜 모습이라고 믿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진짜 시장은 국내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다. 따라서 국내라는 한정된 시장을 전제로 만들어진 규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만 차별을 당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제 생각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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