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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화물연대에 굴복하면 큰일나는 2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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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화물연대에 굴복하면 큰일나는 2가지 이유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12.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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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밀어붙이니 밀리더라" 물러서면 더 무리한 요구
반시장의 논리로 허가제 만든 노무현의 업보
화물연대 총파업 9일째를 맞은 2일 오후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정문 앞에서 화물연대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 총파업 9일째를 맞은 2일 오후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정문 앞에서 화물연대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의 불법 단체행동(운송거부)으로 경제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실과 정부가 강경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업무개시명령 발동과 함께 안전운임제 폐지와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제외, 나아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자의 면허취소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화물차주들이 업무에 복귀하며 물류에 숨통이 트이고 있으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지난 6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선언하면서 사태는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 두 가지 점을 말하고자 한다. 우선 정부는 화물연대에 밀리면 안된다. 화물연대에 굴복하면 나라의 앞날이 없기 때문이다. 화물연대는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꾼다”는 기치를 올리고 있다. 그들은 ‘물류가 멈추면 대한민국이 멈춰 선다’는 게 그들의 최대 무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자신들의 최대 무기가 역으로 가장 큰 위협요인임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강력한 힘은, 그 힘을 함부로 쓸 때 역풍을 맞는다는 게 평범한 이치다. 따라서 그 힘에 걸맞은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화물연대 뒤에는 민주노총이 있다. 화물연대에 이은 연쇄 파업이 전국적인 조직 수준에서의 ‘기획’이 도사리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민주노총이 경제‧사회적으로 엄중한 시기에 파업을 벌이는 것은 ‘대한민국을 멈춰 세워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80년대 급진적 이념의 노동운동이 전국적 조직체로 태어난 게 민주노총이다. 당시 급진 노동운동 세력은 ‘노동해방’이란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다. 전국 어느 곳이나 급진 노동운동 세력이 장악한 사업장의 노동조합 사무실이나 파업 현장에는 어김없이 ‘노동해방’이라는 네 글자를 담은 선명한 현수막이 나붙어 있거나 벽에 거친 글씨체로 박혀 있었다.

노동해방이란 무엇인가. 당시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 무리를 쓸어버리고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이 주창한 바로 그것 말이다. 

그런데 90년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노동해방’의 기치는 더 이상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급진적 이념을 추구했던 세력이 사회주의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현실사회주의가 실패로 귀결되었음이 명확한 가운데서도 급진 노동운동 세력은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를 내면화하였다. 

민주노총은 큰 그림으로서 사회주의를 제창하지는 않지만 사회주의의 중심적 사고는 21세기에 이르러서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받들고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과학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그들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명제를 내세우면 누구도 이에 반대하기 어렵다. 현실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시장을 왜곡하는 것일 뿐임을 이해시키려면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며, 그래서 대중은 쉽사리 이들에 동조하곤 한다.

과거 급진 노동운동 세력은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고 외쳤다. 이제 정부가 그런 자세로 임해야 하며, 국민이 그런 정부를 뒷받침해야 한다. 물러서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한 걸음 물러서면 저들은 더 큰 요구를 들고나올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그들만의 공화국을 만들려 할 것이다. 

사실 이번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는 지난 6월 화물연대의 불법 집단행동에 대해 정부가 ‘무관용 원칙’을 밝혀 놓고서도 무릎을 꿇는 바람에 빚어진 것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번에도 정부가 법과 원칙을 포기해버린다면 앞으로 이 나라에는 집단의 힘으로 법을 무력화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질 것이다. 

다음,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의 문제를 들여다보자. 이 법은 도무지 일반원칙으로서의 법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법률이 대부분 그렇지만 화물자동차법 또한 ‘법 아닌 법’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국가가 통제하는 방식인데다가 인간 행동의 모든 부분을 예측하여 규정하고 있으니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이라고 우겨 만든 법률이라고 보아 틀림이 없다. 

이 법의 제1장 제1조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건전하게 육성하여 화물의 원활한 운송을 도모함으로써 공공복리의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니 민간사업을 왜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가. 거기다가 ‘건전하게 육성’하다니, 어떤 게 건전한 것이란 말인가. 제39조는 ‘운수사업자는 화물운송 질서의 확립, 경영관리의 건전화, 경영 합리화, 수송서비스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간사업의 경영관리의 건전화나 합리화를 위한 노력을 법으로 정하다니 쓴웃음이 나온다. 이렇듯 하나하나 따지자면 모든 게 문제여서 핵심 내용만 짚어본다. 

이 법에 따라 화물차주가 되려면 개인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여기서 의문은 왜 허가를 받도록 했는지다. 일정 요건을 갖추면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세금만 납부하도록 하면 그만 아닌가. 왜 허가제를 통해 화물차주의 수를 제한하는가. 이러니 시장 왜곡과 함께 물류를 멈추는 시도가 가능해진 게 아닌가. 시장경쟁으로부터 화물차주들의 이익을 보장해주느라 허가제를 실시한 것인데 그 바람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된 셈이다. 

이 법에 따르면, 안전운임이란 ‘화물차주에 대한 적정한 운임의 보장을 통하여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는 등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으로서 안전운송 원가에 적정 이윤을 더하여 안전운임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표한 운임을 말한다. ‘적정한’ 운임은 어떤 방법으로 알아낼 수 있을까. ‘안전운송 원가’는 또 뭔가. 운송원가도 아닌 안전운송 원가라니, 그 원가는 어떻게 계산해 낼까. 또 그렇게 이윤을 보장해주면 과로, 과속, 과적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화주가 안전운임 이상의 운임을 지급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그 이하를 지급하면 과도한 벌칙을 감당해야 하고, 신고센터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는 일방적으로 화물차주의 이익을 위해 화주의 손해를 강제하는 것이다. 시장의 원리를 완전히 무시한 사회주의 방식이다.

이번에 정부가 강경 수단으로 내린 업무개시명령도 사실 문제다. 많은 특혜를 보장해주며 안전장치라고 만들어 놓은 게 업무개시명령인데, 개인사업자에게 업무를 강제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화물연대가 바로 이 점을 들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데, 주장은 맞지만 화물연대는 그럴 주장을 할 입장이 아니다. 자신들이 개인사업자라면 집단행동으로서의 운송거부는 공정거래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런 웃지 못할 넌센스가 벌어지는 건 화물자동차법이 일반적인 규칙으로서의 법이 아닌 법이기 때문이다. 화물자동차주들에게 특혜를 보장해주기 위해 시장경쟁을 배제하고 정부가 사소한 것까지 시시콜콜 통제하는 현행법은 폐지하거나 최소한의 규정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삭제하는 방식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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