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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1세대' 구자학 아워홈 회장 별세 ... 향년 9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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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1세대' 구자학 아워홈 회장 별세 ... 향년 92세
  • 김혜림 기자
  • 승인 2022.05.12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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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구인회 LG 창업주 셋째아들
전자ㆍ건설ㆍ반도체 전문경영인
2000년 급식업체 아워홈으로 독립
노년에 자식들 '남매의 난' 겪어
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 ⓒ아워홈
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 ⓒ아워홈

[매일산업뉴스]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12일 오전 5시 20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유족 측이 밝혔다. 향년 92세.

구 회장은 1960년대부터 식품·화학·전자·건설분야 기업에서 전문경영인으로 활약한 '산업화 1세대'의 산증인이다. LG계열사의 음식서비스 사업부를 독립시켜 매출 1조7000억원 규모의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구 회장은 1930년 7월 15일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진주고동학교를 마치고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25전쟁에 참전했다. 군 복무 시절, 충무무공훈장·화랑무공훈장·호국영웅기장 등을 받았다. 1959년 소령으로 예편했다.  휴전 후 미국으로 유학한 그는 디파이언스대학교(Defiance College) 상경학과를 졸업했다.

1957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셋째 딸인 이숙희씨와 결혼했다. 당시 두 대기업 가문의 결합으로 화제를 낳았다.  구 회장은 1960년 한일은행을 거쳐 이후 10여년간 제일제당 이사와 호텔신라 사장 등을 지내며 삼성그룹에서 일했다. 하지만 1969년 삼성이 전자산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LG(당시 금성)와 경쟁구도가 형성되자 구 회장은 LG그룹으로 돌아갔다.

1981년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하는 구자학 회장. ⓒ아워홈
1981년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하는 故 구자학 회장의 모습. ⓒ아워홈

구 회장은 이후 럭키 대표이사, 금성사 사장, 럭키 금성그룹 부회장, LG반도체 회장, LG엔지니어링 회장, LG건설 회장 등을 역임했다. 

럭키 대표이사로 재직할 당시 구 회장은 기업과 나라가 잘되려면 기술력만이 답이라고 여겼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일념 하나로 당시 세계 석유화학시장 수출 강국인 일본과 대만을 따라잡고자 개술개발에 주력했다.

구 회장은 "우리는 지금 가진게 없다. 자본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도 없다"며 "오직 창의력과 기술, 지금 우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소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만큼 구 회장이 걸어온 길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럭키는 1981년 '국민치약'이라 불리는 '페리오'를 개발했고, 1983년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폴리부틸렌테레프탈레이트(PBT) 소재를 만들었다. 1985년에는 '드봉'으로 국내 화장품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했다. 1986년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 최초로 램버스 D램 반도체를 개발했으며,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국내 업계 최초로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했다. 현재 LG의 근간이 된 주요사업의 시작과 중심에는 늘 그가 있었다.

2009년 매출 1조원 달성 비전선포식 당시의
2009년 매출 1조원 달성 비전선포식 당시의 고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모습. ⓒ아워홈

2000년 LG유통(현 GS리테일)의 식품서비스(FS)사업부문과 함께 그룹에서 독립해 아워홈을 설립했다. 아워홈 식품연구원은 현재까지 레시피 1만5000여개를 개발했고, 연구원 100여명이 매년 신규 메뉴 약 300가지를 선보이고 있다. 매출은 2000년 2125억원에서 2021년 1조7408억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 단체급식사업과 식재유통사업으로 시작한 아워홈은 현재 식품사업, 외식사업과 함께 기내식 사업, 호텔운영업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LG에서 화학, 전자, 반도체, 건설,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핵심사업의 기반을 다진 경영자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독립할 때 주변에서 의아해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역량에 비해 사업규모가 너무 작았던 까닭이다. 구 회장은 그런 사업부를 거대 조직의 어떤 도움도 없이 2조원에 가까운 지금의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으로 키워냈다.

기술력에 주목하는 등 기업인으로서의 경영철학도 있었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남다른 관심도 많았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 미국 유학 중에는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을 벌었다. LG건설 회장 재직 당시에는 LG유통 FS사업부에서 제공하는 단체급식에 불만이 있었다. 개선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구 회장은 2000년 아워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맛과 서비스, 제조, 물류 등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직접 현장을 탖아 임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이 특히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혜안이 있었다는 평가다. 구 회장은 단체급식사업도 화학, 전자와 같이 자신이 몸담았던 첨단산업분야 못지않은 R&D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구 회장은 지난 2000년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체급식업계 최초로 식품연구원을 설립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업계 최초로 노로바이러스 조사기관, 축산물위생검사기관, 농산물안전성검사기관 등 공인시험기관으로서 역할도 수행, 국민들의 안전한 먹거리 생태계 조성에도 힘써왔다.

2016년에는 장남인 구본성 당시 부회장이 대표이사에 선임되며 후계 구도가 갖춰졌다. LG가에서는 경영권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그룹 회장은 장자가 맡고, 다른 가족 일원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계열분리로 독립하는 원칙이 있다. 하지만 구 부회장은 지난해 보복운전으로 상대 차량을 파손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고 결국 회사에서도 해임됐다. 당시 여동생 구미현·명진·지은이 합심해 구 부회장의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아워홈은 구 전 부회장이 지분 38.6%, 미현·명진·지은 세 자매가 합산 지분 59.6%를 보유하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해 6월 아워홈 이사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지 못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숙희씨와 아들 본성(아워홈 전 부회장), 딸 미현·명진·지은(아워홈 부회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이고, 발인은 15일 오전 8시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공원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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