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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미의 재계포커스]'기업결합심사' 미적대는 공정위, 무너지는 항공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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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미의 재계포커스]'기업결합심사' 미적대는 공정위, 무너지는 항공산업
  • 이강미 기자
  • 승인 2021.10.18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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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 투자정체는 물론 영업망 손실 등 부작용 초래
세계 각국은 멈춰버린 자국 항공산업 위한 특단의 조치
대한항공 여객기(위)와 아시아나항공 여ㄱ기(아래). ⓒ각 항공사
대한항공 여객기(위)와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아래). ⓒ각 항공사

[매일산업뉴스] “한시가 급한데, 이대로 고사시킬 것인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승인이 늦어지면서 항공업계에서 한숨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이 대한항공과 합병 발표를 한지 벌써 1년이 다 돼가지만,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특별한 이유없이 기업결합심사를 미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서는 항공산업의 생존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터키,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등 일부 다른 나라에서 먼저 기업결합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결합심사 대상 항공사가 속한 우리나라 공정위의 결정이 늦어지면서 주요국인 미국, EU, 중국, 일본, 베트남 등 기업결합심사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자칫 두 항공사의 인수합병이 불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기업결합심사는 사실상 두 항공사 통합의 최종 관문이다. 제3자배정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신주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기업결합승인이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련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가 모두 완료되어야만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고, 추후 통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기업결합심사 장기화로 항공업계의 투자 정체는 물론 영업망 손실, 임직원 사기저하 등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가 지연되면서 이달 말 예정됐던 1조 5000억원의 규모의 유상증자 납입일을 12월 말로 연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이 합병의 최종관문인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대한항공으로부터 유상증자 신주인수대금 1조 5000억원을 수혈받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막대한 이자비용과 운영자금을 감당할 수 없어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신규 사업은 물론 각종 투자활동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태다. 글로벌 항공사로서의 입지와 경쟁력 저하는 물론 기약없는 유·무급 휴직 실시로 임직원들의 사기저하는 물론 고용안정에 대한 불안감까지 가중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결정은 정부 주도하에 이뤄졌다. 코로나 19 위기극복과 항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두 항공사가 통합하면 세계 10위권 항공사로 도약하게 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시너지효과로 항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또한 코로나19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정부, 채권단, 항공업계가 모두 조속한 인수·통합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는 이유이다.

문제는 공정위가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급기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얼마전 취임 4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불만을 쏟아냈다. 이 회장은 "공정위에 괘씸죄로 걸릴지 조심스럽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면서 “항공산업은 국내 경쟁이 아닌 글로벌 경쟁에서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국내서 도와주는 이가 없다”며 공정위의 빠른 결정을 촉구했다.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독과점문제를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항공산업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항공사의 주요 자산 중 하나는 노선권이다. 노선권을 얼마나 설정할지, 어떻게 나눌지 등은 국가와 국가간의 항공협정에 의해 결정된다. 중요한 점은 국가와 국가간 노선권은 1대 1로 동등하게 나뉜다는 것이다. 한 국가가 10개의 노선권을 가졌으면 다른 상대방 국가도 10개의 노선권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항공산업은 상호주의적·상호호혜적 시장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제조업의 인수·합병과는 달리 한 국가의 두 항공사가 합쳐진다고 해도 점유율이 숫자 그대로 더해 늘지 않는다. 기업결합심사를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단순화된 도식이 아닌, 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들여다봐야 한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19로 멈춰버린 자국의 항공산업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나가고 있다. 국내 항공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코로나19 이후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아메리칸항공 등 3사에 96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22조 4000억원, 프랑스는 9조 3000억원, 네덜란드는 4조 6000억원, 영국은 2조 3000억원 가량을 지원했다. 일본도 일본항공에 3조 4000억원, 전일본공수에 4조원을 지원했고, 싱가포르도 싱가포르항공에 15조 7000억원이라는 거액을 쏟아 부었다.

이는 단순히 자국 항공사의 생존만을 위한 조치가 아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항공시장의 파이를 더 크게 차지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특히 항공 네트워크는 한번 유실되면 복구가 불가능하다. 한진해운 사태가 겹쳐보이는 것은 기시감만은 아닐 것이다.

항공산업의 미래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통합의 시기가 늦어지거나 불완전한 통합을 하게 되면, 잠시나마 부활을 꿈꿨던 우리나라 항공산업은 글로벌 항공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공정위의 전향적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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