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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22대 총선 투표장에서 히틀러와 조국과 이재명을 소환하다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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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22대 총선 투표장에서 히틀러와 조국과 이재명을 소환하다ĺ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4.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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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쿠데타 일으킨 찌질이 히틀러를 뮌헨 법정이 제대로 단죄했다면
“민주주의는 ‘총부리’보다 ‘투표함’에서 죽는다” 독일 국민의 후회
지난 5일 사전투표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오른쪽) ⓒ연합뉴스
지난 5일 사전투표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오른쪽) ⓒ연합뉴스

2024년 4월 대한민국 한복판에, 1945년 4월 벙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히틀러가 소환됐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주술처럼 앞 다투어 히틀러를 무덤에서 꺼내려 했고 그 이름이 불려지자 그는 ‘볼드모트’처럼 악의 상징으로 되살아났다. 그러자 사람들은 누가 진짜 히틀러일까 찾기 시작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일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일까. 그 단서는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히틀러는 거짓말과 선전 선동의 천재적 재능을 갖고 있다. 그의 가장 큰 거짓말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지 않았다고 국민들을 속인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을 당해보긴 커녕 한번도 자신들의 영토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아 전쟁 중임에도 ‘평화롭게’ 살아가던 독일 국민들은 갑작스런 패전 뉴스에 대혼란을 겪었다. 그 틈을 파고든 히틀러는 "전장(戰場)에서 군인들은 밀리지 않았는데 후방에서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들이 정치인들을 선동해 적들에게 나라를 갖다 바쳤다"고 선동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패전에 대한 상실감을 유대인과 사회주의자에 대한 분노로 치환시킨 히틀러는 그것을 동력 삼아 집권을 하고 대학살을 감행한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대한민국에도 거짓말이 일상이 된 정치인이 있다. 이재명은 지난 5일 지역구인 계양을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배우와 한우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고는 SNS에 “계양 밤 마실 후 삼겹살 사르르...”라고 적었다. 그는 지금 선거유세 중이기 때문에 동선이 다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올린 사진에도 탁자 위에 숯불 석쇠판과 굽기 전의 소고기 덩이가 접시 째 놓여 있었다. 경기도지사 시절 법인카드로 한우 소고기 먹은 것이 또 회자 될까봐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빤히 드러날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문자로 올렸다. 거짓 선동은 소냐 돼지냐에서 그치지 않는다. 검찰을 끊임없이 악마화해서 존재하지 않는 ‘검찰독재’ 프레임으로 지지자들의 분노를 일으켜 끊임없이 그들의 추억 저 편에 자리잡은 1980년대 운동권 DNA를 소환해서 상대 진영을 ‘타도하고 탄핵하고 분쇄하자’는 사술(邪術)의 주문을 걸고 있다.

히틀러는 독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악의 평범성’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그는 나치당의 당수, 독일의 퓌러(Führer und Reichskanzler, 나치 독일의 지도자 겸 국가수상), 유대인 학살자라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 외에 대단히 ‘평범한 일상인’이었다. 그는 화가지망생으로 다수의 그림이 아직도 남아있다. 술을 즐기지 않았고 가족을 아꼈으며 무엇보다 세계 최초로 반려동물에 대한 체계적인 법을 만든 ‘평범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그에 반해 윈스턴 처칠이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술고래였다. 처칠은 폭연가이기도 했다. 한번 술을 먹으면 오후 9시에 저녁 식사와 함께 시작해 자정을 훨씬 넘기기 일쑤였다. 히틀러의 ‘평범함’처럼 조국은 한때 매일 다른 종류의 형형색색 텀블러를 끼고 다녔고 이재명은 속으로는 법카로 소고기 사먹을 지언정 겉으로는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에 나와 “여보, 반찬없이 그냥 밥에다 소금 뿌려서 먹자”고 ’평범‘을 호소했다.

1923년 뮌히틀러가 주동한 뮌헨 폭동을 담은 HistoryPod 화면 캡처.
1923년 무명의 히틀러가 주동한 뮌헨 폭동을 담은 HistoryPod 화면 캡처.

사법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학살자이자 선동가 히틀러는 존재할 수 없었다. 독일의 퓌러가 되기 훨씬 전 찌질한 지역 정치인에 불과했던 히틀러는 1923년 11월 8일 오후 8시 뮌헨의 한 맥주홀 즉 호프집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뮌헨과 바이에른주 정부의 유력자들이 모두 참석한 11월 혁명 5주년 기념 집회행사장을, 무장병사들을 동원해 접수하고 주 정부의 해산과 과도정부의 수립을 선언했지만 어설픈 쿠데타는 하루도 못가 진압됐다. 도망치다 붙잡힌 쿠데타의 수괴 히틀러에게 뮌헨 법정은 어처구니 없게도 사형은커녕 5년형을 선고했다. 히틀러는 VIP급 수형 생활을 즐기면서 ‘나의 투쟁’이라는 책을 저술하고 9개월만에 가석방돼 영웅으로 복귀했다. 당시 주심 판사 게오르크 나이트하르트는 히틀러 집권 후 히틀러로부터 은혜를 보답받아 바이에른 대법원장까지 승승장구했다. 당시 독일의 사법부가 ‘정상적’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법의 권위를 보여줬다면 그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을까.

이재명의 온갖 불법 혐의들을 문재인 정부 당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제대로 수사했다면, 권순일 대법관이 주축이 된 대법원이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 대법 판결을 상식적으로 판단했다면, 유창훈 부장판사가 이재명의 구속영장을 기각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재명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조국의 ‘입시비리, 감찰무마’ 항소심에서 2년형을 선고한 재판부가 ‘상식적’으로 피고인 조국을 법정 구속했더라면 범죄자가 정당을 만들고 예의 머릿카락을 쓸어넘기는 온갖 포즈를 취해가며 ‘사적 보복’을 ‘법적 응징’으로 포장할 수 있었을까. 이성윤 권순일 박균택 양부남 김동아 박은정 등 대한민국의 나이트하르트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민주주의는 ‘총부리’보다 ‘투표함’에서 더 빈번히 죽는다.” 헤더 콕스 리처드슨 미국 보스턴 칼리지 역사학 교수의 말이다. 투표장에서 히틀러를 열광적으로 찍은 독일 국민들의 후회는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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