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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정치판에서 으르렁 소리 말고 사람의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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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정치판에서 으르렁 소리 말고 사람의 말을 듣고 싶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10.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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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사람의 말은 言, 일관성 있고 행동으로 실천 하면 言
으르렁 대면 狺, 그때 그때 뒤집고 행동과 불일치 狺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 정기 표지판 ⓒ연합뉴스

근대 민주주의는 총을 내려놓고 투표용지를 손에 듦으로써 시작됐다.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속해있는 무리, 가족, 집단, 마을의 뜻을 관철할 수 있었던 때를 우리는 ‘야만의 시대’라 부른다. 총 칼로 상대를 모두 죽여 없애는 섬멸전을 벌여서 쟁취해온 승리는 그러나 보복의 악순환을 되풀이할 뿐이다. 투표는 이번에 패하더라도 수년만 지나면 권력을 쟁취할 기회가 생기므로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협상을 통해 작은 부분이라도 뜻을 반영할 수 있기에 승복과 화해가 이루어진다. 민주주의의 척도는 2개 이상 복수의 정당이 있느냐와 정기적으로 정해진 기간마다 정권이 교체될 수 있는 선거를 치르느냐에 달려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투표의 결과를 부정하고 총 칼을 들어 상대를 겁박하는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신념의 차이, 가치의 차이, 정책 방향의 차이를 놓고 벌이는 이념 전쟁도 아니다. 그저 한 범죄자의 범죄를 덮기 위해 “이제 전쟁입니다”라며 지지자들을 선동해 언제 가방 안에서 흉기를 꺼내들지 모르는 ‘극렬 신도’들로 자신의 당을 점령하게 하는 난장판 아수라장일 뿐이다. 포퓰리스트들의 등장으로 세계 각국마다 극단주의 정당들이 득세하고 있다지만 대한민국은 한 극단적 포퓰리스트로 인해 팬덤 정치의 수준을 넘어 정치의 종교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정치는 생각한 다음에 믿을지 결정하지만 종교는 먼저 믿고 그 다음에 생각할지 결정한다. 그들이 추앙하는 정치인이 죄가 없음을 증거와 증언과 정황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무죄를 먼저 믿고 그를 바탕으로 사실을 꿰어 맞춘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가치가 전복되면 상식이 무너진다. 상식이 무너지면 법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 신뢰가 사라진 사회는 분열되고 붕괴될 뿐이다. 기존 질서가 사라진 춘추전국 시대, 백성들끼리 가치와 상식과 법과 원칙을 공유하지 못하게 되면서 인신매매, 신령술, 순장(殉葬), 식인(食人) 등 인륜을 파괴하는 풍속과 범죄가 횡행하자 공자는 인(仁)과 예(禮)로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자는 그리하여 손에 주어진 공적 권한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고, 권력을 만들고, 자신만을 숭앙하는 왕국을 만드는 선동가이자 사기꾼의 행동(怪力亂神)을 경계하고 스스로 대중들을 현혹시킬 목적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미지 않겠다(常德治人)고 다짐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고 대통령이 사과하라고 법무장관을 탄핵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범죄혐의자의 행태에 68년 전통(민주당계 정당의 뿌리를 1955년에 창당되었던 민주당으로 규정)의 더불어민주당이 병풍 노릇을 하고 있다. 그 범죄혐의자가 자신의 개인적 비리로 말미암은 중대 범죄 혐의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행보와 비교하며 민주투사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데도 그 두 대통령과 평생 뜻을 함께한 그 정당의 누구 하나 이 범죄자에게 호통을 치지 않는다. DJ의 가신을 자처하는 비서실장 출신의 박지원은 외려 주군을 모욕하는 범죄혐의자를 옹호하며 공천 구걸을 하고 있다. 노무현이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문재인 역시 범죄혐의자가 친구를 욕보일 때 양산 집에서 SNS에 좋아요만 누르거나 책방에서 자신이 쓴 책을 팔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 스스로 어떤 가치의 정당인지 어떤 신념을 위해 뭉쳐있는지 어떤 의제를 선점하고 있는지에 대한 공론은 팽개친 채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아니 이재명교 종교집단으로 몰락해 가고 있다.

人人人人人. 우스갯 소리 같지만 사람 인자가 5번 쓰인 이 말은 “사람이라고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람다움이란 무엇일까. 사람다움이란 나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알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만을 안다는 것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의 태도이고 다른 사람을 알려고 한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 절망 배고픔 외로움에도 귀 기울이려고 하는 자세다. 정치인이야말로 상대의 아픔, 구성원의 고통을 자신의 그것으로 느껴야한다. 자신이 결재해놓은 사업의 비리가 들통 나자 자신의 부하직원이 주도한 양 “그가 그럴줄 몰랐다. 그는 내 측근이 아니다”고 주범으로 내몰고, 자신에게 수차례 결재 받으러 왔고 함께했던 순간들을 자랑스러워하던 부하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자 “모르는 사람”이라고 내치고, 자신에게 쪼개기 후원도 하고 수백만 달러를 대납해준 사람을 “조폭 불법 사채업자 출신”이라고 욕하면서 얼굴을 바꾸는 자가 정치인 행세하고 있다.

ⓒ매일산업뉴스

한자로 믿을 신(信)은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으로 구성돼 있다. ‘사람의 말’이다. 사람이 자신의 등에 자신이 하는 말을 짊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만큼 자신이 한 말의 무게를 스스로 견딜 수 있어야 사람 간에 믿음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말에 일관성이 있을 때,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말 속에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을 때 우리는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으르렁거릴 은(狺)은 개 구(狗)와 말씀 언(言)이 결합된 글자다. 으르렁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저 짐승의 소리일 뿐이다. 내가 그랬다니까 정말 그런줄 안다면서 말을 뒤집을 때, 권한을 내려놓겠다고 공언해놓고 부결시켜달라고 애원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언(言)이 아니라 은(狺)이라 부른다.

으르렁대는 소리를 혼자하게 놔두고 이제 그만 정치가 제자리에 돌아와야 한다.

 

*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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