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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첫걸음]"현명한 소비만으로는..." 주부 2명이 팔 걷고 나선 '현명한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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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첫걸음]"현명한 소비만으로는..." 주부 2명이 팔 걷고 나선 '현명한 판매'
  • 김혜림 기자
  • 승인 2022.04.2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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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 실천>행동하는 사람들(31) 보틀앤스쿱

'환경분야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무포장 대용량 벌크숍’ 아이템으로 선정
ⓒ매일산업뉴스 김혜림 기자
정지혜 보틀앤스쿱 공동대표가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대흥로 아파트 상가에 자리한 ‘보틀앤스쿱’ 매장에서 이용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매일산업뉴스 김혜림 기자

[매일산업뉴스] 한 교회에서 환경 특강을 들으며 지구의 위기상황에 관심을 갖게 된 두 명의 주부가 있었다. 심각한 환경문제가 소비습관과 연결이 돼 있다고 생각한 이들은 대형마트를 끊고(?) 생활협동조합을 찾았다. 2년 가까이 ‘책임소비’를 실천했지만 식품 쓰레기는 크게 줄지 않았다. 소비자 개인 노력의 한계를 깨달은 이들은 사회 인프라를 바꾸기 위해 제로웨이스트 그로서리를 열었다. ‘보틀앤스쿱’을 오픈한 리플래닛 정지혜·김연정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이들은 올해 1월 서울 마포구 대흥로 아파트 상가에 ‘보틀앤스쿱’을 열었다.  유기농 곡류, 콩과자 등 우리 고유의 주전부리, 말린 나물류와 과일류, 그래놀라, 콤부차, 소스류, 세제류 등을 필요한 양만큼만 덜어 판매하고 있다. 이밖에 고체 샴푸와 치약, 화장품, 그리고 비건제품 등 80여종을 준비해놓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대흥동 보틀앤스쿱 매장에서 만난 정 대표는 “자신이 원하는 제품뿐 아니라 양도 정할 수 있어야 된다”면서 “필요한 만큼 사게 되면 포장재는 물론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픈한 이후 3개월 남짓 동안 플라스틱 용기 200㎏ 정도 줄이는 효과를 얻었다. 아직은 미미한 양이지만 앞으로 지구의 건강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에 더 열심히 힘을 보탤 작정이다.  

보틀앤스쿱을 처음 방문하는 소비자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어렵다” “불편하다”는 투덜거림도 있지만 “그래 이거야” “맞아 이렇게 해야 돼” 등 반기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담아갈 그릇을 가져와 무게를 재고, 벌크통에 들어 있는 곡류나 오일 등을 그 그릇에 덜어 다시 무게를  측정한 뒤 가격을 지불하는 과정이 낯설 수밖에 없다. 개별포장이 안 돼 있어 불편한 만큼 쓸데없는 포장과 남아도는 음식물 쓰레기는 줄어들게 된다.

매장 앞에 있는 우유갑과 멸균팩수거함. ⓒ매일산업뉴스 김혜림기자    

정 대표는 "제로웨이스트 그로서리를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어 외국의 사례를 모범답안 삼아 준비했고, 제품 주문도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포장하지 않은 채 벌크로 구입하겠다'는 리플래닛의 제안에 납품업체들은 도리질을 했다. 한 유기농영농조합에선 ‘괜찮겠느냐’고 외려 걱정을 해줄 정도였다.

 

정 대표는 “소포장, 일회용 포장이 깨끗하고 위생적이라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기존의 인식을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 같은 도전자가 있어야 바뀌지 않겠느냐”면서 호호 웃었다.

지금도 거래처에 조금 으깨지고 파손되도 감수하겠으니 최소 포장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정 대표는 “포장하지 않고 덜어서 사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저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손님들도 있지만 가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재들이 엄청 저렴한 탓이다.

 

정 대표는 보틀앤스쿱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으로는 홍차원액을, 자랑하고 싶은 제품으로는 그래놀라를 꼽았다.

㈜우리꽃연구소 ‘맘껏푸드랩’의 저칼로리 밀크티베이스 홍차원액은 리플래닛이 개발한 품목이다. 두 공동대표가 카페쇼에서 이 제품을 본 뒤 직접 섭외해 소분판매를 시작했다. 요즘은 다른 제로웨이스트숍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동네 업체에서 구입하고 있는 그래놀라는 유통과정이 짧아 신선하고 탄소발자국도 줄일 수 있는 '로컬푸드' 모델이다.

보틀앤스쿱에도 일회용 비닐 포장제품들이 있다.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대체육들이다.

정 대표는 “탄소를 대거 발생시키는 육류에서 대체육으로 건너올 수 있는 중간다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 비닐포장을 허(許)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물어보자 정 대표는 “우선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는 사회적기업이 되는 데 온힘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 시국에 낯선 제로웨이스트 그로서리를 오픈하는, 만용에 가까운 용기를 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던 듯하다. 육성사업 지원금에 두 사람의 주머닛돈과 쌈짓돈을 털어 오픈한 보틀앤스쿱은 적자를 겨우 면하는 수준이다.

리플래닛은 지난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주관 ‘환경분야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무포장 대용량 벌크숍’ 아이템으로 도전, 선정됐다. 지난해 6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얼굴 있는 농부 시장’에서 오픈한 팝업 스토어는 그야말로 인기 폭발이었다. 그때 다녀간 소비자들 중 몇몇은 단골이 돼 요즘도 ‘보틀앤스쿱’을 찾고 있다. 아쉽게도 서류상 미비로 사회적기업에는 선정되지 않아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정 대표는 “일회용 소비문화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우리 모두 함께 해야 한다”면서 “제로웨이스트가 소수가 아니라 대다수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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