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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 서비스경영ㆍ41 ]세계 20위권 못미치는 '통합 대한항공'이 독점 기업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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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 서비스경영ㆍ41 ]세계 20위권 못미치는 '통합 대한항공'이 독점 기업된다니...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4.25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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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총장

공정위, 국적사가 80여개국 외항사와 경쟁하는 치열한 현실 외면
원가 낮춰 소비자의 복지 높이는 생산자 경영원리가 규모효과
대한항공 여객기(위),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아래). ⓒ각 사
대한항공 여객기(위),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아래). ⓒ각 사

소문난 맛집도 테이블이 넉넉해야 돈을 번다. 좋은 평판을 형성하고 매상을 유지하려면 가격도 신경 써야 한다. 그 나물에 그 밥을 파는 경우라면 가격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 

일단 큰 쪽이 유리하다.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생산이 늘면 단가가 낮아져 생산자와 수요자가 모두 재미를 보는 것이다. 단품에만 매달리지 않는 전략도 있다. 샐러드바 뷔페식당처럼 고객이 골라 먹는 재미를 이용하는 매장이다. 여기엔 다양한 메뉴로 원가를 줄이는 또 다른 규모효과가 작용한다. 범위의 경제다. 상품을 다양화하는 이 전략엔 몇 가지 이점이 있다. 우선 생산에 투입되는 인적·물적 요소를 공유해 제품군을 효과적으로 늘일 수 있다. 냉면과 만두를 제각기 만드는 것보다 조리시설과 인력을 함께 쓰면 비용이 절감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총장

둘째, 영업에도 수직적 통합의 시너지가 발휘된다. 찾아온 고객의 만족뿐 아니라 식자재와 배달까지 생산과 유통을 결합하면 원가는 줄고 수익원이 늘어난다.

셋째, 고객과 시장에 대한 정보를 모든 제품 생산에 활용할 수 있다. 단골손님의 니즈를 잘 아는 사업주는 메뉴 구성에 유리하다. 공통의 재료를 대량 구매해 원가를 줄이는 규모효과가 작용한다. 선택과 집중에 충실한 설렁탕집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품목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뷔페식당이 범위의 경제를 지향하는 건 모두 원가절감으로 고객을 만족시키려는 마케팅이다.

생산자는 원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돈을 벌고 소비자는 가격 이상의 가치를 경험하는 윈-원 거래가 바로 기업이 생존하는 조건이다. 상품 A와 B를 따로 생산·판매할 때보다 한꺼번에 하는 비용(C)이 더 낮다면 범위의 경제는 달성된다.

C(A+B) < C(A) + C(B)

종종 정부의 시장개입은 시장경제의 이 당연한 작동을 저해한다.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통합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일부 노선에 대해 공급을 제한했다. 소비자의 선택이 제한된다는 논리로 합병에 조건을 붙인 것이다.

함께 취항하던 국제노선에서 경쟁이 사라져 불공정 거래가 우려된다는 건 맞는 얘길까. 참담하게 실패한 부동산 정책에서 보듯 관료가 탁상에서 만든 보고서와 판단을 때로는 경계해야 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장과 고객의 행동 원리가 모든 사업장에서 똑같다고 생각하거나 시장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는 크게 보이지만 ‘통합 대한항공’은 독점적 지위를 갖는 거대항공사가 아니다. 규모 면에서 세계 20위권 한참 밖에 있다. 합병으로 몸집을 불려 비행기가 250대로 늘어나도 아메리칸, 델타항공은 1000대, 900대가 넘는 메이저들과 규모로 경쟁하긴 버겁다. 국제노선에 나가면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에는 세계 3대 메이저인 아메리칸, 델타, 유나이티드, 중국은 남방, 동방, 국제항공 3사, 그리고 일본에 JAL과 ANA 두 항공사가 있을 뿐 장거리 노선마다 국가대표끼리 경쟁하는 게 현실이다.

1국 1사 체제로 정착된 시장에서 똑같은 항공기를 갖고 경쟁하는 데엔 운임이 중요한 요소다. 우리 국적사들의 운임은 지금 메이저들보다 높다. 유럽노선에선 에미레이트, 카타르, 에티아드 등 중동 3사에 밀리고, 미주노선에선 중국 3사에 뒤진다. 지금까지 이 시장을 조금씩 내주고 있는 데엔 상대적으로 높은 운임이 작용한다. 가격에 민감한 여행자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저렴하게 좌석을 파는 외항사로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사의 신규진입 등을 촉진하기 위해 슬롯·운수권 이전 등을 하는 조치를 부과한다”는 공정위의 판단은 그래서 규모의 경제와 반대다. 외눈으로 보면 독점기업이지만, 80여 개국의 항공사가 드나드는 인천공항을 보면 국적사가 외항사와 펼치는 치열한 경쟁이 보인다. 여행지가 애틀란타, 프랑크푸르트, 두바이라면 어쩌다 눈에 띄는 대한민국 비행기가 반갑고, 그곳이 델타, 루프트한자, 에미레이트항공의 안방이란 걸 실감한다.

지금의 시장규제가 과도하더라도 국익을 위해선 앞으로 국적 LCC가 그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하면 소비자 이탈로 외항사들의 배만 불릴 것이다. 원가를 낮춰 경쟁의 우위를 점하고 소비자의 복지를 높이는 생산자의 경영원리가 대량생산의 이점, 바로 규모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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