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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노동이사제 통과, 차등의결권 묵살' 일류기업 잡는 삼류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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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노동이사제 통과, 차등의결권 묵살' 일류기업 잡는 삼류정치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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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빗장푸는 노동이사제 결국 민간기업 도입 초읽기
벤처기업에 한해 1주 10개 의결권 부여하자는 것도 외면
오늘날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져 있다. 지식(혹은 정보)이 폭발했지만 지식은 이제 더 이상 전문가들의 머릿속이나 도서관 서가에 있지 않고 온라인 네트워크상에 널려 있다. 이제 더욱 중요해진 것은 지식 자체가 아니라 통찰력이다. 필자는 다양한 부문에서 경험과 통찰력을 쌓으며 글을 써 왔다. 새 칼럼 ‘조남현의 종횡무진’은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철학이라는 사유의 도구로 경제 전반은 물론 경제행위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해부하고 독자 여러분께 생각의 틀을 제시할 것이다. -편집자 주-
국회의사당 회의장 ⓒ국회 홈페이지
국회의사당 회의장 ⓒ국회 홈페이지 캡처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공기업 노동이사제가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반면 차등의결권 도입 법안은 10일 법사위에서 상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지하듯 노동이사제는 그간 재계의 최대 관심사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 5일 노동이사제가 초래할 부작용을 우려하며 입법을 중단해달라는 내용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한 입장’을 낸 바 있다.

입장문은 “강성노조가 공공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의 이익은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뒷전으로 밀릴 것이 자명하다”며 “노동이사제는 이미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심각하게 기울게 하고, 오랜 숙원이었던 공공기관 개혁을 저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공공부문의 노동이사제 도입이 민간기업으로의 도입 압력으로 이어질 경우 가뜩이나 친노동정책으로 인해 위축된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부작용 우려가 큰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입법절차를 부디 중단해 주기를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입장문에서 드러나듯 전경련이 우려하는 것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결국은 민간기업으로의 도입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민간기업 적용 이전이라 하더라도 노동이사제가 공기업 경영에 미칠 악영향부터가 큰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기업의 경영 최고 책임자는 소위 월급쟁이 사장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공기업은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사장은 민간기업과 같이 노조와 치열하게 밀고 당기기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따라서 공기업 사장과 노조는 기업경영이 악화하는 중에도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기업을 놓고 잔치판을 벌일 수 있다. 이런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리 없고, 이익을 내기도 어렵다. 그런 판에 노조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경영에 간섭하게 만든 것이다.

재계가 우려하듯 일정 기간이 지나면 노동이사제를 민간기업에도 적용케 하려들 것은 불문가지다. 만일 민간기업에도 노동이사제가 도입된다면 기업의 국제경쟁력은 상실하고 말 것이다. 그것이 한국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일반 국민의 관심권 밖에 있긴 하지만, 벤처기업 창업자의 경영권 보호를 위한 복수(차등)의결권 도입 법안의 경우 국회 법사위에 아예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는 소식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차등의결권이란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대한 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일부 주식에 대해 1주 1 의결권이 아닌, 훨씬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부 주식에 1주 10개나 50개, 또는 1000개의 의결권을 부여함으로써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방어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차등의결권 제도가 일반화되어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철저하게 1주 1 의결권이 강제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간 한국의 우량기업들이 국제 투기자본의 타깃이 되어 왔고, 일부 먹잇감으로 전락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과 주장이 계속 있었지만 늘 정치권의 견고한 벽에 좌절되곤 했다.

이번 법사위 안건에 상정되지도 못한 법률안(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모든 기업이 아니라 벤처기업에 한하여 1주 10개 의결권을 부여하자는 것이었는데, 이마저도 높은 정치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여당 의원들이 “창업주의 의결권을 주당 10개까지 허용하면 소액주주 이익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바람에 논의 자체가 무산되어 버린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차등의결권을 허용함으로써 혁신적 벤처 생태계를 적극 지원하는 상황에서 자칫 우리만 낙오할 수 있다는 관련 업계의 우려는 결코 기우가 아니다.

혁신 벤처기업의 육성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긴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성공한 벤처기업도 경영권 방어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면 그만큼 기업 경영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소액주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도 차등의결권 보장은 필요하다. 소액주주들은 대부분, 아니 전부 기업의 경영 참여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의 가치에 투자를 한다. 쉽게 말해 주식 처분의 차익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이다. 기업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소액주주들의 이익도 더 잘 보장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소액주주의 이익을 명분으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반대하니 누구를 위한 반대인지 알 수가 없다.

국제 투기자본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가운데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기존 주주들에게 싼 값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 등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들이 경영에 성공해온 것은 사실 기적이나 다름없다.

하류의 정치가 언제까지 일류 기업의 발목을 잡는 현실을 두고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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