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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함세웅의 방울 한만삼의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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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함세웅의 방울 한만삼의 방울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12.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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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내가 하면 선 남이 하면 악’
자신이 살아온 삶 속에서 말 하고 행동해야 '언행일치’
함세웅 신부(왼쪽),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안중군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함세웅 신부(왼쪽),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안중군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있어 '소설'은 '거짓'이라는 뜻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소설'을 쓰기 전까지는. 2020년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휴가 미복귀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뭉갠 대가로 동부지검장을 법무부 차관에 임명했느냐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추미애가 “소설을 쓰시네”라고 말했던 당시의 '소설'은 '사실에 기반하지 않고 특정한 목적으로 지어낸 가짜'라는 뜻일테고 최근 출마를 앞두고 검찰개혁을 주제로 자신이 쓴 '소설'은 '사실을 기반으로 역사적 소명의식을 담아낸 진짜'라는 의미일 것이다. '내선남악' 자신이 하면 선(善)이요 남이 하면 악(惡)이다.

'내선남악'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추미애의 소설 출판기념회에서 "‘방울 달린 남자들’이 여성 하나보다 못하다"는 표현으로 성인지 감수성이 바닥임을 드러낸 함세웅 신부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글을 버젓이 홈페이지에 올리고 KAL기 폭파와 천안함 격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며 온갖 음모론을 지어내 퍼뜨리는 정의구현사제단을 만드는데 앞장선 함세웅은 '내선남악'을 몸소 실천해왔다. 함세웅은 1984년 9월 15일 구의동본당 주임신부 재직시 강변도로를 운전하다 무단횡단을 하던 7세 어린이를 치어 숨지게 했다. 경향신문 1989년 9월 18일자 '손수운전 함세웅 신부 교통사고 불구속 입건' 제하의 기사를 보면 함세웅 신부는 "9월 15일 낮 11시 30분 자양동 인근 강변도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던중 OOO군(7세)을 치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낮 시간대일지라도 갑자기 뛰어든 어린이를 못볼 수 있다. 잘못은 잘못이지만 과실치사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것은 삼가야한다.

1984년 9월 18일자 조선일보 11면 지면중 일부 캡처.
1984년 9월 18일자 조선일보 11면 지면중 일부 캡처.

문제는 함세웅 신부가 이끌던 정의구현사제단이 2002년 6월 여중생 장갑차 사건이 벌어지자 ‘살인 미군의 회개를 촉구한다’며 단식기도회를 통해 과실치사를 범한 미군을 살인자로 규정하고 '양키 고 홈' 구호를 외치며 반미데모를 주도했다는 것에 있다. 이 사건은 미군의 ‘공무중 과실'로 인한 '사고'였다. 사건 당시 미군은 인민군 전차부대의 수도권 진입을 막기 위한 특수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 사건은 장갑차의 좁은 시야와 운전병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였다. 꽃다운 여중생들의 죽음은 지금 돌아봐도 가슴이 아픈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과실치사를 고의적 범죄행위인 '살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선동이다. 사고발생 직후 미군은 물론 미국 대통령 국무장관 등이 앞다퉈 유가족과 한국 국민에게 공식 사과를 했고 유가족들에게는 보상금 뿐 아니라 미군들이 별도로 모금한 조의금이 전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구현사제단, 한총련, 범대위, 민노총 등의 좌익단체들은 주한미군을 ‘살인마’ 라고 부르며 대국민 선동에 나섰다. 그 중심에는 1984년에 과실치사로 7살 어린이를 치어 숨지게 한 함세웅 신부가 있었다. 미군이 부주의로 낸 사고를 '살인미군'이라 한다면 함세웅은 '살인신부'인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내선남악'은 세월호 시위와 각종 반정부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위선자들을 척결하자'고 목청을 높인 또 다른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의 사례도 있다. 2003년에 사제서품을 받았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에도 같이 등장해 사목활동에 열심인 사제로 부각된 한만삼 신부는 바로 그 남수단 선교활동 당시 자원봉사자로 교육·의료 활동을 돕던 한 여성에 대해 수차례 성폭행을 시도했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가 식당에서 나오려고 하니까 (한 신부가) 문을 잠그고 못 나가게 막으면서 강간을 시도했고 그 시도는 한번이 아니라 밤을 새워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이어졌다. 피해자는 당시 한만삼이 "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달라"라고 변명했다고 전한다. 피해자는 당시 한만삼과 함께 남수단 현지에서 사목 활동을 하던 다른 신부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그 누구도 공론화하지 않고 뭉개고 덮어버렸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피해자는 한만삼의 폭력과 다른 신부들의 방조에 충격을 받아 7년을 고통 속에서 살다가 때마침 사회적으로 확산된 미투운동에 용기를 내어 KBS를 통해 한만삼의 만행을 폭로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정의구현'에 입각한 사과와 처벌과 바로 잡음이 아니라 가해자를 보호하고 조직을 보위하려는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의 2차 가해였다. 당시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인 천주교 대전교구 및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김유정 신부는 강론을 통해 "(한 신부가) 7년간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다. (이번 KBS의) 보도가 의심스럽다"며 한만삼은 속죄를 하려는데 피해자가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특정언론과 짜고 한만삼을 음해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명백한 거짓이다. 한만삼은 귀국후 피해자에게 한번도 제대로 연락을 취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허락도 안받고 피해자가 남수단에서 찍은 사진을 활용해 책을 펴냈다. 피해자는 7년동안 한 신부를 만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여 전화번호를 바꾸고 성폭행 가해자가 자신의 사진으로 출간한 책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을 지켜보며 고통을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한만삼은 2013년 11월 6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연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이날 미사에서 한만삼은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라는 주제로 강론을 했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빛이 있다”며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된 사랑”이라면서 “권력과 힘을 지닌 이들이 사랑을 말하고 섬김을 말하고 정의를 말한다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폭행과 거짓과 악행을 일삼는 자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행실로서 보이는 자들일 뿐이며 양심 즉, 선량한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해 나가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기간 동안 한만삼은 수많은 집회의 연단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위선자 척결'을 외쳤다.

신부들의 성폭력의 기저에는 함세웅의 '방울달린 남자' 표현 속에 내포된 '남자는 선이요 여자는 악이다"라는 남성 우위 인식이 뿌리 깊게 못박혀 있다. 마녀사냥을 자행한 가톨릭의 역사를 들추지 않아도 교황을 '파파'라고 부르는 가부장적 구조에서 배태된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건 단순히 가톨릭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의 탈을 쓰고 그 종교가 가진 권력으로 자신들의 온갖 추악함을 감추려는 사악함은 김일성 3대 세습일가를 우상으로 삼고 숭배하는 이념의 문제요 좌파 진영 끼리끼리 밀어주고 끌어주고 덮어주며 지키려는 이권의 문제다. 

마태복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말을 하고 행동하라는 의미로 알고 있었는데 함세웅과 한만삼에게는 어떤 의미로 읽힐까.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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