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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이재명을 보위하라” 한총련 골수들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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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이재명을 보위하라” 한총련 골수들의 부활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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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1997년 꽃다운 청년들을 고문해 죽인 운동권들의 신분세탁
강위원·정의찬 등 한총련 출신들 이재명 홍위병으로 맹활약
지난 8월 16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이재명 대표로부터 특보 임명장을 받고 있는 강위원 전 한총련 의장(왼쪽)과 정의찬 전 남총련 의장. 사진은 강위원·정의찬 전 의장 페이스북 캡처.
지난 8월 16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이재명 대표로부터 특보 임명장을 받고 있는 강위원 전 한총련 의장(왼쪽)과 정의찬 전 남총련 의장. 사진은 강위원·정의찬 전 의장 페이스북 캡처.

1997년 5월 27일 광주 송원전문대학 기계공학과 졸업생 이종권(당시 25세)이 전남대학교 동아리회관 지하실에서 한총련 산하 남총련 소속 간부 학생들에게 집단구타, 고문을 당한 뒤, 강제로 물과 소화제, 각성제를 먹고 고문 후유증 및 기도폐쇄로 사망했다. 이종권은 졸업후 일용직을 전전했다. 그는 사건이 일어났던 날 전남대 부근에서 자신도 전대 학생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5월 26일 오후 8시 그의 신분을 의심한 학생들에 의해 지하실로 끌려간 그는 경찰의 프락치라는 자백을 강요받으면서 주먹과 발길질 등 집단 폭행을 당했다. 폭행을 주도한 남총련 간부 학생들은 소주 12병을 나눠 마시고 쇠파이프로 내리치며 고문을 했고 새벽 3시경 이종권은 숨을 멈췄다.

경찰 조사 결과 이종권은 끝없이 이어진 고문 중간에 가해 학생들이 강제로 먹인 각성제와 소화제가 기도에 걸려 질식사한 것으로 판명됐다. 학생들은 경찰에서 “술 취한 주정뱅이가 캠퍼스에 쓰러진 것을 병원으로 데려가 응급조치를 했다”는 등 가해자들끼리 말을 맞춘 상태에서 거짓 증언으로 일관, 사건을 보름이나 은폐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종권의 어머니로부터 사건 당일 "이종권이 대학을 다니는 게 맞느냐"고 추궁하는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 측은 기지국 조사를 통해 해당 전화가 전남대 총동아리연합회실에서 걸려왔음을 파악했다. 이 폭행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간부가 당시 정의찬 남총련 의장을 비롯 무려 18명이나 된다는 것이 밝혀졌고, 최종적으로 전부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이종권이 사망한지 불과 8일이 지난 1997년 6월 3일 오후 6시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근방을 배회하던 선반기능공 이석(당시 23세)이 한총련 간부들에 의해 납치됐다. 이석을 끌고 간 한총련 간부 학생들은 역시 그를 경찰 프락치로 몰면서 자백을 강요했고 그가 부인하자 침낭으로 감싼 후 물을 뿌려가며 경찰 진압봉으로 쉴 새 없이 폭행했다. 한 학생은 의식을 잃어가는 피해자의 코에 최루가스 분말을 집어넣는 고문을 했다. 또 다른 간부 학생은 폭력 가담에 주저하는 후배 학생들을 향해 "전쟁 상황인데 인륜을 생각할 때냐"라고 말하며 고문을 독려했다. 이석은 27일 오전 9시까지 고문당한 뒤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석은 전라남도 해남 출신으로 고향에 있는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수원에 있는 한 공장에서 선반기능공으로 일하다가 사건이 있기 며칠 전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한양대 인근을 지나던중 또래의 학생들에게 붙잡혀 참변을 당했다. 한총련은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고자 이 사건을 김영삼 정부의 공작이라고 몰아가려 했다. 한총련은 사건 발생후 기자회견을 통해 "한총련 사무실 주변을 서성거리던 이석 씨를 발견하고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폭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진술서를 쓰게 한 뒤 돌려보낼 생각이었는데 이 씨가 갑자기 달려들어 목을 조르는 바람에 이 씨를 묶어 놓은 채 사무실을 나간 것으로 안다"라고 발표했다.

사건 당시 한총련 의장으로 "프락치는 진술서를 받고 학교 밖으로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당시에는 너무 늦었고, 서로가 피곤해서 함께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숨져 있었다"고 거짓 발표를 한 강위원은 그후 1개월 가량 도주하다가 붙잡혀 각종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5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중 2년도 지나지 않은 1999년 8월 15일 김대중 정부로부터 특별사면됐다. 이종권 치사사건의 가해자 중 한사람인 남총련 의장 정의찬도 6년형을 받고 복역중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됐다. 무고한 청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들이 사면받고 교도소 정문을 나선 날 운동권들은 양심수로 호칭하며 마치 국가권력에 부당하게 탄압당한 동지들이 출소해 감격의 상봉을 하는 것처럼 표현했다.

이석 고문치사 사건 당시 한총련 의장이던 강위원과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 당시 남총련 의장이던 정의찬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홍위병이 돼 맹활약중이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 시절 강위원은 경기도농수산진흥원 원장에, 정의찬은 경기도 수원월드컵관리재단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그후 이 둘은 2023년 8월 16일 이재명 당대표로부터 특보에 임명됐다. 강위원은 이재명의 단식이 시작되자 “독립군의 심정으로 국민 항쟁에 나선다” “무능 폭력 정권 윤석열은 퇴진하라”고 주장하면서 동조농성을 하기도 했다. 강위원은 진교훈 강서구청장 후보를 낸 원외 친명 전위대 ‘더민주전국혁신회의’를 이끌고 있다. 또 특보 임명 때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 주역이라는 이력이 문제가 되자 정의찬의 모교 ‘민주동문회’는 “시대적 비극을 정략적 공격에 이용하지 말라”는 성명을 냈다.

멀쩡한 시민을 그것도 자신들과 동년배인 청년을 구타하고 고문해서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이 자신들의 폭력 살인 행위를 시대의 비극이라 포장하며 적반하장으로 검찰 독재를 부르짖고 검찰 척결과 폭력 정권 타도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 자들을 전위대로 임명해서 운동권의 주류 세력인 586 정치인들과 경쟁하려는 이재명의 뜻을 받들어 한총련 출신 운동권 비주류들은 이재명 보위에 나섰다. 체포동의안 가결을 빌미 삼아 최고위에서 내친 송갑석의 지역구 광주 서구을에 강위원이 “수박 척결”을 앞세우며 도전장을 냈다. 둘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선후배로 송갑석은 전대협 의장, 강위원은 한총련 의장 출신이다. 이재명은 지사 시절 수많은 한총련 출신들을 경기도 산하기관에 임원으로 내리 꽂았다. 전대협을 한총련으로 물갈이하려는 이재명의 그랜드플랜이다.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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