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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경의 시콜세상]법 정의를 복불복으로 만드는 세 가지 … '선입견ㆍ전관예우ㆍ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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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경의 시콜세상]법 정의를 복불복으로 만드는 세 가지 … '선입견ㆍ전관예우ㆍ진영'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6.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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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의경 대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공인회계사

세계 최대 아동포르노 운영 웰컴투비디오 고작 1년 6개월형
헌재, 입법절차는 위헌 법안은 유효하다는 검수완박 결정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달 25일 오후 사드 부지 미군 공여 헌법소원 사건 판결 선고를 위해 서울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은 칼럼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달 25일 오후 사드 부지 미군 공여 헌법소원 사건 판결 선고를 위해 서울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은 칼럼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008년부터 소속회원들을 통해서 법관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법관의 자질과 품위, 공정성, 사건처리태도 등의 항목으로 평가해서 상위법관과 하위법관으로 구분한다. 하위등급으로 분류된 법관들은 고압적이면서도 불성실하게 재판을 진행하며 예단과 선입견으로 불공평한 판결을 내린다고 하여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송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상위법관을 만나야 모멸감을 받지 않으면서도 공정한 재판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법 정의는 재판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 판결이 공정하면 재판과정이 불편해도 감수할 만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재판진행 태도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법관의 예단과 선입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긍하기 어려운 판결들 중에는 예단·선입견과는 다른 차원으로 보이는 판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2019년에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웰컴투비디오 사건이다. 세계 최대의 아동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하여 거액의 코인 수익을 올렸던 범죄자가 32개국 수사기관의 공조로 검거되었는데 범죄자는 한국인 남성 손정우였다.

이의경 대진대학교 교수/공인회계사
이의경 대진대학교 교수/공인회계사

이 사이트에서 단지 영상을 시청하거나 공유한 것만으로 미국인과 영국인들은 최소 5년에서 25년 형까지 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정작 사이트를 직접 운영한 범죄자는 미국송환도 피하고 한국법원에서 달랑 1년6개월의 선고를 받았다. 전 세계가 비난한 이 판결은 법관의 예단·선입견의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막강한 다수의 변호사들이 동원된 것을 보고 전관예우가 작용한 판결이 아닌가를 의심하게 된다. 그 의심이 사실이라면 돈이 정의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정권을 거치면서 법원 판결은 또 다른 차원에서 다양해졌다. 사회 전반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진영논리로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법조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새롭게 등장한 비상식적인 판결이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2018년 경기지사 선거 후보의 거짓말은 뜨거운 관심사였다.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로 판결된 것이 대법원에서 다시 무죄로 뒤집히면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대법원은 거짓말을 적극적 거짓말과 소극적 거짓말로 분류하고 소극적 거짓말은 죄가 없다고 했다.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들도 많았지만 결국 6:5로 무죄가 되었다. 무죄를 이끌어낸 대법관의 이름이 대장동 50억 클럽에서 또 등장하는 것을 보면 뭔가 찝찝한 여운이 남는다. 아무튼 그가 내세운 판결논리는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소극적 살인, 소극적 성폭행, 소극적 사기, 소극적 음주운전도 무죄가 되는 거냐고 한다. 그가 어릴 때 읽은 동화에서는 피노키오의 코가 적극적 거짓말일 때만 커졌는가 보다.

올해 3월에 헌법재판소는 검수완박법에 대해서 판결을 내렸다. 입법절차는 위헌이지만 법안은 유효하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판결이다. 수사과정에서 불법으로 수집된 증거는 증거력이 없다는 것은 장삼이사도 알고 있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법절차가 위헌이므로 법안이 무효이다”가 맞지, 어떻게 “입법절차는 위헌이지만 법안은 유효하다”는 것인가. 게다가 그 판결이 정확하게 진영의 수와 일치해서 찬성표와 반대표로 갈린 것을 보면 지금의 헌법재판소도 진영 대결의 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결국 헌법재판관들은 자기진영을 사수하고자 우리 사회가 부여한 최고의 권위마저 내버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헌법재판소가 세금을 써가면서 법원과 별도로 존재할 필요가 있나 의구심이 든다.

예단·선입견, 전관예우에 진영논리까지 더해지니 법 정의는 그야말로 복불복의 시대가 된 것 같다. 어떤 법관을 만나느냐로 판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상식적인 판결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내려진 것이라는 점이 더욱 안타깝다. 그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판결 논리를 어떻게 꾸며도 법관의 권위는 판결의 공정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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