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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미의 재계포커스] LG화학 트럼프 적시 기고문, 기업문제가 외교로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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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미의 재계포커스] LG화학 트럼프 적시 기고문, 기업문제가 외교로 비화?
  • 이강미 기자
  • 승인 2020.10.30 0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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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소송 관여 말라' 미국 대통령에 일침
정부 비판 자유로운 미국 언론 상황 고려해도 무리수
 

LG화학의 배터리 분사를 위한 임시주주총회가 30일 개최되는 가운데 LG화학 장승세 전무(전지 경영전략총괄)가 미국의 주요 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트럼프, 한국 배터리 소송분쟁에 관여 말라(Trump Should Stay Out of Korean Dispute)'는 제목의 기고문을 내면서 파장이 크게 일고 있다. 특히 이 기고문은 한국 기업의 한 임원이  미국 대통령에게 일침을 가했다는 점에서 후폭풍이 커지는 모양새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장승세 전무의 WSJ 기고문과 관련, 업계를 비롯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물론 미국 대사관에서도 '깜짝' 놀라 진위 여부 파악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특히 LG화학이 어떤 의도로 이같은 내용의 기고문을 내보냈는지 의도파악하는 데 주력하는 모양새다. 장 전무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에서 나온 독단적 판단인지, 회사 차원의 기고문인지, 그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CT) 배터리 소송 최종판결이 12월 10일로 두 차례 연기된 것과 관련,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소송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하고 있다.

우선 장 전무의 기고문이 회사에 대한 충성심에서 나온 독단적 판단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지적이다.  LG화학 역시 이 기고문이 회사 차원에서 게재한 것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LG화학 관계자는 “젠킨스의 기고문에 대한 반박글이었다. 미국은 오피니언난에 얼마든지 반박글을 실어준다”면서 “당초 의도와 달리 공교롭게도 26일 예정된 ICT의 최종판결이 또다시 연기되는 바람에 기고문 보도 시기가 애매하게 된 것은 맞지만, 절도범이란 표현은 이미 ICT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특허침해한 것으로 조기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시말해, LG화학은 이 기고문을 지난 26일로 예정됐던 ICT의 최종결론 시기에 맞춰 내보내려고 사전에 준비했다는 얘기다. 다만 기고문 제목이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언급했다는 점은 LG측의 의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LG화학 관계자는 “기고문 내용과 달리 제목이 강하게 달렸는데, 이것은 WSJ측에서 제목을 단 것으로, 우리측에서 조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면서 "미국의 언론문화는 우리나라와 달리 얼마든지 대통령을 겨냥해 풍자기사나 비판기사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화학은 관련 기사가 국내 언론에 보도되는 것에 대해선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다. 이 외신발 기고문이 국내 언론에 소개되자 LG화학 홍보실은 뒤늦게 기사를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기고문 게재가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재가없이 이뤄졌기 때문에  LG화학 홍보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다른 이유는 현재 미국이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 후보 사전투표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의 지지율 격차가 점차 좁혀지고 있어 아무도 대선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이렇듯 민감한 시기에 미국의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이 일침을 가했다는 것은 한국 정서상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우리나라가 미·중 무역갈등 국면에서 '살얼음 외교'를 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이란 시기도 문제다. 이런 때 민간기업이 자사 이익만을 고려해 미국 대통령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소지가 다분한 칼럼을 기고한 것에 대해 업계에서도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더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를 이미 '식물정부'로 보고 강경한 기고문을 냈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간 문제가 국가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언론 문화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개방적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 LG화학 입장에서는 충분히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 ICT의 예비판결이 LG화학의 손을 들어줬다고 하더라도, 마국 대선 후 SK이노베이션이 얼마든지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LG화학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은 ITC결정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토권 행사를 견제하기 위한 사전 여론 정지작업 차원에서 이번 칼럼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대통령 고유권한을 지적하는 내용의 기고가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라고 평했다.

우리 정부의 눈치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K-배터리’를 강조하며 전기자동차 관련 사업 육성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런  때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은 자칫 정부정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활동을 하다보면 분쟁이야 늘 생길 수 있는 일이지만, 논쟁 범위를 자칫 외교분야까지 넓히는 것은 국익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LG그룹의 핵심임원이 실명으로 기고한 것은 대미 외교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기고문은 타임스퀘어에 LG광고를 내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LG화학 연구원들이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LG화학
LG화학 연구원들이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LG화학

한편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LG화학의 WSJ 기고문 논란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누리꾼들은 블라인드와 각종 포털서비스 기사댓글에 글을 쏟아내며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블라인드에서는 “와, 깡다구 미쳤네, 이러니 일개 고객사따위 싸워보는 건 일도 아니지” “이건 선을 넘은 게 아니라, 강을 건넌 수준이다” “엘사에서 이렇게 베팅을 세게하면 항상 거꾸로 결과가 나오던데 트럼프 당선 각인가” 등의 글들을 쏟아냈다.

포털 기사댓글에서 한 누리꾼은 “왜 LG가 갑자기 정치기업이 되냐”고 했고, 또다른 누리꾼은 “패기갑 LG, 이러다가 화웨이까지 엮이면 골로가는데, 어쩌려고”라며 안타까워했다.

반면 또다른 누리꾼들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무슨 소리들을 하는 것이냐”, “도둑질한 SK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앞서 장 전무는 14일자(현지시간) WSJ에 실린 홀맨 젠킨스의 기고문을 반박하며 “영업비밀 보호는 미국 일자리 창출의 핵심으로, ICT 판결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역·비밀보호와 경제활성화 관계에 대한 홀만 젠킨스의 기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4년간 무역정책을 포기하고, 외국의 지적재산과 절도범(steal)의 처벌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근거없는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아직 관련 소송의 판결이 내려지기도 전에 SK이노베이션을 ‘절도범’ 혹은 ‘도둑질한’ 기업으로 지칭한 것이다.

장 전무는 1972년생으로 서울대 섬유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2011년 컨설팅업체 모니터그룹 한국지사 부사장을 지내다 2013년 LG화학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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