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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경상도 돼지국밥에 전라도 김치, 조화와 부조화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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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경상도 돼지국밥에 전라도 김치, 조화와 부조화의 경계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7.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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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부산의 국밥집에서 담양의 김치를 만났을 때의 당혹감
정당들의 강령과 정책과 이념이 한결같이 똑같은 이유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프랑스를 방문한 김건희 여사가 20일(현지시간) 파리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내 밀다원에서 외신기자들에게 믹스커피를 소개하고 있다. 김 여사는 이날 '2023 한국문화제 테이스트 코리아' 부산 특별전을 관람하며 부산엑스포에 대해 소개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프랑스를 방문한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파리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내 밀다원에서 외신기자들에게 믹스커피를 소개하고 있다. 김 여사는 이날 '2023 한국문화제 테이스트 코리아' 부산 특별전을 관람하며 부산엑스포에 대해 소개했다. ⓒ연합뉴스

“부산은 어머니의 도시,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만나는 도시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김건희 여사가 지난 20일(현지시각) 프랑스 한국문화원 내 ‘2023 한국문화제 테이스트 코리아’ 부산 특별전을 관람하는 자리에서 외신기자들에게 부산을 어머니로 비유하면서 엑스포를 유치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김 여사는 “부산에 피난 온 우리 어머니들이 아들, 딸들을 건사하며 전쟁과 가난의 어려움을 극복한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난 온 어머니들만이 아니라 부산 어머니들은 넉넉하지 않은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피난민들에게 내어주고 그들의 아이들도 자식처럼 보듬었을 것이다. 그것이 내 것만 고집하지 않고 무엇이든 이질적인 것들을 개방적으로 받아내서 또 사방으로 새롭게 전달하는 항구도시만의 역동성이고 자갈치로 상징하는 부산 아지매의 힘이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가슴에 응어리진 상처를 호호 불어주고, 세상사에 치여서 사늘해진 마음을 따듯한 품으로 녹여주며, 어쩌다 저지른 자잘한 허물들을 말없이 사해주시는 어머니가 내어놓는 국밥은 그래서 지상 최고의 치유 음식이다. 뜨끈한 국밥의 국물을 후루룩 들이마시고 난 후 터져 나오는 외마디 의성어는 맺혔던 것이 한번에 풀릴 때 나오는 소리다. 얼마 전 어느 커뮤니티를 통해 빛의 속도로 확산된 “고담시에 욕쟁이 할머니가 한가득 말아주는 국밥집만 있었어도 조커는 빌런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글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부산하면 돼지국밥이다. 대표적인 향토음식이기도 하거니와 밀면과 더불어 피난민들이 고안해낸 향수 음식이다. 6.25 전쟁으로 인해 피난 온 함경도 출신 피난민들이 고향에서 먹던 순대국밥을 추억하며 경남 일대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돼지 뼈와 돼지 부속물들을 고아서 탄생한 음식이기에 항구 도시 부산 즉 ‘문화 용광로’에 걸맞는 ‘컬처푸드’이기 때문이다.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경상도 방언으로 ‘정구지’라 불리는 부추를 듬뿍 넣어 새우젓으로 간해서 들이켜는 부산 돼지국밥은 그래서 경북 영천의 소머리국밥, 대구 따로국밥, 경남 함안의 소고기국밥과 더불어 꼭 찾아가서 ‘그곳’에서 먹어야 ‘제맛’이 나는 음식이다.

부산에 가면 서면 시장에 줄지어 있는 돼지국밥집 중 한곳을 꼭 찾아간다. 국밥을 시켜놓고 앉아 있노라면 손님 간에 혹은 손님과 주인 간에 부산 지역 방언 특유의 고성이 정겹게 오가고 그런 배경음향을 깔고 국물에 담근 밥 한 숟가락에 짜가운 경상도 김치 한 젓가락 얹어서 한 입 넣으면 “그래 여기는 부산이야”라고 몸이 공간을 인지하게 된다. 산지에서 난 식재료의 음식은 그 생산지에서 먹어야한다는 ‘로컬푸드 운동’을 언급 안해도 밥이 남아있는데 국물을 다 먹어서 아쉬워하는 순간 순식간에 옆에 나타나 말없이 국물을 한가득 채워주는 부산 어머니들의 손길 눈길의 은혜로움을 직접 영접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국밥을 먹는다면 부산 돼지국밥의 진수를 먹었다고 할 수 없다.

수일전 부산 출장이 있어 중간에 짬을 내서 예의 국밥집에 찾아갔다. 늦은 점심이기도 하고 날이 더워서인지 줄을 길게 늘어선 밀면집과 달리 국밥집엔 드문드문 빈 자리가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가서 그랬는지 분위기가 예전과 사뭇 달랐다. 3대를 이어서 하는 전통 있는 국밥집이어서 실내나 주방은 노포 분위기 그대로였는데 기대했던 부산 토박이 손님들의 높은 옥타브 방언보다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낮은 음역대의 외국어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것은 바로 김치였다. 옛날 부산 돼지국밥집에서 먹던 마늘향 가득한 그러나 담백한 경상도 김치가 아니라 짭짤하면서 강렬한, 젓갈 가득 양념 풍성한 맛이 영락없이 전라도식 김치 맛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벽에는 ‘담양에서 담근 김치’라는 ‘원산지 표시’가 붙어있었다.

부산까지 와서 돼지국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으로서만이 아니라 국밥에 담긴 부산의 이야기를 ‘먹는’ 것이라고 한다면 전라도 김치가 전국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부산의 국밥집은 부산식 김치를 곁들여내야 하지 않을까. 서울에 있는 내 집에서 부산에서는 국밥을, 담양에서는 김치를, 곰소에서는 젓갈을, 제주도에서는 고사리를 주문해서 팔도강산 한상을 차려먹는 것이 아니라면 부산이 자랑하는 오래된 돼지국밥집의 담양 김치는 낯선 조합이다. 함께 내려간 동료는 “탕평이 따로 있지 않다, 동서융합, 지역화합의 좋은 예일 뿐이다. 정치권도 이런 정신을 닮아야하지 않나”라고 반문했지만 그것은 대통령이 정치인들 불러서 식사 대접할 때 나오는 구절판 얘기다. 정당이 각 계층 각 세대 각 계급 각 지역들마다 좋은 것만 골라서 공약을 집대성하면 말이 좋아 대중정당이지 모든 정당의 강령과 정책과 이념은 다 판박이가 될 것이다.

수십년전 광화문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할 때부터 단골이었던 청진동식 해장국집 간판을 호남의 어느 산골 국도에서 만났을 때 반가움 아닌 황당함을 느끼듯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은 그 지역에서 나오는 재료로 그 지역에서 내려온 이야기들을 양념삼아 내야할텐데 어느 지방을 가도 서울식 호남식 대구식 충주식...등등의 간판들을 달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점들이 전국 어디서나 똑같이 모여있는게 안타까워서 나오는 구시렁이다. 전라도에서는 전라도 김치를, 경상도에서는 경상도 김치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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