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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궤변만 늘어놓는 이재명, 흥분하는자가 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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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궤변만 늘어놓는 이재명, 흥분하는자가 범인이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1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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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털 테면 털어 보라!” 소리 높이는건 범죄자임을 자인하는 것
소명조차 하지 못하는 이재명의 변명에 열광하는 우중의 사회!
프랑스 화가 자크 다비드의 작품 '소크라테스의 죽음'. ⓒPixabay
프랑스 화가 자크 다비드의 작품 '소크라테스의 죽음'. ⓒPixabay

인류의 스승이자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나는 거의 알지 못한다. 또 그의 철학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른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철학을 했다고 했지만 그가 철학자인지 교육자인지조차도 나는 분간하기 어렵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건 소크라테스가 단 한 권의 저작도 남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그의 칠십 평생 중 말년의 일부와 그의 죽음만이 그의 지인이나 제자들의 저술이나 진술을 통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성인으로까지 추앙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 서양 철학사에서 철학자 중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는 사람은 오직 소크라테스 한 사람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너 자신을 알라”는 한 마디의 경구만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그런 경구를 말한 적도 없다. 소크라테스는 다만 사람들의 무지에 대한 무지를 일깨워주려 했을 뿐이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아무튼 나는 소크라테스가 어떤 철학의 체계를 세웠는지 알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를 설명하고 있는 수많은 철학자와 역사학자들 역시 소크라테스의 철학 체계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가 서양 철학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고대 서양 철학사가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황금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나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회상’을 보면서 나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한편으로는 신념과 소명의식이 충만한 고고한 철학자를 떠올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인간상을 떠올리곤 한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대단히 오만하고 심지어 교만하기까지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심지어 소크라테스의 현란한 웅변을 들으며 그가 소피스트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가지기도 했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으면 더욱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지혜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찾아가 끝내 그가 지혜가 있기는커녕 무지할 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해내고야 만다. 그럴 때 그 상대방은 얼마나 불쾌하고 무안했을까.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런 것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건 분명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신념과 소명감에 충만해 있거나 반대로 교만하거나 둘 중 하나인 유형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령을 소개하는 죄를 범했으며, 젊은이들에게 해악을 끼쳤다는 이유로 고소되었고, 아테네 법정은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바로 소크라테스를 재판한 아테네 법정을 재현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내가 현명하다고 불리게 되고 나쁜 평판을 얻게 된 까닭을 여러분에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중략) 아테네인 여러분! 내가 이러한 평판을 얻게 된 것은 내가 어떤 지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지혜인가 묻는다면,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지혜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는 한에서만 나는 내가 현명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술은 매우 교묘하고도 소피스트적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그의 ‘교만함’ 때문에 많은 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걸 무시했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진실로 소피스트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이거나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 둘 중 하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서론이 길었다. 하고자 하는 말은 이재명의 궤변이다. 그는 소피스트 이상의 궤변을 늘어 놓았을 뿐 진실을 말한 적이 없다. 그는 “털 테면 털어 보라!”고 소리를 높였다. 내가 보기에 그건 범죄자임을 자인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 당당하다면 그렇게 소리 높일 게 아니라 대장동 설계자이자 최종 결재자로서 전후 사정을 소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건 당당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마저 그의 말이 궤변이 아닌지 의심하는 마당에 스스로 소명조차 하지 못하는 이재명의 변명도 아닌 항변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니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비극이다. 이런 인지부조화가 있을까. 우중(愚衆)의 사회!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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