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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동반성장 가로막는 동반성장委 왜 아직도 안없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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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동반성장 가로막는 동반성장委 왜 아직도 안없애나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3.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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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대기업 적합업종 따로 있고, 중소기업 적합업종 따로 있다고?
자생적인 질서의 시장 무시하고 인위적인 질서로 시장에 개입하려는건 지적 사기
제69차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 4일 JW리 ㅇ
제69차 동반성장위원회 회의가 지난 4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 서울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제6대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동반성장위원회 

근래 우연히 동반성장위원회에 관한 기사를 접하곤 깜짝 놀랐다. 그간 잊고 있었는데 동반성장위원회가 아직도 살아 있다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반성장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었다.

설립목적은 ‘기업간 사회적 갈등문제를 발굴, 논의하여 민간부문의 합의를 도출하고 동반성장 문화 조성 확산의 구심체 역할 수행’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능 및 역할을 보니 동반성장 문화확산(혁신주도형 동반성장운동), 대기업의 동반성장지수 산정 및 공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추천, 대.중소기업간 거래상·업종 간 갈등요인 발굴 및 사회적 합의 도출 등을 나열하고 있다.

도대체 위원회를 구성하면 동반성장이 이루어진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이러니는 이 위원회가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 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위원회를 건의하고 초대 위원장이 된 사람은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였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후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 지금까지 이사장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정 이사장은 지난 1월 열린 동반성장포럼에서 연사로 나와 “동반성장은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또 “동반성장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는 사회 철학이다. 승자 독식의 경쟁이 아니라 협력적 경쟁을 지향한다”며 “현재 한국경제는 대주주의 이익 극대화에 집중돼 있지만 동반성장은 주주·근로자·납품업체 모두의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제안이다”고 말했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법률에 의해 설립되었으니만큼 동반성장위원회는 공적 기구다. 그런 공적 기구가 동반성장을 추구해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어느 것이나 정책목적에 따른 위원회를 만들면 되니 국정이라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일까. 하지만 인위적 목적 추구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거꾸로 부작용을 낳기 십상이다.

동반성장위의 사업 중 동반성장지수를 산정, 공표하는 것이나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적합업종 지정, 나아가 대·중소기업간 거래에 대한 관여 등은 매우 우려스러운 사항이다. 동반성장지수는 필경 대기업들을 압박하는 기능으로 작용할 게 뻔하다. 대기업을 압박하는 게 우리 경제에 좋은 일인가.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적합업종이라는 것을 지정한다는 것은 한심하기까지 하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적합업종이라는 생각은 대표적인 고정관념이다. 대체 대기업 적합업종 따로 있고,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따로 있을 수 있는가.

소매업을 예로 들어보자. 과거 소매업은 중소기업은커녕 재래시장이나 동네 가게의 몫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고정관념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마트의 등장은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소매업도 얼마든지 대기업이 진출할 수 있으며, 그것이 소비자의 편익을 증진시키지 않았는가. 중소기업이나 재래시장 적합업종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형 마트의 영업일수와 시간을 제한하는 규제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은 보호되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번엔 식자재마트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음식점 등에 식자재를 납품하며 운영됐던 식자재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에 의한 규제로 대형마트 등이 월 2회 문을 닫는 틈을 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며 중소기업을 넘어 중견기업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렇듯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부작용만 부르게 되어 있다. 동반성장이라는 정치적 목적은 결코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역기능만 초래한다.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는 사회 철학이라느니 승자 독식의 경쟁이 아니라 협력적 경쟁을 지향한다느니 하는 것은 말의 성찬에 지나지 않는다.

동반성장연구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동반성장 이야기’라는 글이 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대기업 매출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매출과 소득이 반드시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4반세기 동안 급속히 진행된 글로벌화는 생산 공장의 해외이전, 부품공급의 세계화를 가속화하여 밸류체인을 다변화시켰고 국내 산업간 연결고리를 상당히 약화시켰습니다. …현재 한국 대기업 생산라인은 임금·운송비·인프라비용이 낮은 외국으로 이전되었고, 이에 따라 부품 중소기업들도 함께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했습니다. 따라서 대기업 스마트폰이 잘 팔려도 국내 중소기업 매출과 고용은 생각만큼 크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이미 글로벌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습니다. …승자만이 독점, 독식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닙니다.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에서는 미래를 위한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저성장과 양극화된 한국사회에서 ‘동반성장’은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가치입니다.”

이 글은 시장경쟁을 ‘좋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생산라인이 임금·운송비·인프라비용이 낮은 외국으로 이전되고, 이에 따라 부품 중소기업들도 함께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된 것’이 잘못된 일이기라도 한 양 그럴싸한 말로 왜곡하고 있다. 생산라인의 해외 이전을 막고 나아가 우리나라로 유턴시키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것을 외면한 채 정치적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건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자유를 모르는 자들은 곧잘 경제나 사회에 어떤 틀을 씌우려 한다. 그것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사회주의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사회주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생적인 질서로서의 시장을 무시하고 인위적인 질서로 시장에 개입하려 드는 시도는 그것이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로 포장된다 하더라도 지적 사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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